<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독서
책 읽기의 의미 변화
책을 읽는 이유와 목적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고대의 여제들은 아무나 읽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책을 통해 지혜와 책략을 얻었으며,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는 1000여 년의 시간 동안은 조신한 성도로서 성경을 읽고 신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내면을 정화시키기 위해 읽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귀족 집안 여성이거나 아버지가 깨어있는 경우가 아닌 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았으며, 인쇄 기술의 발달과, 책의 보급화로 유럽 사회에는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독서 보편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국의 독서 보편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할 때, 그나마 유럽은 빨랐던 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서구권 여성들에게 어느 다른 문명권 여성에게 보다 글 읽기가 빨리 허락된 것은, 기독교가 일상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덕분일 것이다. 물론 가톨릭의 오랜 지배로 고통받은 부분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종교이기에, 성경을 반복해서 읽고 필사하며 익힌 읽기와 쓰기 능력이 시대가 변하면서, 다른 장르의 글을 읽고 쓰는데 기반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과학 기술을 천대시 했던 조선시대 문화와 달리, 서양 문명은 과학을 중요하고 유익한 것으로 인정하고, 많은 학자들이 소통하며 학문 체계로 정교하게 발달시켰다. 덕분에 과학 기술 기초를 탄탄하게 쌓은 후, 떡두꺼비 같은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시스템을 순풍순풍 낳고, 기술 문화를 앞장세워 마음껏 세계를 위협하고 침탈하며 국력 부강을 누려왔다.
물론 유럽의 경우에도, 여성이 책을 읽는 것은 오랫동안 몹시 운이 좋은 여성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포함해서 가부장제 제도가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은, 여성은 정치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재산도 소유할 수 없이, 남편의 재산에 의존해서 살며, 재산을 물려받을 아들을 낳아야 하는 의무에 대한 부담을 크게 가져야 했다.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여성의 삶은 귀족이냐 아니냐에 따라 또 극과 극으로 나누어졌다. 귀족 중에서도 아버지가 여성의 교육의 가치를 인정할 경우에만 책을 읽는 것이 허락되고 원하는 교육을 마음껏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는 삶을 사는데 책을 읽는 행위는 아무도 좋게 보지 않는 위험하고 유익이 전혀 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기술과 의지와 깨어있는 마인드가 필요한 일이었고, 자유롭게 어떤 장르의 어떤 시대 어떤 작가가 쓴 책이든 마음껏 골라 읽을 수 있는 이 시대는 결코 쉽게 온 것이 아니다. 최근에야 가능해진 엄청난 시대적 쟁취이며, 오랜 압제와 고통의 역사가 우리에게 쥐어준 귀한 선물이다.
여성은 자유로운 독서를 누리며, 읽기와 쓰기 능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억눌러져 있던 의식 수준을 높이고 사회의 동등한 한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과감히 내기 시작했다. 사회적 참여와 지위가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고, 성역할 차이를 점점 좁혀내 오늘날에 이르렀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최근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Women Who Read Are Dangerous>라는 볼만(Ballmann)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13세기부터 21세기까지 <책 읽는 여자>라는 주제의 그림을 모은 책으로, 여성 독서 역사와 함께 사회 문화의 변천과, 여성의 삶의 변천, 그에 따른 독서의 목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원래 <책 읽는 여자>라는 주제를 좋아해서, 이 주제의 그림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책 한 권에 다 모아 놓으니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격을 느끼며,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바로 구매해야 했다. 미켈란젤로부터 헨리 마티스, 에드워드 호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감성, 그리고 중요한 의미의 순간을 포착하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책 읽는 여자>의 특별한, 생생히 살아 있는 순간들을 그려낸 작품들이 앞다투어 내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도저히 책을 품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화가들이 대부분 남성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은 왜 이렇게 <책 읽는 여자>를 그리고 싶어 했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여자의 정신이 현실을 떠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간 그 순간, 오직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면 독립의 순간이, 마치 폭풍 전야의 정적처럼 너무나 고요하면서도 위험한, 그래서 몹시도 신비롭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남성들이 경제적 부양 책임에 눌려 돈이 되고 야심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독서에 매이기 쉬운 반면, 여성들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독서를 하는 것이 부러움 반 동경 반 경외의 감정이 들 정도로 고귀하게 빛났던 것이 아닐까. 나의 상상력은 마구 춤을 추며 끝없는 추리를 이어간다.
작가 볼만은, <책 읽는 여자> 그림을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있다. 각 주제는 바로 여성이 독서를 하는 이유이다.
진리의 말씀이 사는 곳 (축복을 누리는 독서가): 경전 말씀을 읽는 독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독서를 하는 중세 시대의 여성들의 독서가 이끄는 삶을 그리고 있다.
친밀한 순간 (책에 사로잡힌 독서가): 16-17세기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전통 사회가 요구하는 짐을 내려놓고, 잠시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겨우 얻은, 여성들의 자신만의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즐거움이 있는 곳 (자유로운 독서가): 독서 보편화가 이루어지고, 보다 부유해진 18세기 유럽 사회는 즐길 거리를 필요로 하고, 덕분에 시와 소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시대, 독서가 유흥이 된 시기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마음이 기쁜 시간 (감성적인 독서가):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책을 통해 감정적 유대와 감정적 탐험을 경험하기에 이른 독서 문화의 변화들을 그려내고 있다.
자아 찾기 (열정적인 독서가): 19세기 후반 자신을 알고 세상을 이해하는 진리 탐구의 여정으로서의 독서가 여성의 삶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는, 진지하게 몰두하는 모습들을 포착한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도피처 (고독한 독서가): 세계 1, 2 차 대전이 휘몰아치고, 여러 사상 이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20세기 초반, 뭔가 불안하고 간절하고 갈망하는 듯한, 그런 마음으로 도피처를 찾는 것 같은 여성의 절박한 책 읽는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각 그림에 보이는 책을 읽는 여자의 표정은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수 백 년에 걸쳐 그려진 그림들의 모음이, 다양하기 짝이 없는 읽는 표정들이 엮어 내는 파노라마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여성의 삶과 독서 목적의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볼만 작가가 말하는 이 모든 책의 역할을 경험한 바 있기에, 책이 진리 탐구의 시간도, 자신의 마음을 힐링하는 시간도,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도, 자신을 찾는 여정도,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실 도피도 될 수 있다는 것에 몹시 동의한다. 그리고 책이 얼마나 나에게 착한 가격으로 치유와, 성장과 행복의 길을 열어 준, 세상 더없이 유익한 것이었는지도 새삼 깨닫는다. 무엇보다, 인생의 길에서 많은 순간 외로웠던 나에게 책은 얼마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가. 이 훌륭한 친구는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풍성한 즐길 거리로 나의 내면을 꽉꽉 채워주었었다. 덕분에 나는, 혼자 책을 읽으며 나의 내면을 여행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고립과 고독마저도 기꺼이 기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정신을 독립시켰고 나만의 소신을 품게 되었다. 가부장제에 정신이 갇혀있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한동안은 내가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응원했지만 어떤 순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보는 책의 종류들에 기함해서 책들을 불사르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나를 만들어 온 수많은 책들 불사르기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결국, 불만 붙여 놓고 자리를 피했다. 마치 자신이 두렵다고 딸의 세상을 불사를 수는 없다는 듯이, 다시 책들을 다시 챙겨 다른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는 듯, 아버지 눈에 안 띄는 곳에 가서 책을 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듯 말이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에게 책은 언제나 함께하는 친근한 친구이면서도, 아버지까지도 두렵게 만드는 위험한 존재고, 무시무시한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책을 마음껏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특권 하나 만으로도, 나는 그 힘이 세상을 다 가진 듯 든든해서, 그 어떤 시대 그 어떤 다른 삶, 다른 소유들이 부럽지 않다. 억만금을 준대도 맞바꾸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 앞에서 새로운 고민
오랫동안 여성이 책을 읽을 수 없었던 것은, 내 딸이 내 며느리가 내 아내가 내 하인이… 깨우치고 독립적인 소신을 갖기 원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과 사회 전체의 의지 때문이었다. 나의 영향권 아래서 내 말에 순종하고 따라야 할 존재가, 책을 읽고 세상을 깨우치게 된다는 것은 전체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여성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은 내 딸이 내 며느리가 내 아내가 내 엄마가, 물질 공급 능력과 사회적 힘이 있고 후세를 양성하는 교육 능력이 있기를 원하는 주변 사람들과 사회 전체의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라는 시스템보다, 자본력이 우선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도 독서를 많이 하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나는 여성으로서 어떤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깨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AI도 아닌 내가 세상 모든 책을 읽을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사회와 가족을 위한 책임도 분명히 있고, 자본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부담에 매몰되어 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어떤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고귀하고 강단 있는 나의 내면 성장을 위한 순수 독서의 힘,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나 개인의 소신을 가지고 나 스스로를 위해 잘 판단하고 책을 잘 골라 읽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어떤 책을 읽는 사람이 될 것인지 고민을 함께 그리고 각자 시작해 보자.
대문 이미지: <Dreams (1896)> by Vittorio Matteo Corcos (1859-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