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우리가 집밥을 원하는 이유
무엇보다 집밥은 안전하다. 밥 한 번 먹고 가는 뜨내기들이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건 말건 값싼 재료로 이윤을 도모하는 장사치의 마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많이 먹고 힘을 내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이 녹아 있는 집밥은, 따뜻하고 배부르고 안심이 된다.
집밥은 쉼이다. 밖에서 입맛 따라 유행 따라 이것저것을 먹으며 돌아다니다가도, 한 번씩은 꼭 집밥을 먹고 싶다. 내가 차려 먹을 수 있는 성인이 되었어도, 아플 때, 슬플 때, 세상에 지쳐 무기력해질 때, 우리는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고 한숨 푹 자고 싶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그대로 받아주는 안전한 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풀어놓고 쉬고 싶다.
집밥은 사랑이다. 나의 좋은 점만을 크게 생각해 주고, 나의 잘됨만을 바라는 건강한 사랑이다. 나의 입맛을 중요시 여겨 그에 맞추어 밥 지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먹으면 힘을 내고 일어설 수 있다. 그 사랑의 에너지는 사람에게 없어서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어른 아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모든 인류에게 집밥은 꼭 필요하다.
집밥 같은 관계
내가 사랑받고 싶다는 건 확실하다. 내가 사랑받고 싶다는 말의 뜻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충만한 따뜻한 연결을 원한다는 의미다. 이성의 잣대를 내세워 재단하고 판단하려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그런 관계를 원한다는 의미다.
내 연구 전반에 걸쳐 나는 연결을 사람들이 누군가 나를 봐주고, 내 말을 들어주고, 가치를 인정해 준다고 느낄 때, 서로를 판단하는 시선 없이 소통할 수 있을 때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에너지'로 정의합니다. 그런 관계에서는 사람이 살아갈 양분과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Across my research, I define connection as the energy that exists between people when they feel seen, heard, and valued, when they can give an receive without judgment; and when they drive sustenance and strength from the relationship.) - p.169, Brene Brown, <Atlas of the Heart>
<마음의 지도> 저자, 브린 브라운 박사는 그런 사람 간의 진정한 연결을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분과 힘을 주는 '에너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는 이 의미를 진심으로 절감한다. 미국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본 경험으로, 양분을 주는 에너지 관계가 결핍된 상태의 무기력감을 잘 알고 있다. 분명 연결엔 힘이 있고, 사람에게 주는 영양분이 있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 주는, 특히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까지 주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익숙한 고향을 떠나 홀로 떨어져 타 지역 혹은 타국에서 삶을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언어문화의 차이도 아니고, 고향 음식을 못 먹어서도 아닌, 바로 이 관계 에너지가 결핍되고 고립될 위험이 크다는 데 있다. 고립된 사람들이 무기력과 우울에 시달리게 되기 쉬운 이유는, 이 양분의 고갈이 쉽게 일어날 정서적 위기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길가의 노숙자들이 돈보다 빵보다 갈급한 것이, 동등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상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관계 에너지의 갈증이라고. 그래서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람과의 건강한 연결이라고.
인간이 사랑의 관계로 연결되고 싶은 것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살고 싶은 것과 같은 수준으로 당연한 말이다. 허기를 면하고 취하는 음식의 종류를 가릴 처지가 된다면, 건강한 음식을 잘 골라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내가 관계의 종류를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후에는, 어떤 연결 속에서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가를 따지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밥상을 누가 차릴 것인가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수용되기를 인정받기를 원한다. 억압이 없는 그 사랑의 관계 안에서 내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기를 원한다. 내가 그런 연결을 바란다면, 타인도 그러하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너와 나, 모두가 따뜻한 집밥처럼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라면, 누가 나에게 따뜻한 집밥을 만들어 주기만을 넋 놓고 기다릴 일이 아니라, 안 해준다고 화내고 투정 부릴 일이 아니라,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따뜻한 밥상 한 상 차려주고 보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내 밥상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먹기만 하고 도망가 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먼저 밥상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관계라는 것을 인복이라는 운에만 맡겨 놓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사람들이 이해득실만 따지는 장사치의 가짜 밥 가짜 연결에 지쳐, 오히려 고립을 택하고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세상을 두고 볼 수만 없다.
내가 진짜 정성을 담은 밥상을 차려보려 한다. 내가 상대가 원하는 마음의 에너지를 먼저 공급해 주어야 그런 진짜 연결, 내가 바라는 연결이 시작이라도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나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온다.
상대방의 있는 모습 그대로일 자유를 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긍정적인 면, 장점을 빨리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해서 보아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 깎아내리고 이용하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성장을 바라고 함께 돕고 노력해 주는 마음을 갖춘 내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아서, 그 사랑에 주변을 접목시키는, 사랑의 연결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외엔 길이 없다. 세상에 나 자신 외에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를 바꾸고, 나의 변화가 물결이 되어 이 세상 끝까지 뻗어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이 따뜻한 집밥 따뜻한 연결로 충만해 지기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타인을 향해 뻗는 내 마음이 충분히 사람을 살리고 힘을 줄 만한 따뜻하고 건강한 집밥인지를 점검한다. 그것밖에 할 일이 없다.
대문사진 출처: Pixabay (by ChoiSeongj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