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의미
결핍감은 결국 뭔가 부족하거나 없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대부분 반복적으로 느끼는 이 감정은 '필요한 것이 없는 실제 상황'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전지전능과 거리가 먼 사람은 뭔가가 부족한 이 느낌을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도 없고, 남다르게 많이 가졌다 해도 어떤 상황에서 충분한 장점이 다른 상황에서는 부족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모든 분야에서 세계 1등이 아닌 한, 어딜 가나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 결핍감은 사실 그 누구도 피해 갈 도리가 없다.
내게 결핍감이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아울러 주는 '아! 이거였구나' 싶은 무릎을 탁 치게 기발한 단어로 다가왔다. 많이 사용해봤던 단어도 아니고, 어감이 좋은 단어도 아니었지만, '결핍감'이라는 말 조각이 내 마음에 내려앉은 후론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다.
어쩌면, 나의 결핍감이 더욱 확대되어 드러났던 건, 내가 문화와 언어가 많이 다른 해외에서 타국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아도 결핍감이 들진 않았다. 설사 어릴 때 가정환경의 한계로 노출되지 못한 영역이 불러오는 약간의 부족한 영역들이 있었더라도, 그것을 굳이 끄집어 내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티브이를 보고 학교를 다녔던 그 자체가 준 기본 상식이라는 단단하게 심긴 보편적인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천천히 여유 있게 알아가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비슷한 결핍감을 가진 사람들과 살아가면 굳이 빈 구멍을 메우지 않고 살아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핍감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용하는 무엇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가령 눈이 오지 않는 지역에 살아서, 스키나 스케이트 같은 동계 스포츠 종목을 잘 모르고 경험도 없는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치면, 내가 계속해서 눈이 오지 않는 지역에서 살아간다면, 주변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부족하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 북유럽이나 캐나다에 가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전 국민 모두가 일상적으로 스키를 타는 분위기, 아이스하키를 하며 잔뼈가 굵는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들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익숙한 환경 (comfort zone)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는 것은 나의 결핍과 부족함을 낱낱이 드러내고 그것과 맞서겠다는 일이 된다. 의도했건 아니건, 익숙한 환경과 비슷한 사람들이 감춰주고 덮어주던 내 안의 빈 구멍들을이 훤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 구멍들이 바로 더 큰 성장과 발전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전문가를 키우는 모태
도서관 사서로 막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무척이나 기뻤었다. 도서관 사서는 내가 공학 실험실 문을 박차고 나와 첫 번째로 경험했던 색다른 일의 시도,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일해왔던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 틈에서 나는 설레고 신났다. 전혀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라든지, 연구 자료를 찾는 일, 그리고 손 빠르게 문서 처리하고 발 빠르게 일을 끝내는 일에 있어서 나처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그런 자신감과 교만이 버무려진 감정이 내 안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이공계 연구원 출신이거든!
실험실을 떠났어도, 내가 이공계 분야에서 많이 공부하고 오랜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는 내 안의 공대 출신 정체성이 살아 있었으므로, 나는 그 경험이 주는 이점, 나를 고용하고 내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누릴 혜택이 클 것이라는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미국 제1의 교육 도시로 알려진 이곳의 도서관에서는 그 명성을 이루는 학부모들의 교육 열정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부모 조부모 할 것 없이 모두 나서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최선을 다 하는 분위기였고, 자녀와 함께 부지런히 도서관을 찾는 양육자들이 많았다. 하루는 어느 할머니가 손녀딸을 위한 책을 찾고 있다며 나에게 도움을 구했다. <Red Riding Hood> 책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이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편이어서, 미국에 와서도 한 달에 100권씩은 빌려 읽었던 사람이었으므로 자신 있게 나섰지만, 처음 들어 보는 제목에다 할머니 목소리가 작아서 거듭 물어보아야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I can tell you didn't grow up here in the US."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네)
책을 보니, '빨간 망토'였다. 숲에서 만난 늑대가 소녀의 할머니를 잡아먹고 할머니인척 누워서 소녀를 기다리는 그 유명한 이야기. 유럽판 '해님달님' 같은 이야기. 그 순간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면 다 아는 '빨간 망토'와,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면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대충 말을 해도 금방 알아들어야 하는 'Red Riding Hood' 차이만큼의 결핍감이 내 안을 파고들었다. 내가 아무리 영어 책을 많이 접했고,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어도, 내가 나고 자라지 않은 곳의 문화를 아는 데는 빈 구멍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 없는 재료를 하나하나 갖춰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노트를 만들었다. 고객들의 질문을 받고 잘 몰라서 다른 도서관 직원에게 물어봐야 했던 모든 것을 기록했다. 각 학년별 필독도서 추천도서부터, 특정 장르물을 찾는 고객들의 기호 도서까지 부지런히 정리해 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노트가 가득 채워질 때쯤, 나는 나에게 보물이 가득 쌓여있는 듯 느껴졌고, 이 보물을 미국에 금방 와서 문화적 결핍감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민자 학생과 학부모를 돕기 위한 북클럽, 문화 클럽, 포럼 같은 도서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고, 도서관의 전폭적인 지지를 입고 지역 신문에 도서관 사용 요령과 읽기 교육에 관한 주제로 칼럼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영어 도서 추천 전문가', '아동청소년 문학 전문가', '읽기 교육 전문가'라고 정했다. 그 이름에 합당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계속 책을 읽고 분류하고 리스트를 만들어 나갔으며 이민자 자녀들 교육을 더욱 가까이서 돕겠다는 마음으로, TESOL 석사 과정을 시작하였다. 석사 과정 중에도 내가 세운 정체성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자료를 수집하고 집중해서 공부하였다.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MATESOL 학위를 받았고, 공립학교에서 킨더(유치원)부터 12학년(고3)까지 비영어권 이민자 자녀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도 땄다. 나는 유아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세계 곳곳에서 막 도착한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가르치고 도왔다. 그 아이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세워질 수 있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영어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쏟아부어 가르쳤다.
지난 15여 년에 걸친 이 모든 빈 구멍을 채우는 과정, 빈 구멍을 가진 아이들을 돕는 과정이 나의 부족함이 내 안의 전문가를 낳아 키웠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험실을 벗어나 도서관으로 갔던 것에 대해서도 나는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곳은 미국 문화의 산물이 산재하는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뜨끈뜨끈한 신간, 신문물이 가장 먼저 신고식을 하는 곳이었으며, 내가 무엇에 뜨거운 마음이 있는지를 알게 해 주고 키워 준 모태였다. 그곳에서 본격적인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눈 돌아가게 쏟아지는 신간을 부지런히 접할 수 있었던 기억과, 도서관에 근무하는 초로의 여성 동료들이 나를 동생이나 딸처럼 대해주며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도와주었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나는 지금도 그 도서관으로 돌아가 거기서 함께 일하고 싶어 진다.
결핍감을 대하는 슬기로운 자세
결핍감은 사람을 발전하게 하는 큰 원동력으로 인간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핍은 필요한 게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빈 구멍 자체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무엇인지 모른다. 결핍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관점을 한 번 달리해 보자. 여기가 내 재능이 자랄 시작점이구나 꼭 필요한 모태구나 새로운 시선으로 한 번 바라보자. 나를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 내 재능의 모태가 될 결핍감이라는 재산이 몇 가지나 있을까 꼼꼼히 확인해 보고 세어보자.
특히 내가 결핍감을 못 참겠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자.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어릴 때 미국에서 큰 사람이면 다 아는 책을 모르는 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영어를 계속 공부하고 싶어하고 책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으로, 영어 책을 읽고 알아가는 일은 내가 무척 잘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내 안에 책을 쌓아가는 일은 너무나 열정적으로 신나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준비된 사람이었고, 타국살이가 동기부여를 꽉꽉 채워 주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히 섭렵했을 이 문화 공부가 의미가 되려면, 나와 같은 결핍감을 가지고 분투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서 도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하고 싶은 일이었으므로, 그것은 내 제 2의 커리어이자, 생계 수단이자 사명이 되었다.
결코 채울 수 없는 종류의 결핍감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애써도 속시원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도 있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좋아하고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받는 외향성, 대인관계 능력 같은 것이 내게 그런 종류의 결핍이다. 나에게 결핍감을 크게 안겨주고 속이 상할 정도로 극복하고 싶은 영역이지만, 이 부분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그 노력이 나를 갉아먹는 일임을 수많은 시도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바꾸어 내려고 노력하는 대신 결핍감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느낄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려고 하기보다, 진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하였다. 내게 주어진 사람들과 더 친밀하고 진실된 관계를 맺고 진심으로 사랑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파티와 사교, 의미 없이 흩어지는 수다 같은 것으로 시간을 채우기보다, 그것이 없는 고독한 시간을 책과 글쓰기, 영어 훈련과 운동, 교육과 컨설팅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결핍감을 피하고 내게 필요한 것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일. 이 또한 결핍이 내게 만들어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결핍감 - 내향적인 사람이, 수많은 군중 틈에서 느끼는 소외감 거절감으로 작용하는 -이라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 덕분에 나는 글로 만나는 친구들과 나누는 유대감에 더욱 감사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이는 추위에 덜덜 떨던 몸이 따뜻한 화롯가에 앉아 불을 쬐는 느낌 같은 감사와 안도감을 준다. 노곤 노곤하게 마음이 녹아 편안해진다.
결핍감은 어디서나 살아 있고, 인생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새로운 결핍감과 마주한다. 물론 새로운 것을 마주하지 않을 방법도 있다. 익숙한 결핍감, 노랜 노력으로 편안하게 꽉꽉 채워놓은 곳에서 나가지 않으면 된다. 내 마음은 그 편안하고 따뜻한 방에서 나아 새로운 결핍감과 마주하기를 언제나 두려워한다.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차갑고 을씨년스러운 감정,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불편함을 수용하는 일을 늘 망설인다.
하지만, 이 편안한 방에서 나가 새로운 결핍감과 마주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 성장을 멈추는 것은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 행동의 결과, 나는 나에 대해 구더기 무서워서 장도 안 담가본 사람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고, 나에 대한 그런 감정은 나를 사랑하는 길도 행복할 수 있는 길도 아니다.
마침내 나는 결단한다. 망설이고 피하는 대신, 이 결핍감 앞에서 나는 어떤 슬기로운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로 한다. 새로운 결핍들과 마주할 때마다 하나하나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메꿔가기로 마음먹는다. 세상의 다양한 책을 알아갈 때처럼 열정적인 기운이 솟아나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 사람들 틈에 밀려다니는 대신 고독한 글쓰기 시간을 선택했을 때처럼 따뜻한 안도감이 드는 것도 아닌 새로운 종류의 결핍감은 나를 새롭고 창의적인 길로 안내할 것이다. 인내심을 키울 것이고, 나를 많이 성장하게 할 것이다. 구멍을 메워가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메워나가면 언젠가는 단단하게 다듬어진 무언가가 잘 자라 있지 않을까. 나의 미래의 빈구멍이 뻥 뚫린 채로 아직 하나도 메꿔지지 않았는데, 도전 계획만으로 나는 벌써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