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날을 아는 꿈 (1)

<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by 하트온

새로울 것도 남다를 것도 없는 뻔한 고3 생활을 지겨워 이를 갈며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밤을 새우고, 평소에도 4-5시간 눈을 붙일까 말까, 이게 사람이 사는 건지, 병들어 가는 건지 하루하루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감정상태로 치닫고 있던 나는, 그날따라 몹시 강렬하게 슬픈 꿈을 꾸다 깨어났다.


내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앞으로 살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암환자였다. 나는 꿈속에서 딜레마에 빠져 심히 고민했다. 살던 대로 끝까지 살 것인가, 아니면 못해본 것을 해볼 것인가. 나는 수험생으로서, 매일 해야 할 공부 리스트가 있었고 그것을 몸에 밴 습관처럼 지켜왔기에, 나의 일상은 정해진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 같은 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똑같은 기찻길을 매일 같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 나의 당연한 하루 나의 바른생활이었다. 그런데 곧 기찻길이 끊긴다는 소식을 들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건, 끝까지 기찻길을 따라 달리며 모두가 내가 할 일이라고 인정하는 학생의 본분을 다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가치롭게 여겼던 모든 것을 무시하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날까. 꿈속에서 느낀 감정은 몹시도 혼란스러웠다. 꿈을 깨고 생각하면, 그런 설정과 고민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아 헛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꿈속의 고민은 어렵고 진지하고 또 당연한 것이었다.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일주일 후면 죽을 텐데 너무 짧은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슬퍼 이성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해도 막다른 골목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곧 죽는다는 걸 알면서는 평소처럼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 멋진 곳에 간다 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 슬픔만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 꿈은 나에게 몹시도 큰 충격과 변화로 다가왔다. 그 전까진 나는 스스로에 대해 영원히 죽지 않을 불사조인 것처럼 생각해 왔었던 것 같다. 영원에 가까운 수많은 날들이 남아있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기에, 죽음이라는 건 아직 내 사전에 올라오지도 않은 단어였다. 그런데 꿈속에서 죽을 날을 받아 들었던 경험을 하고부터는, 죽음은 확실하게 사전에 올랐을 뿐 아니라, 항상 첫 페이지 첫 단어처럼 책만 펼치면 수시로 마주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시작된 생각, 나는 언제라도 병들 수 있는 인간이고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점점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았다. 그 생각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발전해 갔다. '지금 이 순간'이 훨씬 더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게 하거나, 시간 낭비하게 만드는 일이 생길 때, 몹시 화가 날 정도로 나는 모든 것 중에서 시간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되어 갔다. 내 삶의 일분일초도 남이 휘두르거나 이용하게 둘 수 없었다. 내 모든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어야 했다. 내 삶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반드시 내가 결정하고, 내 인생에 관한 통제권 조종권은 나만 가져야 했다.


나는 그 유명한 '도를 아십니까' 같은 포교 활동을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그땐 없었던 게 아니다. 내가 일분일초도 빼앗기기 싫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온다는 조짐이 느껴지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걸어 사람을 피했다. 걸으며 길에서 버리는 시간조차도 몹시 아까워했기 때문에, '우리 걸음으론 20분이지만 쟤는 10분 만에 갈 걸'이라는 식으로 종종 입에 오르내릴 만큼 내 걸음은 동네에서 학교에서 유명했던 빠른 걸음이라, 웬만한 사람은 나를 따라와 말을 걸 수조차 없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Willg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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