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나의 20대는 조급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고, 그만큼 나는 불안하고 초조했다. 대학은 조급한 마음이 힘들어하는 상황들을 무제한 양산하는 곳이었다. 별 의미 없는 수다 잡담만 난무한 모임들, 동아리, 각종 뒤풀이... 나는 그런 시간들을 참아주는 일이 힘들었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30년쯤 된 옛날 노트를 들고 와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매년 같은 내용을 주문 외우듯 반복하는 지리멸렬한 교수들의 강의도 참아주기가 어려웠다. 나는 나의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는 듯한 모든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약속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게 하는 인간들도 참아줄 수가 없었고, 나의 시간을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누구든 내 감정을 부글거리게 했다.
싫어하면 피하게 되고, 피하다 보면 관계가 소원해지고, 소원해지는 만큼 점점 더 다가가기 어색하고 힘들어지는 법이었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마음의 핵이 점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더니, 가벼운 예능 같은 만남과 자리들을 깨끗이 쓸어가 버렸다. 더 이상 나갈 모임도 파티도 없는 고루한 고시생 같은 도서관 지기가 되어 있었다. 여공대생 주변으로 흐르던 고립의 강물이 쓰나미로 몰려와 둑을 무너뜨리고 숨 막히게 차오르고 있었다.
20대는 모르는 것도 많지만,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기 쉬운 나이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큰 그림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을 겉돌며 부유할 뿐이었으면서도, 나는 매일 쉽게 빨리 지나갈 수 있는 지름길만을 찾았다.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에 걸려들었다 싶은 기분이 들 때, 나는 견딜 수 없게 비관적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너는 지금 모르는 것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고, 마인드 후지고 미성숙한 철부지지만, 걱정 마. 너는 계속 배우고, 깨우치고 성장하고 변화하게 될 거야. 결국 참 괜찮은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갈 거야."
나를 믿어주었다면, 나의 미래를 믿어줄 수 있었다면, 나는 조금 더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20대를 보낼 수 있었을까.
뭐, 결국 그런 20대는 만져보지도 못했고, 나의 조급함이 20대 주변으로 고립의 벽을 꼼꼼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그 벽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은 시시때때로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야 말로 미래를 강타할 타국 생활을 대비해 심신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타국에서의 강도 높은 차별과 고립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연습 경기가 필요했고, 그때는 언젠가 타국행 편도를 끊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외국어 연마와 고립을 견디는 단련으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죽을 날을 아는 꿈은, 나를 주변 사람들과 다른 시간 개념 속에 가두고야 말았다. 내 삶에 끊임없이 은근한 고통의 감각을 더해주던 쇠 코뚜레 같았던 그 '홀로서기'의 의미를 몇십 년이 흐른 후에야 깨닫고 그때 그렇게 울었던 순간들에 대해 계면쩍은 감정이 밀려온다. 고독 속에서 만족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된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내가 회복하고 건강해지는 길이었다. 고독 속에서 신과 대면하였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씻었으며,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의미 있는 관계를 인내하며 천천히 맺어가는 법을 배웠다.
시간을 여전히 아까워하는 태도는 변치 않는 성격 같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은 시간이 계획대로 흘러야 한다고 집착하지는 않는다. 더 이상 조급하지도 않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원치 않는 것들에 빼앗기지 않는 자유가 있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다. 과거를 묶고 잠식했던 것들을 더 이상 곱씹지 않고, 미래는 현재가 뿌리내리는 결과일 뿐이리라고 그저 현재만을 담보를 잡아놓기로 한다. 나에게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일 뿐이고, 나는 이 순간만큼은 아무에게도 함부로 넘기지 않고 나의 것이라고 알뜰히 챙기며 살아간다. 어떤 순간이 주어져도, 기쁘게 맞이할 이유를 찾아내고, 이 순간을 정성스럽게 환영하며 감싸 안는다.
죽음이 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삶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즐겁게 놀다 가는 삶을 추구하며 흐르는 물살에 인생이라는 배를 맞긴다. 다가올 물살을 염려하여 갑자기 방향을 트고 맞서려고 하지 않지만, 원망에 사로잡혀 내내 눈을 지나온 길에만 두는 시간낭비도 하지 않는다.
지금 내 옆으로 지나가는 신나게 흐르는 물에 손을 넣어 보고, 스쳐가는 꽃향기와 풍경에 온 감각을 맡기며, 지나가고 있다는 뭐 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도 익숙해질 수도 없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경험에서 즐거움을 찾을 뿐이다. 모든 것이 첫 경험일 수밖에 없는 이 첫 여행은 수많은 실수를 낳는다. 실수에 낯부끄럽고 불편해하던 마음은, 점점 그 뒤뚱거리는 불완전한 경험들을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앞으로 남은 처음 겪을 일들은 서두르지도 두려워도 말고 그저 설레는 마음으로 차분하고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도 괜찮을 듯싶다. 온 우주가 나를 도우며 나와 함께 설레고 기뻐하고 있다고 믿고 나아가도 안전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