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떠난 이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들여다봐도 볼 줄을 모르니, 내 마음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자동차를 샀지만 자동차에 너무 무지해서 관리할 줄 모르고, 들여다봐도 볼 줄도 모르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입고 태어났지만, 나는 사람에 대해 너무 몰랐다. 특히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동차를 샀으면 관리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면 자신의 심신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니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내가 모르면 누군가에게 맡기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남에게 마음을 말하고 의지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면, 그건 인생이 망한 거나 다름없다는 이상한 선입견에, 모르는 것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무모한 무식까지 들어차 있어, 도움을 구할 길도 스스로 틀어막았다.
모든 것에 대해 외부적 이유를 문제 삼았다. 내가 괴로운 것은 나를 괴롭히는 남 탓이었다. 남을 못 괴롭혀서 안달 난 악한 사람들로 버글버글한 지옥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어딜 가나 지옥이었다.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룰 줄 모르는 상태에서는, 무엇을 선택해도 한결같이 지옥행이었다.
남 탓은 곧 내 탓이었다. 나를 미워하고 탓하는 만큼 남을 쉽게 미워하고 탓하는 것이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만큼, 남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남이 나에게 감정과 언어를 자유롭게 발산하는 솔직한 태도 자체가 무례의 극치처럼 생각되었다. 내가 나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들을 남에게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탓하다가, 한국 문화를 탓했다. 문화를 탓하다 보니 미국에까지 와 있었다. 내게 최고의 남 탓은 그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내가 살던 미국 서부의 모든 것을 탓하기 시작하는데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서부에서 동부로 와 있었다. 미국 동부도 탓할 것을 넘치게 가지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그때쯤 어디로 가는 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어릴 때 성경을 읽어보다가, 내 마음을 잘 돌보고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 다 와서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부모님이 들을까 봐 걱정하며 입을 틀어막고 오열했었다. <스피리티드 어웨이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본 만화에 나오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가 목욕하며 씻어내던 몬스터처럼, 나는 울면서 내 안의 거대한 짐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무언가 거대하고 따뜻한 손길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걸 느꼈고, 감동했지만, 그 경험을 일상으로 이어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없었다. 일상이라는 현실은 늘 그렇듯이 급속도로 쉴 새 없이 치고 들어왔고, 나는 어느새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볼 의지를 잃어버리고, 내 무식한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성경 구절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자 목욕 후 원래의 볼품없이 늙고 쭈그러든 자아로 되돌아온 몬스터처럼,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내 안의 있는 그대로의 자아가 보였다. 다치고 찢겨 너덜너덜한 모습,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처참한 상태로 방치된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 모습을 보기 싫어하고 등한시해온 내 마음, 내 자아를 향한 잔인할 정도로 차가운 내 감정도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떠나지 않는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청했다. 여러 가지 가르침을 얻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의 모임에도 나갔다. 성경을 읽었고, 책도 읽었다. 사람들이 권하는 책도 읽고 내가 찾은 책도 읽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떤 순간부터 나는 믿기 시작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돌볼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제대로 된 훈육을,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공급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 내 자아를 뜯어먹고 자아상을 박살 낸 거짓말이라는 해충을 잡아 없애줄 수 있었다. 망가진 자아상과 정체성을 다시 세워주고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함께 걸어가 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아름답게 긍정적으로 다시 써 줄 수 있었다. 망해버린 실패담이 아니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감동 성공 스토리로 다시 재구성하고 멋지게 써 줄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돌보기 시작하자, 놀라울 정도로 큰 변화가 찾아왔다. 정말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감정이 변했다. 시선이 변하고 행동이 달라졌다. 내가 나를 신뢰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해 내는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때론 선물도 줄 줄 아는 자신에게 매너와 예의를 갖추고 따뜻한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자, 나 자신에게 하는 모든 것이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 자세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관계가 변하고, 주변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옥은 오지 않는다. 나는 내 감정을 다루고, 그 안에서 감사를 찾아낸다. 내 마음을 지키고, 거짓말이 내 속을 뚫고 들어오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딜 가나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나를 향한 감정이 회복되고, 나는 훨씬 더 행복해졌다. 나는 더 이상 떠나지 않는다. 드디어 내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Skitter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