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사람 뒤에서 욕하지 않는다

[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by 하트온

사람은 사람을 쉽게 싫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웬만하면 모든 관계를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 함부로 사람을 싫어하기 싫다.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하고 많이 달라도 괜찮다. 나하고 다르게 액세서리 치장을 많이 하고 멋 부리는 사람도, 명품 가방을 철마다 바꿔 들고 다니며 패션 트렌드에 맞추어 옷 잘 입는 사람도, 고급 차를 타고 널찍한 큰 저택에 사는 사람도 다 좋다. 덕분에 블링블링한 멋진 모습 보면서 눈요기도 되고, 요즘 패션도 배우고, 카페 같은 예쁜 집에 초대도 받아 가보고 다 좋다. 내가 꼭 가지고 싶은 거였는데 나는 못 가지고 저 사람만 가졌다면 간혹 살짝 질투심이 밀려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더 이상 남이 가진 것에 맹목적인 탐심을 부리는 어린 소녀가 아니기에, 웬만하면 굳이 자기 안의 질투심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질투심이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질투심을 조절해 내고, 좋은 관계의 유익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좋게 보려 했던 그 노력이 무산되고, 잠재워 왔던 질투심에 불이 붙고, 타인에게 험담하여 좋았던 관계를 팔아넘기려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건 바로 상대가 내 안의 수치심에 불을 붙이는 순간이다.



수치심이 미워할 에너지를 공급한다


좋은 관계, 평화를 원하던 사람들이 돌변하여 돌아서는 순간이 온다. 바로 수치심이 건드려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멋 잘 부리는 사람도, 명품 두르고 예쁘게 차려입는 사람도, 큰 집에 잘 갖춰놓고 사는 사람도 다 좋았다.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삶을 즐겁고 풍부하게 하는 신나는 일이었다.


사람의 생각, 그 생각이 드러나는 태도 하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릴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의 가치관을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기준으로 내세우는 순간, 상대의 수치심에 불이 붙는다. 굳이 말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무언의 태도가 그런 가치관과 기준을 암시할 때도 수치심은 자극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외부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수치심을 쉽게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치심을 느끼고도 금세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스려 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수치심을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간의 좋은 머리는 나에게 수치심을 준 당사자, 그 사람 자신이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기준-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는 기준-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비슷한 수치심의 자극을 느끼고 불편한 마음을 품고 있는 감정적 동지를 찾아다닌다. 같은 감정적 경험을 했던 사람을 찾아, 나의 수치심과 너의 수치심을 연결하는 순간, 수치심을 안겨준 그 상대가 만족하지 못하는 기준들을 과장 좀 더 보태서 100가지도 더 만들어 낸다. 순식간에 '멋 잘 부리고 여유 있어 좋아 보이던 사람'이, '교양 없는 졸부 주제에 잘난척하고 남 무시하고 과시하는 교만한 속물'이 된다. 발 없는 루머는 동네방네 퍼져나가고,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수치심의 자극을 느꼈던 사람들, 질투심의 자극을 느꼈던 사람들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그 사람 이야기에 과장의 열을 더해준다.


수치심을 스스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든 이런 패턴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확보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어딜 가든, 온갖 말을 나눌 수 있는 '수다 상대들'을 만든다. 혼자서는 헤쳐갈 수 없다. 감정적으로 수치심을 의존하고 연결할 상대가 있어야만 견딜 수 있다. 남자들의 폭력 집단도 여자들의 수다 집단도 혼자 어쩌지 못하는 수치심을 해결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수치심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수치심을 함께 나누어질 수 있는 집단 속으로 숨어드는 방어법을 선택한 것이다.


집단을 이루어 수치심의 모욕감을 안겨 준 상대를 공격하고 흠집 내는 방법이, 순간적으로는 자극받은 수치심을 어느 정도 시원하게 가라앉혀 주는 효과가 있는 듯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진통제일 뿐, 결코 오래가는 치료제가 아니다. 수치심을 스스로 다루어 내지 못하고 뒤에서 남의 욕이나 하고 다니는 - 혹은 상대를 흠집 내고 폭력을 가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의 후폭풍이 잇따른다. 더 큰 수치심이 삶을 잠식한다. 그리고 함께 미친 듯이 남의 험담을 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내 뒤에서 내 욕도 할 것 같은 의심과 불안감이 밀려온다.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수치심도 해결되지 않았고, 나는 수없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고, 주변 관계들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내가 그런 수치심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 남 욕 잘하는 사람이라는 추악한 평판만 널리 알려졌고, 내 삶의 모든 것이 더 부끄러워졌다.


타인의 수치심과 연결해서, 상대를 흠집 내고 욕하는 것은, 내 수치심을 그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이 수치심의 화살을 타인에게로 돌려버리려는 발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발악은 결국 남보다 내 인생을 더 흠집 내고, 내 소중한 삶만 낭비하는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수치심을 다루는 글쓰기


내가 원하지 않는 일, 내 삶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일에 내 에너지와 시간을 쓰지 말자. 더 건강한 방법을 찾아 내자. 더 건강한 방법은 눈을 똑바로 뜨고 내 안의 수치심을 바로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한 번만 잘 해내면, 그다음부터는 점점 더 쉬워진다. 내 안의 수치심과 과감히 마주하는 방법으로 나는 글쓰기를 추천한다. 다음 이야기는 내가 처음으로 글을 쓰다가 내 안의 수치심과 마주했던 일화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은 표가 나. 사랑 많이 받는 여자들은 보석이 많아. 하트온씨도 남편한테 목걸이 하나 사 달라고 해.


이 말이 내 안의 수치심을 몹시 자극했다.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큰 아이"라는 말이 불러오는 결핍감에 시달려온 나의 내면은 '사랑 많이 받는 여자들은 보석이 많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미 몹시 불편했는데, 그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나를 콕 집어 '남편한테 목걸이 하나 사달라고 해'라는 말을 덧붙이는 순간, 내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져 버릴 정도로 수치심에 불이 제대로 붙었다.


다시는 그 말을 한 사람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혐오와 증오의 감정이 밀려왔다.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같은 감정을 느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과 만나 한바탕 그 여자 욕을 하고 말았겠지만, 콕 집어 그런 모욕을 당한 사람도, 그 자리를 못 이기고 떠난 사람도 나 혼자였기에, 나는 오롯이 혼자서 나의 감정과 마주하고 감당해야 했다.


그때쯤 나는 큰 감정이 밀려올 때, 혼자 글을 쓰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와서 이런 글을 썼다.


너무 화가 난다. 그리고 너무 억울하다. 나는 금속 알러지가 있어, 액세서리를 몸에 걸치는 걸 싫어하는 성향일 뿐인데, 그런 점들에 대한 배려 하나 없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 목걸이 하나 못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넘겨짚어 버리는 그 사람의 태도에 정말 화가 난다. 사랑받는 여자는 보석이 많다고 정의해 버리는 그 말에 나는 너무 억울해진다. 나를 남편에게 보석을 사달라고 구걸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 그 사람의 시선에 너무 화가 난다.


내 심정을 토로하며 한참을 글을 쓰고 나서, 내 글을 처음부터 주욱 다시 읽어보니, 무언가 내가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그녀의 시선에 나는 몹시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이 보는 나의 이미지,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에 몹시도 휘둘리고 있는 내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나는 그런 내가 안타까웠다. 나는 나를 도와주고 싶었다. 나에게 이렇게 글을 써 주었다.


와. 그 여자 답 없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액세서리가 없을 수 있고 몸에 걸치지 못할 수 있는데, 그걸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라서 그렇다고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다 묵살해 버리다니 정말 무식하고 배려 없는 정도가 하늘을 찌르네.

그 사람의 무식한 기준이 네 자유를 가두게 내버려 두지 마. 너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내 말을 잘 들어 봐. 너는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는 충분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네 몸에 걸치지 않을 자유가 있어. 네 남편과의 관계를 타인이 재단하려 한다는 자체가 정말 무례한 거야. 그 사람이 자신의 무례와 무지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 네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야. 나는 네가 액세서리 하지 않는 모습이 수수하고 깔끔해 보여서 좋아.

너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의 가치를 알고, 너의 기호와 성향을 존중하고 있어. 너를 잘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부로 들이대는 기준에 큰 가치와 힘을 실어 주지 마. 물론 만족시킬 수 없는 타인의 기준들이 내 안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긴 해. 하지만, 세상 기준들 때문에 수시로 밀려드는 수치심이 너를 괴롭히게 두지 말고, 너에게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그 타인의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는 것인지를 꼼꼼히 살펴봐. 주로 타인에게 수치심을 일으키는 기준 자체가 무식한 발상에서 나온 문제 투성이인 경우가 많거든.

네가 수치스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거,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수치스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게 이젠 보이지? 당당하게 액세서리에 관한 남의 생각 무시하고, 네 필요대로 자유롭게 편하게 행복하게 살아. 너에겐 그럴 자격이 있어. 나는 무조건 너의 기호와 선택을 지지하고 너를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도울 거야. 그런 내가 네 뒤에 있다는 거 잊지 말고 늘 든든하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네 삶을 네 선택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살기 바란다.

-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나'로부터 -


어느새 나는 수치심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수치심을 이겨내는 힘이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생각을 잘해주면 내가 수치심을 이겨낼 수 있는 거였다. 더 이상 타인의 수치심에 의존하고 연결하려고 애쓰고 질질 끌려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 사람들과 몰려다니며 남을 흠집 낼 길을 찾고 남 욕 하느라 바쁜 치졸한 인간이 될 필요도 없다. 전화기를 붙잡고 오늘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감정을 호소할까 고민할 필요도 깨끗이 사라졌다. 내가 스스로 수치심을 다루고 이겨낼 수 있게 되는 순간, 나는 그 모든 부끄러운 일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johnh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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