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타인이라는 심판자
누군가 나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실수로 지저분한 오물을 밟은 것처럼 기분 나쁘고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누가 당신에게 나를 규정하는 심판자가 되라고 허락했는가? 함부로 그 자리에 올라 나를 내려다본다는 느낌은 몹시도 불쾌하고 더럽다. 무시당했다 싶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쓰고 떫은 뒷맛을 남긴다. 심판자의 포지션 자체가, 심판당하는 사람의 것보다 높아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일까. 나보다 더 높다고 인정해 준 적이 없는데, 내 위에 군림하려는 위압적 자세를 취할 때, 어이없고, 억울하고, 두렵고, 자존심 상하고, 당황스럽고, 배신감 들고, 비참한 각종 부정적 감정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너는 이런 면이 좀 부족해.
이것만 보완하면 더 좋을 텐데.
네 실력이 탑은 아니지.
이런 수준으론 어렵지.
너 정도 애들은 널렸어.
네 인생은 한 70점 정도?
수많은 이런 말들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뿌려대며 자꾸 곱씹게 되는 후유증을 남기곤 했었다. 감히 네가? 진짜 전문가들에게 제대로 평가받는 내 실력을 보여주겠어.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은 돌아서고, 오기와 복수심이 발동해서 뒤끝을 갈곤 했었다.
이런 말들에 느끼는 내 감정과 태도가 최선일까. 진짜 전문가들이라는 의미조차 허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타인의 한 마디에 감정을 상하는 자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자체가 심히 귀찮고 피로하고 허무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원래 쉽게 편견을 품고, 서로를 싫어할 이유를 찾기에 발 빠르고, 경쟁적으로 기싸움을 하는 인간 본성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상처받고 원한을 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의 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왜 기분이 나쁠까
누가 나를 낮추었다고,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고 왜 내 기분이 나빠야 할까. 부정적인 시선, 잘못된 행동의 주체는 그쪽인데, 왜 내가 상해야 할까. 어쩌면 내 잘못이 섞여 들어 있진 않을까. 어쩌면 나 자신이 내가 실제로 낮출만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 사이에 높고 낮음 자체가 있다는 가치관이 깊숙이 박혀 뼛속 깊이 인간 서열이 새겨져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실은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고, 내가 파놓은 그 구멍에 내가 떨어져 갇혀버린 비루한 느낌을 받아서인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서로를 미워하고 탓하는 아귀다툼 현실을 직시할 용기 없이 동화 속 환상에 나를 가두어 놓고, 쓸데없이 상처받고 감정 소모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가 뭐라 하건, 충분한 나 자신, 내 재능을 인정한다면, 주어진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면,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고 존중할만한 내 존재 가치를 확신한다면, 인간이 어떤 모습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면,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무시 '당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당한다'는 것은 보다 강한 자가 있고 보다 약한 자가 있다는 조건하에서만, 내가 나의 정체성을 피해자 - 강자에게 피해를 입은 약자-로 규정할 때만 형성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약자로 정해놓고 사는 일이 과연 나 자신에게 옳은 일일까. 내가 강한 사람이 되었음에도 인지하지 못하고 살면서, 당했다고 아프다고 호소하는 모습이 나 자신이 정말 되고 싶은 모습일까.
혹은 이것은 깊은 실망감 인지도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무시당했다는 씁쓸한 감정은, 나를 향한 상대의 본심에 대한 깊은 실망 인지도 모른다. 나를 좋게 봐주길, 내 재능을 대단하게 봐주길,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해 주길, 요즘 어느 드라마 작가 표현 따나 나를 '추앙'해 주기를 바랐던 내 마음이, 상대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나를 낮추어 보며 신랄하게 분석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그토록 차가운 그의 감정의 온도에 대해, 다리 힘이 풀리도록 실망해 버린 것인지 모른다.
무시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대했던 일이 어그러져서 실망해서 속상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보니, 타인의 감정 - 늘 변화하고 고정될 수 없는 것- 에 기대를 하는 자체가 얼마나 큰 고통을 낳을 수 있는지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연애는 갈수록 고통스러워지고, 오랜 결혼 생활은 배신감으로 점철되는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의 감정에 기대고 기대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는지 점검해 본다. 남편이 나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주기를, 자녀들이 엄마를 최고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존경해 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애초에 나에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는 존재들은 칼같이 차단해 왔고, 그런 마음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노력하고 있었건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이 지독한 갈구는 나를 향한 남의 감정이 기대와 다를 때마다, '무시당했다는' 감정의 고통으로 나를 몰아갔는지 모른다. 이 짓을 계속해야 할까.
나는 어리석고 실수도 많이 하는 허술한 사람이지만, 반복은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적어도 같은 고통에 거듭 두드려 맞는 일만큼은 피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무시당하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고통의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나를 향한 타인의 감정에 자유를 주면 어떨까. 어느 책 제목처럼 '미움받을 용기'를 발휘해 보면 어떨까. 그런 담대함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나를 보는 시선과 감정이 어떠해도 꿋꿋이 내 길을 걷고 당당할 수 있을까.
내 감정을 극복하고 내 본능을 거슬러 행동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무시당한다는 감정의 고통이 싫으니 나는 고집을 부리며 반대로 가는 길을 택해 보려 한다. 우선 나는 피해자의 자리만큼은 결코 다시 찾지 않을 결심을 한다. 나는 모두와 동등하게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추앙'하고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해 보려 한다. 나에 대한 내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훨씬 더 안정적이라 남의 감정 남의 시선보다는 확실히 믿고 잡아볼 만한 지푸라기다. 그러니 나는 지치지 말고, 나를 위해 힘을 내야만 한다. 나를 위한 강한 언덕이 되어 주기로 한다. 오늘도 나에게 힘을 내라고 건강한 아침을 차려주며 어깨를 두드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