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왜 그 미술 학원을 다니게 되었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도 내가 미술 학원에 다니길 바란 사람도 없었고, 딱히 큰 이유가 없었다. 대부분 인문계 학교와 대학 진학을 바라는 아이들은 특별히 그냥 두기에 아까운 재능을 보이지 않는 한 예체능 활동을 그만두는 시기였는데,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도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피아노 레슨을 받는 중이었는데, 나름 촘촘한 일상에 미술 학원을 끼워 넣은 장본인은 바로 나였다.
이건 미술 학원을 그만두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미술학원 원장님은 명문 여대를 졸업하시고 미술학원 운영과 작품 활동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꾸준히 해내고 계신 능력 있는 화가셨다. 크게 유명하진 않아도, 미술계 종사자들에게 그분의 이름을 언급하면 알아볼 정도로는 알려져 있는 분이었다. 인간적으로 그분이 참 좋다거나 존경스럽다거나 특별한 정이나 교감을 나누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당시 그분이 풍기는 능력의 멋에 취했었던 것 같다. 나는 태생적으로 사람에게 열광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때의 그런 경험은 나에게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고, 난생처음 경험했던 감정은 강한 인상으로 나의 뇌리에 새겨져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나는 예고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지도 않다는 걸 가슴이 아프도록 느끼고 있었지만, 그 원장 선생님의 세상을 나는 매일 같이 찾고 있었다. 지금 그분을 알게 되었다면, 그분의 미술 작품의 가치나, 사업수완 같은 것을 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그분의 세계에 젖어들었다. 그곳에서 느끼는 어떤 문화와 분위기가 나의 갈급한 갈증을 채워준 것인지 모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누군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선, 난생처음 들어보는 외국 팝송들이 흘러나오곤 했는데, 낯설고 세련된 선율은 먼 곳으로 떠나는 선박에 오른 것처럼, 내 심장에 짜릿하고 신비하고 거대한 울림을 일으키곤 했다. 원장님은 매일 그런 음악들과 잘 어울리는 이국적이고 운치 있는 물건들을 배치해서 정물화 모델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바로 원장 선생님이 제시하는 '오늘의 그림' 주제였다.
오전에는 어른들이, 오후에는 아이들이 정물이 놓인 테이블 주변에 이젤을 펼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실은 물감 냄새와 붓을 씻고 털고 바르는 다양한 붓놀림의 향연으로 가득 차고, 각자 자신만의 그림에 몰두해 1-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는 그 경험이 너무나 좋았다. 그림을 뛰어나게 잘 그린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기회들을 찾았고, 실제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대학에 가서도 미술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했었을 정도로 나는 꽤 오랫동안 그림을 내 생활의 일부로 여겼었다.
원장 선생님은 아주 꼼꼼히 그림을 봐주는 분은 아니었지만, 한 번 봐주실 때는 뭔가 그 진지한 태도가 나를 아이가 아닌 동등한 성인 화가로 여기는 듯한 압력에 귀를 바짝 기울이고 개선점을 찾아 노력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아이들의 그림을 콕콕 찍어 지도해 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화폭에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내는 원장 선생님은 정말이지 다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도 저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까지 구체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에는 분명 나의 미래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학원에는 두 명의 선생님들이 더 계셨는데, 원장 선생님에 비해 더 여성스럽고 상냥한 성향의 분들이면서도, 원장 선생님과 같은 우아하고 당당한 멋도 갖춘 매력적인 분들이었다. 그분들이 계신 것인 그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즐겁게 하는 면이 컸었다. 그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내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언급을 하실 때나, 내 그림을 보고 응원하는 듯한 긍정적인 한 마디를 하실 때, 내 마음은 어찌나 향기롭고 맑은 공기를 마신 듯 유쾌해졌던지! 나보다 20-30살 많은 여성에게도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설렜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그분들의 표정과 몸짓과 목소리를 기억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원장 선생님의 딸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가 되었을 때, 딸이 3층의 집에서 2층의 학원으로 내려오면, 별일 아니라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정으로 딸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시는 모습이었다. 외국에 살다 온 사람이 아닌 이상 내 주변 어른들 중에는 그렇게 영어 책을 술술 읽으며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내심 깜짝 놀라 모녀가 영어 공부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곤 했었던 것 같다. 아, 그렇게 딸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엄마이면서, 자신의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경제적 자립과 커리어, 자신만의 공간을 이루어낸 그 선생님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은 얼마나 거세게 몰아쳤는지!
어려서 이름을 붙이지 못했던 그 감정은 여전히 이름이 없다. 생각을 짜내고 짜내면 부러움이나 선망...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긴 해도, 그 어느 단어도 그때의 감정을 다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 우연히 표류했던 무인도,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무인도에 굳이 어설픈 이름을 붙여 규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Martina_Bulk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