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는 소녀

[에세이] 나는 왜 나처럼 사는가?

by 하트온


그때 그 아이


평소 수업에 집중 잘하는 모범생인 편이었지만, 바람 부는 날만큼은 도무지 창 밖 학교 운동장을 둘러싼 언덕 위에 온 신경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거센 돌풍에 힘 없이 휘둘리는 애처롭게 어린 나무였다. 바람이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나무가 불쌍해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나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하곤, 옆에 앉은 짓궂은 녀석이 검지 손가락을 쭉 뽑더니 제 옆머리 주변을 몇 바퀴 돌린다.

얘, 정신 이상한 거 아님?


평화로운 수업 시간. 너무 평화로워서 지루해 죽겠는 시간. 아무도 때리지도 건드리지도 않는데 처마 끝에 맺힌 빗물 같은 눈물방울을 교과서 위에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미친 여자애. 그게 바로 나였다. 바람에 속절없이 나부끼는 나무만 보면 심장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을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옆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해도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그 아이


시간이 훌쩍 지나, 그때 그 아이보다 더 큰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내내 그 아이를 줄곧 마음에 떠올리곤 했다. 나무를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바람이 치는 대로 휘청이는 어린 나무의 무기력한 움직임, 그걸 바라보는 아이의 불안정한 감정, 주변과 분리된 고립된 정서, 폭우가 내리는 날의 습하고 거센 공기 같은 것들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무는 그 아이였고, 아이는 그 나무였다. 아이는 나무를 보며 자신을 보았다. 아이의 내면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지는 지금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이 휘몰아치는 환경 속에서 어린아이로 살아가는 고통. 이제나저제나 뿌리가 뽑힐까 아슬아슬한 자아상. 옆에서 사이코냐고 손가락질을 해도, 지켜야 할 체면보다 더 큰 내면 압력에 눈물이 밀려 나와 버리고야 마는 감정.



아직도 나무


아직도 나무는 내 시선을 끈다. 다행히 내 몸은 교실 안에 묶여 있지 않다. 이젠 멀리 창밖의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나무에게로 가까이 다가간다. 자세히 보면 나무는 한 가지 모습이 아니다. 나무는 다양하다. 각양각색의 껍질 패턴과 잎모양을 가진, 다양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나무는 자란다. 어린 나무를 잘 보살피고 가꾸다 보면, 어느새 둥지가 굵어져 웬만한 힘으로는 뽑아내기도 베어내기도 힘들어지는 때가 온다. 나무는 엄청난 생명력의 힘으로 사방 옆으로 몸을 굵히고, 하늘로 가지를 뻗치고, 땅으로 뿌리를 뻗어나간다.


어떤 토양 위에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무의 인생이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무도 나이를 먹고,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큰 나무의 기운에 밀려 빛과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어 골골대는 나무도 있고, 충분한 영양과 햇살과 수분의 축복 속에 건강하게 쑥쑥 거침없이 자라는 나무도 있다.


더 이상 흔들리는 나무에 눈물을 쏟지는 않는다. 내 안의 나무는 더 이상 어리지 않고, 뿌리 뽑힐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건강하게 잘 자라 가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어떤 조건이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지 아는 지혜가 생겼다. 땅속 깊이 내린 뿌리가 단단히 몸을 지지하고, 두꺼운 껍질이 마음을 감싸고 있어 더 이상 바람이 그렇게 아프지 않다. 그냥 지나가는가 보다. 원래 바람이 있어야 하는가 보다. 그렇게 스쳐 보내고 곱씹지 않으려고, 누굴 탓하지 않고 마음을 구름처럼 가볍게, 갈대처럼 유연하게 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계속 비워내야, 계속 쭉쭉 하늘 위로 성장할 수 있다. 몸을 웅크릴 수 있을만큼 유연해야 바람이 지나가도 다치지 않고 바람을 지나 보낼 수 있다. 매일 정체성의 뿌리를 단단히 다지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낸다. 쉬지 않고 굵어져 가고 끊임없이 뻗어간다. 나는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가 되었다. 쭉 잘 자라 갈 것이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bes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