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에세이] 허먼 멜빌과 떠나는 모비딕 항해
<모비딕>은 첫 시작 문장부터 짜릿하고 매력적이다.
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해두자
대부분의 작가들은 모두가 ‘카인의 후예’라는 인류 공통의 운명, 질투로 형제를 죽인 '죄인’ 정체성에서 고민을 시작을 한다. 반면, 멜빌은 자신을 시작부터 주류 세계에서 소외시킨다. 사라가 아닌 하녀 하갈의 아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불신으로 낳은 죄의 씨앗.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딱히 역할이 없는 존재, 카메라 밖 ‘영원한 이방인’의 자리에서 시작하고 있다. 시작부터 바로 뭍(정통)에서 바다(정통의 바깥 세계)로 떠밀려 나가 버리는 이 느낌이 정신없이 혼미하고 짜릿하다.
… 지갑은 거의 바닥이 났고 또 뭍에는 딱히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으므로,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내가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혈액순환을 조절하기 위해 늘 쓰는 방법이다. 입 언저리가 일그러질 때, 이슬비 내리는 11월처럼 내 영혼이 을씨년스러워질 때, 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거나 장례 행렬을 만나 그 행렬 끝에 붙어서 따라갈 때, 특히 심기증에 짓눌린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보는 족족 후려쳐 날려 보내지 않으려면 대단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권총과 총알 대신이다… 바다를 알기만 하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바다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멜빌이 나열한 바다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절박하고 절대적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도무지 뭍에서는 버틸 재간이 없어, 그 모든 것을 충전시켜줄 바다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바다가 아닌 곳에서 자신이 향하고 있는 지점은 총구를 스스로에게 겨누어야 할 정도의 절망이고 고갈임을, 그래서 최대한 빨리 바다로 떠나야만 하는 절실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마음의 힘이 고갈될 때 바다를 찾는다는 말을 나는 이해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항구도시 뉴욕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산 멜빌과, 항구도시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주기적으로 영혼에 바다 충전을 해 주어야 하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공감대 덕분에 시작부터 나는 작가 멜빌에게 반해버렸다. 그가 어딜 가건 따라가고 싶어졌다. 멜빌이 ‘물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바다를 향한 감정이 '찐'이라는 사실이 시작부터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안도감을 깔아주기 때문이다.
보라! 더 많은 무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바다를 향해 곧장 걸어오고 있다. 바닷속으로 텀벙 뛰어들 것처럼… 물에 빠지지 않는 한, 될 수 있으면 물에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것이다… 말해달라. 저 모든 배의 나침반 바늘의 자력이 그들을 이곳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일까?… 어느 길이든 마음에 드는 오솔길을 골라서 걸어간다고 하자. 당신이 택한 길은 십중팔구 골짜기로 내려가 시냇가 웅덩이에 이르게 될 것이다. 웅덩이에는 마력이 있다… 명상과 물은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 나아아가라가 모래 폭포라면, 어느 누가 그것을 보려고 수천 마일이나 먼 길을 떠나겠는가?
자신이 왜 바다를 좋아할까, 왜 바다로 나아가고 싶어 할까, 자신뿐 아니라 사람들은 어디서건 물 가까이로 찾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깊이 고민했던 작가의 사색이 느껴진다. 부산에서 태어난 나뿐만 아니라, 바다를 한 번 경험한 사람들은 또 바다를 떠올리게 된다. 바다의 세찬 힘과 넉넉한 품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고 안길만 하다. 누군가는 한 밤 중에 바다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마음에 밀려오는 슬픔과 낙망의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 싶은 극단적인 충동이 들기도 한다.
눈언저리가 흐릿해지고 허파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시작할 때면 나는 언제나 바다로 나가는 버릇이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결코 승객으로서 바다에 나아가지 않는다 (여러 이유로 항해를 즐길 수 없고, 돈 받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고 오히려 돈을 내야 하기 때문). 나는 꽤 노련한 선원이지만, 제독이나 성장이나 주방장으로서 바다에 나가지도 않는다. 그런 직책에 따르는 영예와 특별대우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맡기겠다... 수고나 시련이나 고생 따위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딱 질색이다… 배를 돌보지 않아도, 나 자신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바다에 나갈 때면 나는 돛대 바로 앞에 서 있거나 앞 갑판으로 곧장 내려가 로열마스트 (가장 위에 있는 돛대) 꼭대기로 올라가야 하는 일개 선원으로 간다. 사실 나는 명령에 따라… 펄쩍펄쩍 뛰어다녀야 한다. 처음에는 꽤 힘든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어느 심술 사나운 늙은 선장이 나에게 비를 들고 갑판을 청소하라고 명령한다 해서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늙은 선장이 아무리 나를 혹사하고 부려먹어도, 아무리 쥐어박고 후려갈겨도, 나는 괜찮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 - 다시 말해서 육체적인 관점에서든 정신적인 관점에서든 -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때리고 맞는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어깨뼈를 문질러주면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 승객은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내야 한다. 돈을 내는 것과 받는 것은 천지 차이다. 돈을 내는 행위는 과수원의 두 도둑 - 아담과 이브 - 이 우리에게 물려준 괴로움 중에서도 아마 가장 불쾌한 괴로움일 것이다...'대가를 받는 것' - 이것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돈이야말로 지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멋진 활동으로 돈을 받는 것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우리 자신을 파멸에 내맡기고 있는가!
... 마지막으로 말하거니와, 나는 언제나 일개 선원으로서 바다에 나간다. 앞 갑판에는 건강에 좋은 운동과 맑은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은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보다 훨씬 우세하고, 따라서 뒷 갑판에 있는 선장은 대부분 앞 갑판의 일반 선원들이 마시고 뱉은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사에서도 지도자가 모르는 사이에 일반 대중이 지도자를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다.
멜빌은, 스스로 선원의 자리를 선택한다. 편안한 안락함으로 가장한 승객의 자리 - 실은 멀미로 고생하게 되는 불편한 자리 - 와,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명예 따위로 포장한 선장 및 지휘자 자리 - 실은 하기 싫은 생고생이 따르는 책임 막중한 자리 - 는 필요 없고, 실질적으로 배 위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자리. 모든 좋은 공기를 처음으로 마시고, 모든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자리이며 가장 불편함과 고생이 적인 자리를 취할 수 있고, 게다가 노동의 대가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막대하고 시켜먹어 상하는 자존심 따위는 바다에 던져버린지 오랜 것 같다. 누구나 다 조금씩 노예인 세상에, 내가 조금 더 노예가 된다고 해서 만족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화자의 주장이다.
...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고래 자체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 경이롭고 신비로운 괴물이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고래가 섬처럼 거대한 덩치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그 거칠고 먼바다와, 고래가 일으키는 형언할 수 없는 위험들과 파타고니아에서 고래를 보고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수많은 목격담에 따르는 경이로움 - 이런 것들이 바다를 향한 열망 쪽으로 나아가도록 나를 부추겼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것에 아무 자극도 받지 않았겠지만,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금단의 바다를 항해하고 미개인들의 바닷가에 상륙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래는 확실히 19세기의 뜨거운 '화두'였던 것 같다. 마치 신화 속 영웅들이 이겨내야 했던 거대 '괴물'과 같고, 동화 속 기사들이 공주님을 지키기 위해 무찔러야 했던 '용' 같은, 죽여 데려오기만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예로운 성공'이 되는, 젊음과 건강이 허락한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매력적인 목표물이었던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허먼 멜빌의 글에는 시원한 인생에 대한 통찰과, 보편적인 믿음과 신념들에 도전하는 진솔한 용기가 흐른다. 덕지덕지 발린 기만의 차와 포를 떼내고,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이성이 바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위에 장엄한 바다와 19세기의 고래 떼가 밀어닥친다. 그것이 내 가슴을 무척이나 떨리게도 하고 시원하게 씻어주기도 한다. 나는 멜빌 작가에게 확실히 반해버렸고, 그를 꼼꼼하게 따라다니며 함께 항해든 모험이든 뛰어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참고 자료: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작가정신, 김석희 역) 1-2 장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furu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