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에세이] 허먼 멜빌과 떠나는 모비딕 항해
멜빌 작가는 앞에서부터 자꾸만 '낸터컷'이라는 곳을 여러 번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낸터컷에서 출발하는 포경선이 아니면 타지 않겠다고도 하고, 낸터컷이 고래잡이의 원조라는 뉘앙스로 거듭 들먹인다. 14장에서는 심지어 독자들에게 지도를 꺼내 낸터컷을 찾아보라고 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 우리는 무사히 낸터컷에 도착했다. 낸터컷! 지도를 꺼내서 들여다보라. 낸터컷이 실제로 세계의 어떤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라. 낸터컷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난바다에 에디스턴 등대보다 더 외롭게 서 있다. 낸터컷을 보라. 그것은 단순한 흙무더기, 팔꿈치 모양의 모래언덕을 뿐이다. 배우지도 없이 전체가 해변이다.
작가가 시킨 대로 지도를 찾아보니, 낸터컷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최남단, 코드 곶(Cape Cod)에서 가까운 섬이다. 정말 팔꿈치 모양처럼 생겼다. 이곳은 섬 전체가 모래밖에 없는 해변가여서 정착해서 살아가는 삶이 정말 녹록지 않았었을 것 같다. 모래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특수한 모래 신발을 신고 다녔어야 할 정도였다 한다. 작가는 이 섬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섬은 인디언들(미국 원주민)에 의해 개척되었다는데,... 전설은 이렇다. 옛날 독수리 한 마리가 뉴잉글랜드 바닷가에 내려와 인디언 아이를 채갔다. 부모는 아이가 넓은 바다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슬피 울부짖었다. 그래서 독수리가 날아간 방향으로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카누를 타고 떠난 그들은 위험한 항해 끝에 섬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속이 비어 있는 상아 상자 하나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가엾은 인디언 아이의 해골이었다. 그렇다면 해변에서 태어난 낸터컷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바다에 의지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처음에는 모래 속에서 게와 조개 따위를 잡았다. 좀 더 대담해지자 그물을 들고 얕은 바다로 걸어 나가서 고등어를 잡았다. 좀 더 경험이 쌓이자 보트를 타고 나가서 대구를 잡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큰 배들로 이루어진 선단을 바다에 띄우고 물로 이루어진 세계를 탐험했다. 지구를 일주하는 배들이 끊임없는 띠를 이루었다. 그들은 베링 해협을 들여다보고, 사시사철 모든 바다에서 대홍수를 이기고 살아남은 가장 힘센 생물, 세상에서 가장 기괴하고 가장 거대한 생물과 영원한 투쟁을 벌였다... 이 벌거벗은 낸터컷 사람들, 이 바다의 은자들은 바다의 개미탑에서 기어 나와, 그들 모두가 알렉산더 대왕인 양 바다 세계를 침략하고 정복하여,...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을 나누어 가졌다. 미국은 텍사스에다 멕시코를 보태고, 캐나다 위에 쿠바를 얹어도 좋다. 영국은 인도를 몽땅 삼키고, 불타는 깃발을 태양에 매달아도 좋다. 하지만 이 지구의 3분의 2년 낸터컷 사람들의 것이다. 바다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황제들이 제국을 소유하듯 그들은 바다를 소유한다. 다른 뱃사람들은 그 바다를 지나갈 권리밖에 없다. 상선들은 다리의 연장이고, 군함들은 바다에 떠 있는 요새일 뿐... 해적선이나 사략선조차도...다른 배를 약탈할 뿐, 바닥이 없는 깊은 바다에서 생활의 양식을 끌어내려하지는 않는다. 낸터컷 사람들만 이 바다에 살고 바다에 의존한다. 성경 구절을 빌리면 낸터컷 사람들만이 '배를 바다에 띄우고' 바다를 자신의 농장처럼 경작한다. '그곳'에 그들의 집이 있고, '그곳'에 그들의 일터가 있다... 들꿩이 초원에서 살듯이 그들은 바다에서 산다. 그들은 파도 사이에 숨고... 파도를 기어오른다. 몇 년 동안 그들은 육지를 모르고 지낸다. 그래서 마침내 육지에 오면, 육지는 다른 세계 같은 냄새가 난다. 그들에게 육지는 달이 지구인에게 낯선 것보다 더 생소하게 느껴진다. 육지를 모르는 갈매기는 해가 지면 날개를 접고 파도 사이에서 흔들리며 잠들듯, 낸터컷 사람들은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이 오면 돛을 감아올리고 누워서 쉰다. 그들의 베개 바로 밑을 바다코끼리와 고래가 떼를 지어 지나간다.
멜빌은 낸터컷이라는 불모의 섬을 개척해서 바다를 일터로 삶으로 여기고 살았던 낸터컷 원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뭍이 달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만큼, 바다에서의 삶에 충실했던 그들만이 진짜 바다의 주인이며, 다른 사람들은 그저 뭍에서 다시 뭍으로 가기 위해, 뭍에서 잘 살아갈 재산과 명예를 챙기기 위해 바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모비딕>의 화자 이스마엘은 그런 원조 바다 주인이 태어난 곳 낸터컷 섬에 퀴퀘그와 함께 와 있다. 꼭 이곳에서 출발하고 싶었던 그였다.
출발 시작점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지금 포경업의 중심지는 뉴베드퍼드인데, 꼭 낸터컷까지 와서 출발했어야 했을까. 중요한 것은 정신,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은 초심이라고 멜빌 작가가 말해주는 듯하다. 그때의 '대형선', 그리고 그 대형선 기술을 이용한 최고의 돈벌이 '포경업'은 지금의 월스트리트, 대기업, 혹은 IT 테크놀로지 같은 것이다. 신기술, 가장 돈이 되고 모두가 선망하는 산업의 중심에 발을 담그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의 심장 소리가 거세게 요동치는 대상. 그곳에 두 가지 길,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하나는 어디가 가장 핫한가 누가 돈을 가장 많이 쳐줄 것인가 트렌드를 따라다니는 마음, 또 하나는 바다와 내 삶이 일체가 되는 그 낸터컷 정신을 지키는 마음.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지만, 두 가지 마음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 가지 마음은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이 속한 환경까지 모두 파괴시키는 길로, 다른 마음은 생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오래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로 갈라져 나갈 것이다. 그것이 이스마엘이 지켜나가려는 정신이기를 바란다.
이스마엘과 퀴퀘그, 두 사람은 '물보라 여인숙' 주인이 소개해준 그의 사촌이 운영하는 '트라이포츠'라는 여관에 묵기로 하였다. 이 여관이 풍기는 분위기도 만만치가 않다.
낡은 현관 앞에 세워진 낡은 중간 돛대의 활대에 검게 칠한 거대한 나무 냄비 두 개가 당나귀 귀처럼 생긴 손잡이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활대의 바깥쪽에 뿔처럼 튀어나온 부분은 톱으로 잘려 나가서, 이 낡은 돛대는 꼭 교수대처럼 보였다... 그 교수대를 바라보면서 어떤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남아 있는 두 개의 뿔을 쳐다보면서, 하나는 퀴퀘그를, 또 하나는 나를 위한, 그래서 두 개의 교수대인가, 하고 생각하자 목이 근질거렸고,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포경 항구에 도착해서 투숙한 여인숙의 주인 이름이 '코핀' (관)이었다. 고래잡이들의 예배당에 들어갔을 때는 묘비들이 눈앞에 늘어서 있었고, 그리고 이곳에는 교수대가 있다! 게다가 거대한 검은 냄비 한 쌍도 있다. 이 마지막 징조는 지옥에 대한 암시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이스마엘에게 불안감을 몰고 오는 이런 징조들이 이들의 죽음,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일까 찌르르 내 가슴도 떨려오기 시작한다. 낯설고 불안한 이스마엘 일행 앞에, 노란 머리에 노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타나 어떤 남자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이 펼쳐진다. 죽음을 두려워할 시간이 있으면 정신 차리고 마구 휘몰아치는 현실 파도나 잘 헤쳐내라는 작가의 메시지처럼 느껴지는 장면이다. 욕을 퍼붓던 여자는 여관 안주인, 허시 부인이었다. 그녀는 이스마엘과 퀴퀘그를 방으로 안내한 뒤, 식탁에 앉히고 음식을 권한다. 여기엔 딱 한 가지 옵션, 차우더(해산물을 넣어 끓인 크림수프) 밖에 없다. 나는 아프고 힘들 때 죽을 좋아하는 한국인으로서, 날씨가 유난히 춥거나 몸이 으슬으슬하고 몸살기가 돌 때 죽을 대신할 차선으로 뜨끈뜨끈한 차우더를 식당에서 시켜 먹곤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 차우더가 이렇게 역사가 오래된 낸터컷 음식이었구나 감탄하며 깨닫는다. 여관의 차우더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조개 차우더와 대구 차우더. 옵션은 빈약하지만 원조 차우더의 맛은 기가 막히는 모양이다.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구수한 냄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우더... 오, 사랑하는 친구들아, 내 말 좀 들어보라. 그것은 개암 열매만큼 작지만 즙이 많은 조개를 삶아서, 비스킷 가루와 소금에 절여서 얇게 썬 돼지고기를 섞고, 버터를 넣어 풍미를 더한 다음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요리였다. 우리는 추위에 떨며 항해한 뒤라서 식욕이 왕성해져 있었고, 특히 퀴퀘그에게는 앞에 놓인 것이 제일 좋아하는 해물요리였고, 그 차우더는 놀랄 만큼 훌륭했기 때문에,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잠시 후 향긋한 냄새가 다시 흘러나왔지만 아까와는 풍미가 달랐다. 이윽고 맛있는 대구 차우더가 우리 앞에 놓였다. 우리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숟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머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차우더 머리'는 멍청이라는 뜻인데, 거기에 대한 그 바보 같은 속담은 뭐지?
확실히 작가 멜빌은 자신의 책을 읽는 이방인들에게 낸터컷과, 낸터컷의 음식 '차우더'와, '차우더 머리'라는 속담까지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미국 원주민의 전설 이야기와 이곳 사람들의 역사를 몹시 드높이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을 받아주고 싶다. 멜빌을 위해 낸터컷과 차우더를 꼭 기억해 주겠다. 작가는 거기에 더해, 낸터컷에 이주해 자리 잡은 퀘이커 교도들의 특징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사실 낸터컷 사람들 대부분이... 퀘이커교도였다. 이 섬에는 원래 그 종파 사람들이 이주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낸터컷 주민들은 퀘이커교도의 특이한 점들을 유달리 많이 보유하고 있다... 퀘이커교도들 가운데 일부는 모든 선원과 고래잡이들 중에서도 가장 피를 보기 좋아하는 포경 선원이 된다. 그들은 싸우는 퀘이커교도이고, 복수심에 찬 퀘이커교도다. 그래서, 그들, 특히 남자들 중에는 성경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고... 연극적인 '자네'니, '그대'니 하는 퀘이커교도식 말투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생활은 대담하고 끝없는 모험으로 가득 차 있고... 대담한 성격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이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사람, 이를테면 먼바다에 나가 북반구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별자리 아래에서 오랫동안 수없이 불침번을 서면서 적막과 고독을 겪은 덕분에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색할 수 있었던 사람, 그리하여 자연이 자발적으로 내맡기는 순결한 젖가슴에서 갓 나온 달콤하거나 야만적인 자연의 느낌을 모두 받아들이고, 게다가 우연한 모험의 도움도 받아서 대담하고 간결하며 고상한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 - 이런 사람은 한 나라의 전체 인구 가운데 한 사람 있을까 말까 하지만 - 안에서 지구 같은 두뇌 및 무거운 가슴과 결합할 때, 숭고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에 알맞은 강력하고 화려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관점으로 그리는 낸터컷의 퀘이커 교도들의 특징들이 참 흥미롭다. 낯선 곳에서 적막과 고독을 겪은 덕분에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색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그렇게 우물 안을 벗어나 자신을 일으키고 강하게 멋지게 성장하지만,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에 알맞은 강력하고 인물이 되는 결말이라니... 자꾸 지옥의 징조라거나, 비극이라는 단어를 군데군데 집어넣고 있는 작가가 원망스러워진다.
어쩌면 비극의 주인공이 될 법한 넓고 독립적인 시야를 가진 낸터컷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서 이스마엘은 굳이 낸터컷에서 출발하는 포경선을 타고 싶어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택은 무조건 낸터컷, 결론도 낸터컷이다. 낸터컷에 대해 찾아보다가, 에드거 앨런 포가 1838년에 유일한 장편인 낸터컷의 아서 골든 핌(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이라는 소설을 발표했었고, 이 소설이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영원한 사랑 포 작가와 이번에 새롭게 만나 반해버린 멜빌 작가가 여기서 이렇게 만난다는 사실에 심장이 뛰어오르고, 내가 왜 아직 포의 장편은 읽어보지 않았을까 - 나는 그의 단편소설들은 꽤 많이 읽었다 - 아차 싶다. 멜빌의 <모비딕>을 읽기 위해 나름 많은 준비를 했었는데, 꼭 읽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책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포 작가의 장편이었다는 사실에 허를 찔린 기분이 든다. <모비딕>과 포의 장편을 앞으로 동시에 병렬 독서하며 비교하며 읽어갈 예정이다.
낸터컷에 도착한 뒤부터 퀴퀘그는 금식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이스마엘 혼자 자신과 퀴퀘그, 두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는 타고 갈 포경선을 고르기 위해 선창가로 나와 이리저리 물어본 후, 3년에 걸친 항해를 떠날 배가 세 척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는 그 세 배를 다 둘러보고 '피쿼드'라는 이름의 배를 선택한다.
'피쿼드'는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지금은 고대 메디아 사람처럼 절멸한 매사추세츠의 유명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다.
절멸한 매사추세츠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배는, 시작부터 억울하게 땅을 뺏기고 학살당한 수많은 영혼들에 바다 저 깊숙이 끌려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피비린내 나는 참담한 비극을 예고하는 복선인 것만 같아 심장이 또 떨려온다. 이스마엘은 그 배의 이름과 상관없이, 그 배의 독특한 외양에 매료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인공들이 본격적인 활약을 펼칠 주 무대가 될 이 '피쿼드'호를 구석구석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단어 하나하나 꼭꼭 씹으며 꼼꼼히 읽어 보았다.
...'피쿼드'호만큼 낡고 진기한 배는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피쿼드'호는 좀 작은 구식 배였는데, 갈고리 모양의 다리가 달린 구식 가구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사대양의 태풍과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단련되고 비바람에 시달리며 얼룩진 선체의 빛깔은 이집트와 시베리아에서 싸운 프랑스 척탄병의 얼굴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오래된 뱃머리는 턱수염이 난 것처럼 보였다. 돛대- 원래의 돛대는 일본 해안 어딘가에서 강풍에 부러져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 들은 옛날 쾰른의 세 왕의 등뼈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낡은 갑판은 토머스 베케트(1118-70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의 대주교로, 헨리 2세의 재상이었으나 왕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살해당함)가 피를 흘려 죽은 뒤 순례자들의 경배 대상이 된 캔터베리 대상당의 포석처럼 닳고 주름져 있었다...
오랜 고래잡이 역사가 그대로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듯한 '피쿼드'호는 펠레그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벨렉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라는 노인과 빌대드 (성경 <욥>기에 나오는 욥의 친구 빌닷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라는 노인이 배의 선주로, 항해를 떠나기 전까지 배의 살림과 사람들을 갖추는 일을 돕고 있었으므로, 이스마엘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언급하는 선장 에이해브 (성경 <열왕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 아합. 포악한 군주)와 이상한 예언자 일라이저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엘리야. 폭군 아합 왕과 대립했었음)까지 인물들의 특징을 숙지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펠레그(벨렉): '피쿼드'호의 일등 항해사로 일했던 인물. 지금은 은퇴하여 '피쿼드'호의 선주들 가운데 하나. '피쿼드'호가 이렇게 기묘한 장식이 많은 건, 펠레그가 일등항해사 시절에 그렇게 만든 것. 낸터컷 섬 출신의 퀘이커교도. 타지 사람을 잘 믿지 않는 편협함이 느껴지는 인물. 하지만 빌대드 만큼 기독교적 관념적 세계관에 갇혀있지는 않아 더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 빌대드와 함께 선주로서 출항할 배를 위해 인력과 살림을 챙겨 준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빌대드(빌닷): 펠레그와 함께 배의 선주 역할을 하는 퇴역 고래잡이. 선실 급사에서 출발하여 작살잡이, 보트장, 일등항해사를 거쳐 선장까지 올라갔던 사람. 낸터컷에서도 가장 엄격한 퀘이커 교파의 가르침을 받은 타고난 신앙심 깊은 퀘이커 교도. 옷매무시 하나 흐트러지는 일 없이 반듯한 모습으로 항상 성경을 읽고 기회대는 대로 이교도들에게 전도를 하려는 인물. 현재 '피쿼드'호의 선주 중 한 명으로서 까다로운 심술쟁이 노인네라는 평. 현역 시절에는 부하들을 호되게 부려먹는 상관이었다고 한다.
에이해브(아합): '피쿼드'호의 선장. 향유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음. 선주들의 말에 따르면, 에이해브 선장은 위엄 있고, 신앙심은 없지만 신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말이 많지는 않지만 그가 말할 때는 귀담아듣는 게 좋다는 귀띔. 대학물을 먹은 지성인이면서 동시에 식인종과도 어울린 적이 있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 다리를 다친 이후로 통증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인물로 짐작된다. 고통에 시달려 망가졌을 수 있지만 나름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선주들의 평. 이스마엘은 선주들의 이야기를 듣고 에이해브 선장에 대해 연민과 함께 야릇한 경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일라이저(엘리야):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승선하기 전, 몇 번 나타나 "사람 그림자 같은 것이 저 배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나?", "잘 가게. 당분간은 만나지 못할 거야.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는." 같은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인물.
그 외에도 힘센 일등항해사 '스타벅'과, 뉴베드퍼드의 여인숙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벌킹턴'이라는 인물도 한 배에 타고 있다. 이 인물들은 항해가 계속되면서 차차 파악하게 될 듯하다. 이 각각의 인물들이 19세기 미국 사회의 군상 부류들을 상징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것을 하나하나 찾아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다. 낸터컷까지 와서 여기서 출발하는 배를 구했고, 중요한 인물들도 만나 숙지해 두었고, 낸터컷의 뜨끈뜨끈한 차우더로 위장까지 든든히 채웠다. 멜빌 작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장편 항해 소설까지 보조선처럼 옆에 대기되어 있으니 이제 먼바다로 나가기에 부족함 없이 준비된 듯하다. 자, 이제 배가 떠난다! 이제 뭍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오직 바다에만 마음을 주어야 한다.
배는 돛을 모두 펴고 전력을 다해 해안에서 멀어지려 한다. 그러면서 배를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바로 그 바람과 맞서 싸우고, 또다시 거친 파도가 배를 때리는 망망대해로 나가려고 애쓴다... 무릇 깊고 진지한 생각은 망망한 바다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영혼의 대담한 노력일 뿐이며, 또한 하늘과 땅에서 가장 사나운 바람은 서로 공모하여 인간의 영혼을 배반과 굴종의 해안으로 내던지려 한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하지만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육지가 없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수치스럽게 그쪽으로 내던져지기보다는 사납게 으르렁대는 그 무한한 바다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 그대가 죽어갈 바다의 물보라, 그곳에서 그대는 신이 되어 솟아오르리라!
*참고 자료: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작가정신, 김석희 역) 14-23장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furu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