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홈카페

[에세이] 자기 마음 집

by 하트온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나 홀로 버려진 듯 마음 디딜 곳 없이 각박하게 느껴지는 날, 세상이 모두 나서 나를 공격하고 덤벼드는 듯 느껴지는 때가 있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날. 그런 날의 나는 폭풍을 때려 맞는 나무처럼 뿌리까지 흔들거린다. 불안과 공포로 온 신경이 잔뜩 예민해서 곧 부러질 듯 빳빳하게 곤두서 있다.


이런 상태의 나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때의 나를 돕지 않으면 어떤 후회할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황폐할 대로 황폐한 내 속에서 시작된 모래 폭풍이 밖으로 터져 나와 주변을 휩쓸고 돌아다니기 전에 미리 손을 써 막아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분한 음악이 흐르는 편안하고 쾌적한 곳이 필요하다. 크리스마스 불빛처럼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이는 창가의 홈카페로 데려가, 고소한 우유 거품이 부드럽게 속을 달래는 카푸치노와, 갓 구운 따뜻한 마들렌을 예쁜 그릇에 담아 차려 주어야 한다. 깊이 공감하는 격려로 등을 토닥이고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나의 심신을 돌봐줄 수 있는 믿을만한 존재와 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다 큰 성인에게 그런 존재는 이 세상에 딱 한 사람 밖에 없다. 바로 나 자신.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챙길 수 있는 나 자신을 빨리 찾아내 만나야만 한다. 여기 이 홈카페가 바로 내가 나를 위해 충심으로 사랑의 서비스를 베푸는 곳이다.



홈카페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너무나 중요해진 공간이 있다. 새로운 카페에서 새로운 음료를 마셔보는 취미, 쾌적한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낙을 가지고 있던 나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미친 악몽 같은 현실에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집 밖을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정부 명령이 언제 끝난다는 기약조차 없는 상황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점점 크게 엄습해오는 공포감과 싸우며 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보호 본능 같은 것이 뚫고 나와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라는 기이한 현실을 잊고, 집에서 생활하는 일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최대한 일상에 집중하자 마음먹었다.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카페 나들이를 할 수 없다면, 카페가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면 어떨까.


내가 자주 가곤 했던 카페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 식구 다 둘러앉아 음료수와 간식을 앞에 놓고 책을 읽어도 자리가 남아돌던 긴 테이블. 아늑한 조명, 통나무집 캠프장 같은 분위기를 주는 나무 재질의 벽, 블랜드 로스트 원두, 커피가 가장 맛있게 내려지는 최적의 물 온도와 커피 입자, 내 입맛에 맞추는 핸드 드립 커피,... 내가 좋아하는 카페 공간과 커피 맛의 조각조각을 다 가져와 우리 집 안에 한 조각씩 퍼즐을 맞춰나가 보았다. 어느새 기분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만들어졌다. 카페에서 딱 한 가지 싫었던 게 1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는 일이었는데, 집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유리잔이나 세라믹잔을 사용할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홈카페를 만들면서 돌아보게 되었다. 늘 남이 만들어주는 분위기, 남이 해주는 서비스에만 익숙해서, 그래서 남이 해주는 것을 받을 길이 끊어져 버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심히 당황했던 건 아니었는지. 남이 다 해주는 편리가 없어질 때마다 그걸 인생의 고난이라 여겼던 건 아니었나 나를 되돌아보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산다는 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 한 사람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된 가족을 건사하고, 나아가 사회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떤 바람이나 꿈을 소원하기에 앞서, 나부터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먼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아갔던 한 걸음이 바로 홈카페를 이루어 낸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공간,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을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이 생각보다 굉장히 컸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흡족함은 세상에 태어나 거의 처음 느껴본 깊고 짜릿한 만족감이었다. 홈카페의 메뉴를 점점 늘려갔다. 당 떨어지는 오후를 위한 견과류와 다크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도 구비하고, 아침 커피에 곁들일 토스트도 구울 수 있게 빵과 버터도 준비했다. 홈카페 아래 선반은 스낵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든든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재해 상황으로 일어난 내 안의 혼란이 조금은 정리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안의 홈카페


홈카페를 만들면서 느꼈던 모든 것을 '나의 마음 집'에도 꾹꾹 채워 넣었다. 나를 위해 상쾌한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는 기분, 지친 오후에 다크 초콜릿 아몬드 몇 알을 오도독 씹어 먹으며 얻는 기분 전환, 춥고 으슬으슬할 때 생강을 많이 넣고 끓이는 짜이티 한 잔,...


세상이 나를 향해 달려들어 공격하는 것 같아도, 나를 도우려 달려오는 내 두 손과 두 발이 있는 한 나는 괜찮다. 세상이 모두 내게 찬바람을 쌩쌩 불어도, 나에게 뜨거운 커피 한 잔 만들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한 나는 괜찮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돌려야 할 수밖에 없을 때에도, 언제든 나와 기꺼이 마주하고 나를 대접해 주는 내가 있으면 그나마 견딜만하다. 고립과 고독마저도 즐거운 순간으로 만들어 주는 홈카페가 구비되어 있다면, 홈카페 운영자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돌본다면, 나는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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