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기 마음 집
열매가 없던 시간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 모두가 '너는 참 열심히 산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했다. 나를 키운 엄마도 '너 정도 열심히 하면 사시 몇 개는 패스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셨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극성을 떨며 학원을 몇 개씩 다녔고, 대학, 대학원, 직장생활 중에도 새벽에 영어 수업 듣고, 주말에 또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바쁜 스케줄을 멈춘 적이 없었다. 항상 언제나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그렇게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나는 내 삶이 노력에 비해 참 열매가 없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되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에 뻥 공허한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 사이로 시린 겨울비처럼 들이치는 허무감에 몸서리를 쳤다.
한 때 주변 엄마들 사이에 텃밭 가꾸기 붐이 불었다. 텃밭 덕분에 여름 내내 마트에 갈 일이 없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들으며, 나도 점점 마음이 동했다. 나도 텃밭 한 번 만들어 보자고 뒷마당에 흙을 파서 비료를 사서 섞고, 오이, 상추, 호박, 깻잎, 파, 부추, 고추, 수박, 토마토,... 손에 잡히는 대로 심었다. 야채뿐 아니라, 튤립, 히아신스, 메리골드 수국 같은 꽃나무도 다양하게 심었다. 첫해엔 씨앗을 사다 심었는데, 씨앗이 발아해서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깨닫고, 다음 해는 모종을 사다 심었다. 모종이라고 다 잘 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옮겨 심자마자 시들시들하다 죽어버리는 것도 있고, 심는 시기를 잘못 맞춰서 얼어 죽는 것도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지만, 내 텃밭은 언제나 부실했고, 밭에 나가면 피부가 근질거리는 알레르기까지 생겨서, 그냥 야채는 마트에서 꽃은 필요할 때마다 꽃집에서 사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더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3-4 년 전쯤 텃밭을 깨끗이 정리하고, 그 자리에 벤치를 놓아버렸다. 관심을 갖고 열심히 했지만,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난 또 하나의 허무한 결말이었다.
모종 수집 라이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모든 열심이 열매를 맺는 열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열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열심에 일의 체계와 내용과 방향이 있어야 하며, 보통이 넘는 인내와 끈질긴 고집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삶을 사는 방식은 내가 텃밭을 만든 방식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질서와 체계 없이 일했고, 작은 실패들 앞에서 빠른 포기를 했다. 새롭고 다양한 종류의 모종을 시도하는 데만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을 뿐, 어떤 환경에서 어떤 보살핌을 주어야 하는지 식물 하나하나에 개별적인 정성을 쏟고 오래 살펴보며 연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똑같은 방식으로 심고, 똑같은 방식으로 물을 주고, 잘 안되면 걷어내 버리고, 우연히 잘 자라게 된 것만 보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매해 무엇이 잘 자랄지는 항상 운이었기 때문에, 나의 열심은 배움이나 성장으로도 열매로도 이어지지 못했으며, 그동안의 내 나름의 열심이 몹시 무색하게도 조금만 내 몸이 힘들어지면 접어 버리기도 잘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손에 다양한 것을 들고, 그 많은 것을 하고 있다는 데서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잠시 느꼈을 뿐이었다. 많은 것을 심어 놓고, 그중에 하나는 맞겠지 하는 생각은, 마치 이 가게 저 가게 열심히 뛰어다니며 복권을 여러 개 사놓고, 이 정도 정성을 들였으면 하나는 당첨되겠지 하는 요행심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내 열심은 도박에 지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뭔가 있어 보이고 항상 바쁜데, 실력을 키워가는 열심이 아니라, 운에 맡기는 도박이었다.
지금부터 진짜 열심으로
성장과 열매로 이어지는 열심은, 나무 한 그루를 잘 키우기 위해 연구하고 환경을 조성해 주고 꼭 필요한 보살핌을 주는 그런 적절하고 끈질긴 열심, 즉 하나를 파고드는 열심이다. 그런 열심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식을 돌보고 키우고 교육시키는 노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여러 아이를 사다 놓고 되는 놈, 성공적인 놈만 골라내서 자식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내게 온 자녀 한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진 어떤 조건의 사람이건 그 한 사람에게 맞추어 지극 정성을 다 한다. 그 한 사람의 기호와 행동 패턴을 알아가고, 그 사람 그대로의 성격과 감정을 수용하며, 그 사람에 맞게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며 오래 인내하는 사랑으로 돌본다. 평생을 아기처럼 취급해서도 안되고, 준비가 안된 아기에게 어른 취급을 해서도 안된다. 나이에 맞게 양육 방식을 늘 새롭게 조정하며, 나를 부수고 고쳐가야 끊임없이 좋은 양육을 공급해 주는 일이 가능하다.
내 인생에 주어진 나무 한 그루, 나라는 사람을 잘 키워내는 노력, 나의 세상을 헤쳐가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주어진 나무를 받아들이고 공부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돌봄을 받을 때 가장 잘 성장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고, 풍성한 열매가 열리는 조건도 찾아내야 한다. 나를 연구해야 하고, 나의 성장 환경을 잘 조성하고 세심하게 돌볼 줄 알아야 한다. 내 성장 속도에 맞추어, 필요를 찾아내고 공급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 인생이라는 나무를 잘 돌보고 키워갈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나에게 무엇이 주어지건 제대로 잘 돌보고 키워낼 수 있는 역량도 커져간다.
이런 것들을 어린 시절부터 알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얼마나 많은 열매를 얻고 있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도 있지만, 그런 감정에 머무는 것은 지금의 내가 잘 자라게 하는 좋은 날씨 환경이 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열심을 실천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긍정의 단비를 촉촉하게 조성해 주는 것이 더 좋다. 그 옛날의 나처럼 엉뚱한 열심으로 허무한 기력만 소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깨닫게 된 것을 말해줄 수 있는 기회는 무성하게 잘 자란 나무가 만들어 주는 여름 그늘처럼 시원하다.
나의 정원은 앞으로 나무가 쑥쑥 잘 자라는 정원이 될 것이다. 나무가 적절한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실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거대한 나무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이것저것 쳐다보느라 바쁜 삶이 아닌, 한 가지에 집중하여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는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허황된 과욕을 버리고 좀 더 겸허하게 땅에 밀착하여 집중하여 관찰하고 돌보는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andelion_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