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기 마음 집
더러움을 씻을 수 없는 고통
흙먼지 가득한 세상에, 땀과 오물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몸을 가진 인간. 이 두 가지 조합은 매일 씻는 일을 중요하게 만든다. 인간 생활에서 더러움을 씻어내지 못하는 제약이 주는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스스로 느끼는 감각적 감정적 불쾌함을 넘어서서, 흉물스러운 꼴이 되고, 냄새나고, 병들고, 인간 사회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성가신 존재로 전락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20대 초반, 나는 하숙 생활을 했었다. 작은 건물 안에 다닥다닥 줄지어 늘어선 방, 열 명이 넘는 인원이 화장실 한 칸을 나누어 쓰게끔 되어 있던 구조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호사스러운 편리를 누리던 나에게 상당히 많은 종류의 불편함을 맛 보여 주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따뜻함 부족이었다. 방도 물도 차가웠다. 여름엔 괜찮지만, 겨울에는 추워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고, 그렇게 꽁꽁 언 몸을 온수로 풀어 줄 도리도 없으니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빌딩 숲을 뚫고 겨우 내 작은 방에 도달한 아침 햇살 한 줌이 몸을 좀 노곤하게 풀어줄 때까지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뜨끈뜨끈한 탕이 있는 공중목욕탕이 떠올랐다. 하숙집이 있던 동네엔 공중목욕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살던 하숙 촌은 문만 열고 나오면 젊은이들이 예쁘게 차려입고 모여드는 시내 번화가였고, 길가엔 술집과 클럽, 옷가게, 식당, 카페만이 즐비했다. 수소문 끝에, 30분 정도 걸어가면 옆 동네 주택가에 목욕탕이 하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밤새 꽁꽁 언 몸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제대로 씻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목욕탕을 찾아갔다. 추운 겨울 새벽에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마음껏 씻는 그 느낌이 얼마나 시원하고 좋던지. 따뜻한 물에 마음껏 목욕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더 바랄 게 없겠다고까지 생각했다. 당시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소설이 유행을 했는데, 그 소설을 읽으면서 매일 늦은 오후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따뜻한 목욕을 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그 삶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딘지 모르게 그녀의 삶에 드리워진 쓸쓸한 그림자를 보면서도, 그녀가 그 공허한 외국 생활을 버리고 진짜 사랑하는 남자에게 돌아갔으면 싶으면서도, 그녀의 이탈리아 집 따뜻하고 편안한 욕실에 달라붙는 내 미련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여주는 남주와 해피엔딩하고, 여주가 살던 목욕 인생은 나에게 줬으면 싶었다.
마음을 씻는 욕실
따뜻한 물을 자유롭게 쓰는 게 모두에게 주어지는 호사가 아님을 피부로 경험한 덕분에, 나는 매일 따뜻한 물로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환경에 몹시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인생의 시련이 닥쳐도, 편리한 물 생각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호사를 누리고 있구나 싶으면서, 다른 일은 별 일이 아니라고 넘길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되곤 했다.
늘 편리한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음에도, 몸을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게 되었다. 마음에도 먼지와 때가 쌓인다고, 마음을 씻는 일이 몸을 씻는 일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인생이 점점 경고하기 시작했다. 오래 양치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잇똥이 굳어져 치석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마음에 낀 때가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더 이상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돌이 굴러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것처럼,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어딘가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내 삶이 바닥을 쳤다는 자각과, 끈적끈적한 피가 어디선가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몹시 불안하고 공포스러웠다. 죽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땅에 바짝 엎드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나는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턴가 부서지고 아팠던 내가 정성스러운 치료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다시 연한 새살이 돋고 회복하고 있는 듯 간질거리는 감각이 찾아왔다. 점점 마음에 따뜻한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스며들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물'을 얻었다. 그 물은 언제나 먼지가 묻을 때마다 마음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물이었다. 그 새로운 물은 내게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늘 새로운 기회가 있는 인생은 두려운 게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 어떤 오물이 묻어도, 금방 씻고 새 옷을 갈아입을 수 있으니 더 여유 있고 대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자주 씻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 거였다. 몸을 자주 씻어주지 않으면 거지꼴을 면하기 힘든 것처럼, 마음을 씻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썩은 거지 상태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체험했다. 좋은 피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씻고 화장품으로 의학의 힘으로 관리를 하는 것처럼, 좋은 내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씻고 돌보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씻는 욕실 또한 깨끗한 욕조와 온수가 잘 나오는 샤워기와 함께, 거울도 있어야 하고, 비누와 샴푸, 수건도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마음을 씻고 연한 살갗을 보호하도록 발라줄 기초 화장품과, 샤워 가운도 있으면 정말 좋겠다. 내 몸의 편리와 쾌적함을 위해 화장실 도구들을 세심하게 갖추는 것처럼, 마음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들을 꼼꼼하게 갖추면 좋다. 내 마음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필수 아이템은, 누가 뭐래도 독서와 글쓰기이다. 독서는 내 마음을 꼼꼼히 비춰주는 확대경이고, 글쓰기는 내 마음의 때를 구석구석 시원하게 벗겨내는 때밀이 수건이다.
개인 욕실은 남에게 보여줄 일이 없기에, 아무렇게나 해놓고 살기 쉬운 공간이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어떻게 관리하는 가가 내 진짜 인격의 성숙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남은 볼 수 없지만,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공간, 내 심신을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인 욕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잘 돌보는 성숙한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마음의 욕실부터 깨끗하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잘 관리하기 시작해야 한다. 나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 잘 씻고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andelion_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