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쉴 곳, 게스트룸

[에세이] 자기 마음 집

by 하트온


관계를 맺는다는 건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노래구절을 들을 때마다 나는 뭔가가 마음을 찡 하고 건드리는 듯한,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관계의 어려움을 참으로 날카롭게 통찰한 표현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상대에게 매료되고 좋은 감정이 있어도, 내 안에 나를 감당하는 것만으로 벅차서 상대를 위한 마음 한 자리 내어줄 여유가 없다면 좋은 관계를 오래 맺어갈 도리는 없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노래 가사처럼 서로의 마음속에 상대를 위한 쉴 곳을 마련하는 일과 같은지 모른다. 왜 상대를 내 안에 편히 머물게 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울까. 왜 갈수록 좋았던 관계가 멀어져 버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일까. 왜 생각만 해도 설레던 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늘 같은 지루한 패턴으로 빛바랜 책 표지처럼 퇴색하게 되는 걸까. 왜 가장 좋아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상처와 우울한 기억으로 얼룩지게 되는 걸까.


'내 속에 내가 많아서'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그 말은 내게,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많아서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 집이 아무리 넓어도, 내가 금방 이사를 와서 짐이 여기저기 흩어져 정리되어 있지 않거나, 내 짐이 너무 많아 여유 공간이 없으면 손님이 묵어갈 게스트룸을 만들 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손님이 편하게 와서 지낼만한 게스트룸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 본성은 내 한 몸 위하고 챙기는 것만으로 벅차다. 상대가 나에게 기쁨을 주고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건 좋지만, 상대를 관찰하며 필요와 기호를 파악하고 맞추어 나가는 일은 인내심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내 짐을 빼고, 손님을 위한 가구를 넣고 청소하고 꾸미고 손님이 편하도록 대접하고 돌보는 것은 나의 본성과 역행하는 일이다. 우리가 그 수고스러운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내가 내 한 몸 건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타인을 돌볼 줄 아는 성숙함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초대 손님이 나의 희생이 아깝지 않은 진심으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어야만 한다.



좋아하는 친구를 위한 게스트룸


게스트룸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주홍 글자>를 쓴 작가 너새니엘 호손이 떠오른다. 호손은 자신이 좋아했던 친구 허먼 멜빌 - <모비딕>을 집필한 작가 - 을 위해, 자신의 집에 게스트룸을 구비하여 그를 자주 초대했다. 1850년 여름 호손은 매사추세츠 주 버크셔 카운티의 피츠필드 지역으로, 18세기 농가를 한 채 구입해 이사를 왔는데, 이 지역은 미국 저명한 문학가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으로, 멜빌의 집은 호손의 농가에서 6마일 즉 체 10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호손과 멜빌은 그해 여름, 어느 작가가 연 피크닉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호손은 46세, 멜빌은 31세였는데, 이미 서로의 작품에 대해 큰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만나,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되어, 호손이 멜빌에게 며칠을 함께 보내자고 초대를 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이후 멜빌과 호손은 자주 만나 함께 지냈고,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서신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워간 흔적도 있다. 멜빌은 평소 조용하고 말 수가 적은 사람이었지만, 호손에게만큼은 자신의 마음과 경험을 쏟아붓는 느낌으로 많은 말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호손과 멜빌 두 사람이 남긴 편지글들을 통해,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고, 소중한 소울메이트로 여겼는지, 서로의 작품에 서로가 얼마나 큰 영감과 자극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멜빌이 <모비딕>을 쓸 때, 가벼운 포경선 모험을 쓰려고 했던 것을, 삶과 죽음, 신성과 인간 본성을 꿰뚫는 철학과, 기독교 문명 및 제국주의의 왜곡된 세계관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담은 걸작이 되도록 호손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관계를 만드는 게스트룸


우리는 어디까지 상대에게 문을 열고 어디까지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친한 사이가 될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을 허락한다. 그러다가 상대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오고, 우리는 마음이 상한다. 그 과정에 내가 잘못한 것은 없을까. 내가 상대가 침범하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나? 나라는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와 규칙을 미리 말해주긴 했나? 실은 나조차 나를 너무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상대가 너무 좋고 신뢰할 수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는 정말 상대를 내 마음 안으로 초대할 준비가 되었나? 나는 진짜 손님을 맞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인가? 내 안에 정말 타인이 쉴 곳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나?


게스트룸은 나의 침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할 뿐, 전혀 다른 공간이다. 밤늦게까지 교류하고 실컷 대화하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개인 시간까지 공유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큰 영향을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각자 혼자 글을 쓰고 사색할 시간까지 침범하지는 않는다. 초대한 시간 동안 최대한 서로와 함께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방해나 괴롭힘이 되지 않도록 잘 조율해야 한다. 반면 손님을 방치하지 않도록, 손님이 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시간표를 짜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내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분명한 선을 보여주는 규칙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손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배려도 있어야 한다. 손님이 우리 집에 머무는 시간이 최대한 쾌적하고 즐겁고 편안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정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시간이라고 상대방이 느끼기를 바란다. 귀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서 나도 상대도 기분이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두루미를 불러 접시에 밥을 주거나 여우를 불러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주는 무례가 없도록, 상대에게 과시하려는 욕구나 상대 위에 군림하려는 교만이 만남을 주도하지 않도록 잘 통제해야 한다.


나의 내면을 잘 정리하고 통제하여 나의 쉴 곳을 만들 수 있는 사람만이 상대의 쉴 곳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인지를 충분히 관찰하고 파악한 후에, 나와 상대의 기호와 속도를 조율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느 한쪽도 지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나와 상대 둘 다 편안하고 즐겁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PaliGrafi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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