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지나도 상관없어요
기질 자체가 그래요. 누가 오른쪽으로 가는 걸 보면 왼쪽 길을 선택해 버리는 성향이랄까요. 사람들이 무언가에 몰리는 걸 보면, 몰리지 않는 쪽에 더 관심을 가지는 편입니다.
나는 누굴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소신을 확고히 가지고 있기에, 저는 제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요. 미니멀리즘이라는 생각을 접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은, 나에게 잘 맞고 내 삶에 잘 어울리기 때문에 내 삶의 일부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미니멀리즘은 제가 즐겨 입는 스키니진 같은 거예요. 스키니진은 분명 유행이 지난 지 한참 된 패션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키니진을 처음 발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청바지는 무조건 스키니진을 찾아 구매해요. 유행할 때 발견했지만, 유행이 지나도 입어요. 그게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바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행 덕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유행이 지나도 미니멀리즘은 저와 함께 쭉 가는 ‘나의 일부’ 입니다. 내 삶에 내 가치관에 잘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틀에 나를 맞추어 넣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내게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도구에 가까운 의미입니다. 나를 위해 미니멀리즘을 내 삶에 접목시킨 것이고, 나를 위해 미니멀리즘은 변형되고 조정됩니다. 나의 미니멀리즘은 나에게 조련되고 길들여지고, 내 삶의, 나의, 나만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갈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글쓰기 스타일과 비슷합니다. 저는 더 이상 어떤 틀에 내 글을 맞추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습니다. 내가 에세이스트인지, 칼럼니스트인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정하지 않습니다. 크리에이터, 스토리 힐러라는 두리뭉실한 이름을 걸어놓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돕는 모든 도구를 활용, 융합, 변형시켜, 내 맘대로 내 글의 장르를 만들어 갈 거거든요.
나를 위한 미니멀리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 미니멀리즘은 따라야 할 규칙이 아닙니다. 미니멀 라이프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틀을 거부합니다. 그 형식은 내가 나에게 맞게 만들어 갈 거니까요.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을지 몰라요. 나를 위해 내 방식대로 만들어가는 미니멀 라이프를 보고 사람들은, 보편적 미니멀 라이프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일에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볼 큰 업적을 남기거나,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공이나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중요한 모든 것에 다리를 적절히 걸치고 살아가는 ‘균형’이라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혼자 자족하는 편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부모와 보내는 시간, 남편과 보내는 시간, 자녀와 보내는 시간, 창조하고 생산하는 시간, 소비하고 즐기는 시간, 쉬는 시간, 가족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시간… 나에게 중요한 사람과 일들이 적절히 배치된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미니멀리즘은 삶의 ‘균형’을 위한 ‘무게추 덜어내기’입니다. 제 인생에 중요한 것들에 시간을 적절히 배치하고 인생의 균형을 잡기 위해, 미니멀리즘이라는 ‘무게추 덜어내기’를 사용해 왔어요. ‘무게추 덜어내기’의 예는 다음과 같아요.
집안일은 하루 1시간 이하로 줄임: 저는 집안일에 너무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관리하지 않으면 쉽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집안 살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집안일에 시간을 쓰되 하루에 1시간 이하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설거지도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급하게, 청소도 딱 한 군데를 정해서 집중 청소 (집 전체를 청소하는데 일주일이 걸립니다), 음식도 가능한 조리가 복잡하지 않은 굽거나 삶는 단순 조리로 다 해결되는 음식을 선택해 하루 먹을 것을 한꺼번에 다 해 놓는 편이고, 아이들이 알아서 챙겨 먹고 뒷정리를 잘해 놓도록 열심히 훈련시키고 있어요.
소통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임: 웬만한 일처리는 만남이나 전화통화보다 문자나 이메일로 소통합니다. 만나거나 전화 통화하는 일은 제 입장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서, 웬만한 인간관계나 업무는 문자나 이메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만남과 전화통화는 말실수를 하거나 성에 차게 표현하지 못하는 때도 많아서 돌아서서 자꾸 곱씹게 되는 후유증도 시간과 에너지 낭비에 한몫을 합니다. 반면, 문자나 이메일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고, 내 할 일을 하면서 사이사이에 틈이 날 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제겐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소통의 도구입니다.
아이들을 내 맘대로 통제하려는 태도를 버림: 아이들을 계속 감시하고 하나하나 체크하려 하기보다, 어느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잘할 아이들임을, 엄마가 스펙을 채워줘야 할 백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표를 분명히 타고난 하나의 씨앗임을 믿기로 했어요. 사람은 믿는 대로 된다는 것을 믿는 편이고, 믿어주는 것의 힘을 믿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 역할은 아이들을 내 꿈을 표현할 꼭두각시로 사용하는 인형극단 주인이 아니라, 주어진 씨앗이 잘 발아하고 자라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해 주고 돌봐주는 농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훨씬 마음 편한 엄마 좋고 아이 좋은 교육 철학이라 내 아이들을 위한 양육 가치관으로 선택하기로 했어요.
이름난 브랜드만이 길이라는 생각을 버림: 모든 것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 탑인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이 장단점이 있다는, 동전의 양면 가치관을 채택했어요. 이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나름 풍부한 삶의 경험이 알려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탑 대학, 탑 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서, 훨씬 더 많은 인생의 옵션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이들과 나는 더 자유롭고 자기 주도적인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남에게 번듯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림: 모든 것을 구매 결정할 때 남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을 버리고, 훨씬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형편에 맞는 선택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훨씬 편하고, 우리 가족이 우리 가족다운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도 알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는 가치이지만, 저는 미니멀리즘을 이용해서 만들어가는 이 삶의 ‘균형’이 너무나 마음에 들고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