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도 청소하는 어른

[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by 하트온

엄마의 청소


나는 어릴 때부터 청소가 정말 너무너무 싫었다. 내 눈에 청소는 힘들기만 하고 남는 게 없는 하등 쓸모없는 일 같았다. 엄마는 하루 종일 쓸고 닦고 그 하등 쓸모없는 청소 하느라 귀한 하루를 통째로 낭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두꺼운 요와 이불을 탈탈 털어 정리해서 낑낑대며 '농'에 차곡차곡 채워 넣고, 아이들 도시락 싸고 남편과 아이들 진수성찬 아침 먹여 회사 학교 보내고 나면, 여러 개의 방과 마루를 쓸고 닦고, 화장실을 타일바닥 박박 문질러 물청소하고, 세탁기 싫어하는 할머니 때문에 대식구 빨래를 손빨래하고, 학교 다녀오는 아이들 간식 챙겨주고, 저녁해서 온 식구 차려주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겨우 저녁 드라마 한 편 보는 일과 중 가장 큰 호사를 잠시 누리곤, 아이들 씻기고 다시 농에서 이부자리 꺼내 펴고 아이들 재우고, 새벽같이 일어나야 할 내일을 위해 잠들기 바쁜 삶이 매일 같이 반복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따져 묻곤 했다. 저녁이면 또 펼칠 이불을 왜 접어서 농에 넣었다 뺐다 하는지. 어제 쓸고 닦은 방을 오늘 왜 또 쓸고 닦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엄마는 그럼 내일 또 먹을 밥을 오늘 뭐 하러 먹느냐고 응수하셨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비유였다. 세끼 밥 꼬박꼬박 먹는 만큼이나 청소가 매일 필요한 일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가끔 엄마를 도와 방이나 마루를 닦기도 했는데, 엄마에게만 그 힘든 일을 맡기는 것이 내가 가해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걸레질을 하며 나는 무릎이 아프고, 팔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청소는 정말 못할 짓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 이미 닦은 마루를 닦는데 걸레 색이 점점 변하고 먼지로 뒤덮이는 걸 보며 이 세상이 너무 이상하다는 불안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래서 매일 청소를 해야 하는구나' 같은 깨달음이 온 것이 아니었다. 매일 더러워지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책임져야 하는 삶, 이런 청소 노동으로 가득한 삶은 엄마나 사는 거지 나는 절대 결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 속으로 맹세했다. 반드시 이 사단을 피할 길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청소는 여전히 싫지만


청소는 여전히 싫은 일이다. 또한 청소는 누구나 싫어하는 일이 틀림없다. 아무리 깔끔 떠는 사람도, 깔끔한 상태를 좋아하는 것이지, 청소 작업 자체를 좋아하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청소는 매일 열심히 해도 표도 안나는 일이면서, 안 하면 점점 먼지가 쌓이고 때가 굳어서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그런 울며 겨자 먹는 느낌의 애물단지 작업이다.


어린아이일수록 청소를 안 하면 닥치는 결과를 잘 모르니 청소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청소는 그 필요를 이해하고, 좀 더 힘과 연륜이 있는 어른이어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은 이해와 배움이 짧은 만큼 책임도 적을 수밖에 없고, 더 많이 이해하고 경험하고 배운 어른들의 책임은 훨씬 더 크고 커야만 한다.


40줄에 접어들고 점점 50을 향해 달려가며, 나는 내가 진짜 제대로 본격적으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많이 책임질 줄 알아야 하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정말 '번쩍' 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할 수 없는 어느 날부터 나는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면 청소를 한다. 거창한 청소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앞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게 내가 어른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마자, 저절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백화점이나 서점, 마트 혹은 공원의 공중 화장실에 갈 때, 더러운 화장실을 싫어하고 최대한 피하기만 했었다. 공중화장실 변기에 손대는 것도 싫었고, 뭐든 가능한 만지지 않으려고 했으며, 재빨리 사용하고 물 대충 내리고 내가 깨끗이 잘 사용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급히 떠나버리곤 했다. 나의 그런 어린아이 같은 태도가 어느 날부터 조금씩 조금씩 저절로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아마 아이들 키우고, 이 모든 것이 내 아이들, 내 아이들 같은 소중한 아이들이 사용할 공공재라 생각하며, 어딜 가든 청소하는 습관이 점점 자라났던 것 같다.


어떤 화장실이건, 들어가자마자, 변기를 전체적으로 싹싹 닦는다. 그리고 물을 내려 앞사람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간 것들을 씻어 내리고, 변기 상태를 복구시켜 놓는다. 휴지가 떨어졌거나, 내가 청소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심히 탈이난 상태이면 화장실 관리인을 찾아서 알려준다. 그런 일을 하면서 나는 내내 이것이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내가 이 세상 많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아이들의 실수들을 감싸 안고 뒤처리해 주는 게 어른의 할 일이라고 혼자 되뇌곤 한다. 내가 어지르고 실수했던 것들을 다 치워주고 감당해 주었던 어른들을 생각하며, 나보다 어린 존재들의 뒤처리를 앞으로는 내가 맡기로 마음을 먹는다.



청소 잘하는 어른이 되자


청소하지 않으면 거미줄 치고 먼지가 쌓여 어느 순간엔 뜯어내는 대공사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 내면세계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에도 내 관계에도 때가 끼기 쉽다. 순수한 사랑이던 것이, 어느 순간 걱정과 불안이라는 때가 한가득 쌓여 서로에게 무거운 부담으로 고통을 주고 있다. 친근했던 우정에 시기 질투 승부욕이라는 거미들이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니 이건 잠시도 더 함께 하기 싫은 오싹하고 으스스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즐겁게 일하던 나의 사명에 더해 필요 이상의 물질과 명예를 바라는 욕심, 남과 비교하는 탐욕 벌레가 꾸물꾸물 기어 다니기 시작하니, 나 자신이 징그러운 자괴감이 밀려오고, 실은 인간 본질이, 세상 전체가 벌레가 득실거리는 진흙탕이 아닌가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사고가 습한 지하실 곰팡이처럼 가득 번진다.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어른이라면, 책임지고 청소하기 시작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원래 의도했던 '초심'만 남을 수 있게, 엄마가 몸빼바지 입고 고무장갑 끼고 박박 타일바닥을 닦을 때처럼, 마음을 관계를 박박 닦아 청소해야 한다. 아이들과의 관계에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 두려움을 걷어내고, 부모와의 관계에 과거에 사로잡힌 집착과 강박적인 연민을 씻어내야 한다. 배우자의 관계에 너무 많은 것, 이상적인 것을 바라는 억지와 욕심을 거두고, 친구 지인과의 관계에서 질투와 비교의식을 닦아내자. 나의 일에서 눈앞의 이익이나 남이 정한 사회적 기준을 깨끗이 치워내고 일의 재미를 되찾자. 나를 나름의 최선으로 키워준 부모님, 내가 이룬 소중한 가정,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을 감사하고 그들과 보내는 순간순간을 즐기자.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 감사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그래서 내가 더 배우고 좋은 영향받기를 소원하자. 마침내 찾아낸 나의 사명에, 작은 일에 기뻐하고 충성하고 의미와 보람을 가슴으로 느끼는 초심, 필요한 만큼이 채워질 때 느끼는 기쁜 충족감을 회복하자.


내가 더 어른이니까, 내가 더 나서서 청소를 해야 한다. 비슷한 나이라도 내 마음이 청소할 준비가 되었고 잘할 수 있겠다고 느끼면, 내가 더 어른이다. 더 먼저 어른이 된 사람이 더 책임지고 더 부지런히 청소하면 된다. 인생을 제대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청소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든, 주변도, 마음도, 관계도 매일 같이 쓸고 닦을 줄 아는 진짜 어른으로 성장해 가야만 한다. 싫고 귀찮아도, 쌓이면 감당할 수 없는 정말 싫어하는 일이 벌어지니 청소를 반드시 해야 한다. 나이를 점점 더 먹을수록, 사회 곳곳 아무 데나 버려진 쓰레기, 방치되어 썩은 악취를 풍기는 오물, 이 세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모든 두껍게 묵은 때를 널리 구석구석 청소 잘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 목표다. 세상을 태초의 초심 본질로 되돌려 놓는 사회 미니멀리즘이 목표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mohamed_has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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