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불안 섞인 행복
누구나 행복하고 싶다.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집을 사는 이유도, 성형을 하고 살을 빼고 인기를 얻으려는 이유도,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관계 고민을 하는 이유도, 궁극적인 목적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미니멀리스트가 물건을 줄이는 이유도 당연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기분 좋고 평온한 감정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일생일대의 사명이며, 미니멀리즘 또한 '줄이기'라는 방법으로 인간이 짜낼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에 도달하려 애쓴다.
하지만 인간은 24시간 365일 내내 행복한 감정만 느끼고 살 수 없다. 인생이 행복만 양산하는 공장이 아닌 탓이다. 인생이라는 공장에서 행복보다 더 많이 생산되는 감정은 '불안'이다. 마치 공기의 구성성분이 산소는 고작 20%도 채 안되고, 질소가 거의 80%를 차지하는 것처럼, 인생의 감정도 순수 행복이 20%나 될까, 불안이 80%를 차지하는 느낌이다. 아무도 질소를 마시지 않고 산소를 얻을 수 없듯이, 불안이 섞이지 않은 행복을 마실 도리가 없다. 미니멀리스트도 숨 쉬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기에 질소 맛 산소, 불안 맛 행복을 마시고 산다.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를 '과거'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라는 시간이 인생을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한, 인간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공포스러운 감정 물살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좋은 불안 나쁜 불안
인생을 좀 살아보니, 인간의 심장을 파고들어 두드리는 불안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걸 느낀다. 편의상 이 두 가지 불안을 '좋은 불안'과 '나쁜 불안'이라고 이름 붙여 보자.
좋은 불안에 좀 더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준다면 '성장 불안' 정도가 될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벗고, 어른으로 자라 가는 사춘기 불안, 새가 알을 깨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변화의 불안, 갑각류 바다생물이 더 이상은 맞지 않는 낡은 허물을 벗고 나와, 새 딱지가 굳어지기를 기다리는 막간의 불안. 더 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는 세상을 깨고 나오는 그 순간 인간은 미치도록 불안하지만, 그래서 겪어내기 쉽지 않지만, 이 변화는 성장의 필수 과정이므로 견뎌야만 한다.
반면 나쁜 불안은 준비되지 않은 내면에 내리는 '결핍 불안'이다.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중요한 시험에 임할 때의 불안, 아무런 경제적 준비 없이 노후를 맞는 불안, 알맹이는 없는데 껍데기만 화려할 때의 불안, 내 안에 좋은 인격자가 훈련되어 있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 같은 것이 나쁜 불안이다. 이 불안은 사람을 될 대로 되라지 자신마저도 포기하는 막장 인생을 살게 만들거나, 먹고 죽자 마시고 죽자 순간적인 쾌락과 인생을 맞바꾸게 만들거나, 착한 널 호구 삼자 나이를 먹어도 스스로를 돕지 못하고 주변에 기생하거나 삥뜯는 응석받이 진상 역할을 하게 만든다.
모든 불안은 사람을 두근두근하게 한다. 좋은 불안과 나쁜 불안의 차이는, 좋은 불안은 기분 좋게 두근두근, 나쁜 불안은 삶이 꺼지는 듯한 느낌으로 두근두근. 신기한 건 우리가 사랑을 할 때도 이 세상 두근두근을 다 모아놓은 듯한 불안정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두근두근은 고통과는 거리가 멀다.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감정상태다. 어쩌면, 사랑은 좋은 불안 중에서도 가장 최고급 위스키 같은 불안이 아닐까. 사랑할 때야 말로 바람직한 성장이 일어나는 순간인 것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남녀 간 사랑이란, 나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고 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순간, 극적인 성장의 순간인지 모른다. 사람이 극도로 불안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상대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도파민이 분수 터지는 순간이라 타인의 세계가 내 세계를 뚫고 들어오는 불안의 격통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지 모른다.
확실히, 좋은 불안은 남녀 간 '사랑'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취를 위해 도전하는 순간, 내가 꼭 해 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시도하는 순간,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배움을 시작하는 순간, 새로운 일 앞에서 극도로 불안해지지만, 행복 호르몬이 지원 사격해 주는 짜릿하고 신나는 감정이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질주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같은 떨림과 설렘이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어제 밤늦게까지 함께 있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또 보고 싶은 것처럼, 밤을 새우고 공부해도 피곤하지 않고, 다음 날 번쩍 눈을 뜨고 일어나 달려 나가게 만든다.
미니멀리스트의 선택
미니멀리즘은 나쁜 불안은 버리고, 좋은 불안은 기꺼이 선택하는 길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중요한 일에 최선과 꾸준을 다한 열심으로 잘 준비해서, 불쾌한 결핍 불안이 마음을 잠식하지 않게 평온을 지킬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 멈춰 서서 평온하기만 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뒤로 후퇴하며 흘러가버리는 것이 인생의 원리기 때문이다. 계속 성장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고요한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고요한 평온만 너무 고집하다 좋은 불안까지 다 막아버리지 않도록 잘 살피며 나아가야 한다. 삶을 줄이고 줄이다 스스로의 성장까지 줄여 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수시로 튀어 오르고 세차게 파도치는 두근두근 불안을 나의 성장의 기록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 좋은 불안을 잘 견딘 나에게 수시로 아낌없는 격려와 보상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나에게 옳지 않은 것,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고 줄여가는 삶이되, 거센 물살이 끊임없이 굽이치는 현실을 견디고 이기며 끝없이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길이다. 인생 80%의 당연한 불안을 이왕이면 달콤한 '사랑' 맛 나는 좋은 불안들로 채우고, 유쾌한 성장 불안 맛 가득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regencygirl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