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의 글쓰기

[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by 하트온

미니멀리즘으로 가는 감정 측정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남을 시간을 미니멀리즘과 함께해 왔다. 오랜 미니멀리즘 추구는 쓸모없는 것을 찾아 버리는 능력을 고도로 발달시킨다. 필요 없는 물건을 과감히 내놓는 일부터 시작해, 인간관계와 생각 정리, 내면 감정 청소까지, 미니멀리즘은 끝없이 번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내 삶 들판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고, 미니멀이라는 이름이 흩뿌려진 자리마다 청소차가 지나간 듯 군더더기 쓰레기가 깨끗이 씻겨 나간다.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할 때, 나를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은 '콘마리'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 출신의 유명한 정리 전문가 콘도 마리에였다. 그녀는 나에게 물건에서 느껴지는 감정 - 콘마리는 '설렘'의 정도를 측정한다고 표현한다 - 를 측정해서 판단하는 기준을 세워주었다. 물건에 대한 감정을 측정한다는 건 얼핏 들으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지만, 실은 물건이 물건만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증거물이라는 것을 꿰뚫어 본 통찰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내가 진짜 즐겨 쓰고 꼭 필요한 물건에 대한 감정과,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붙들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감정은 판이하게 다르고, 우리는 그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특정 물건을 내 손으로 만져보는 순간, 그 물건에 대한 나의 감정이 정확히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콘도 마리에 책과 강연, 방송 프로그램을 다 찾아보면서, 내가 가진 물건들을 다 펼쳐놓고 물건을 하나하나 만져가면서 내 감정을 확인하였다. 내가 진짜 필요로 하는 물건인지 아닌지 분류하고, 버릴 것과 나눌 것을 구분하는 식으로, 콘마리에게 배운 대로 물건 줄이고 정리하기를 감행하였다. 덕분에 90% 이상의 물건을 정리하였고, 지금도 없앨 물건 찾아내는 데는 꽤 감각이 발달한 편이어서, 서너 달에 한 번씩 필요 없어진 물건들을 쉽게 가려 모아 도네이션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글쓰기라는 미니멀리즘 도구


물건을 정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콘마리에게 전수받은 손으로 만져보고 느끼는 '손수 감정 측정'이었다면, 내면을 정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글쓰기'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손수 감정 측정'이 감정의 질감을 느끼는 촉각을 기반으로 한다면, '글쓰기'는 감정의 모양을 발견해 가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시각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이다.


글쓰기로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다 보면, 그것에 달라붙어 있는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이 훤히 드러나고, 내가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감정을 향하여 글을 써 나가다 보면,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하등 쓸모없는 감정들은 훌훌 떨어져 나간다.


한마디로 글쓰기는 내면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내면 미니멀리즘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꾸준한 글쓰기는 꾸준한 운동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양의 행복 호르몬을 발산시키는 엄청나게 설레고 즐거운 일 그 자체로, 그것이 내 내면의 어둡고 습한 지하 창고 정리를 해 나가는 과정은 콘마리가 쑥대밭 같은 호더의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 버금가는 짜릿한 쾌감이 드는 일이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따뜻하고 단단한 온돌을 내 마음 밑바닥에 깔아주었다. 나는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인 안정감을 공급하는 '세상에 속한 느낌',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가지려고 진짜 '별짓'을 다해 본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거듭되는 도전과 시도와 쓰라린 실패 끝에, 마침내 글쓰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나는 말로만으로 안되고 반드시 글을 써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히 정확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말보다 글로 더 깊은 관계, 더 넓은 연결을 만들 수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연결감'을 충족시키는 경험을 하고부터, 나는 더 이상 소속할 기관과 단체, 마음을 의지할 진정한 우정과 의리를 찾아다니는 '별짓'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내 시간과 에너지 자존감을 축내던 도둑들이 다 사라졌다.


또한 글은, 자존심과 고집스러운 오기로 똘똘 뭉치고 얽힌 - 자격지심과 열등감 과한 자의식이라는 초강력본드까지 덕지덕지 발린 - 내 자아를 부드럽게 해체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성찰하고, 더 업그레이드된 자아로 재조립하는 능력이 있었다. 언제든 이게 아닌데 싶은 순간마다, 나는 글 안에서 나를 조각조각으로 분해해서 펼쳐놓고, 어떻게 더 나은 버전의 자아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해체 재조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부터, 나는 남 탓을 할 필요도, 남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할 필요도,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의식할 필요도 없어졌다. 내 탓만 집중적으로 보고 책임지고 고치고 발전하면 되는 거였다. 타인이 지옥이 될 사르트르의 조건 자체가 없어져 버렸으므로, 나는 훨씬 가벼워졌고 행복해졌다.


글은 내 맘대로 내 계획대로 일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게 - 세상이 인생이 내 맘대로 풀리지 않는 만큼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내게 - 내가, 나만이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안전한 세계를 만들어 주었다. 내 글은 오로지 나의 행복만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짓고 허물고 추가하고 생략할 수 있다. 남에게 보여줄 수도 있고,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으며, 내 마음대로 몇 번이나 다시 쓸 수도 있고, 내 상상이 머리에 꽃 달고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할 수도 있다. 아무도 말릴 수 없고, 간섭할 수 없고, 종이를 뚫고 나와 나를 헤칠 수도 없다. 온전히 나를 위해 내 뜻대로만 존재하는 세상을 나는 드디어 얻었으므로, 그 외 다른 것들을 통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남의 세계를 엿보고 탐낼 시간도 없이 내 세계를 번창시키고 확장시키는 것만으로도 바빠 다른데 눈 돌릴 여유가 없다.



매일 글쓰기


90% 이상의 물건을 없앤 뒤에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도네이션 하는 일처럼, 나의 글쓰기도 끊임없이 일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내면 성장 속도를 따라가며, 군더더기 감정들을 정리 청소하여 자아를 건강하게 행복하게 성장시키는 과정에 요긴하게 쓰인다. 동시에 나의 글쓰기는 가장 즐거운 놀이이며, 가장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골프채를, 누군가는 낚싯대를, 누군가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늘 곁에 두고 사용하며 반짝반짝 닦아놓고 바라보듯, 나에게 글쓰기는 그 같은 설렘과 감사함을 주는 최고의 인생 동반자다. 내 삶의 길에 끝없이 이어질 내면의 '목욕재계'이며 성화가 일어나는 '신성한 의식'이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mohamed_has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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