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아 거북아 SNS 왜 하니?

[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by 하트온

값을 생각해야 하는 삶


수요가 많아지면 돈벌이가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경제 법칙이다. 수요는 마케팅 광고에 의해 키워질 수도 있다 하니, 너도나도 요즘 최첨단 마케팅 플랫폼을 섭렵하기 위해, 유튜브, 인스타에 뛰어들고 보는 세상 트렌드. 구독자와 팔로워가 바로 수요로 나아가 돈으로 환산되는 그런 시대에, 소셜 미디어를 무시하고 살아가기는 힘들다.


미니멀리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경쟁과 경제활동을 해야 먹고살 수 있고, 이 세팅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성장을 요구한다. 세상과 연을 끊고 조용히 글만 쓰는 작가들 또한, 글을 모아 책을 출간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이름값 - 작가의 이름이 일으키는 수요 - 과, 모자란 이름값을 채워 줄 기발한 기획을 고민해야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선 어떤 일도 수요에 대한 계획과 계산 없이, 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수요를 유도하는 모든 것은 판촉도구 경제 가치가 된다. 작가의 글 한 편부터, 알바 외모까지 경제법칙이 철저히 좌우하는 지독한 자본주의를 우리 모두는 이겨내야만 한다.


미니멀리스트의 고민은, 자신의 삶 안에 이 지독한 자본주의 물질주의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다. 미니멀리스트도, 아예 사회망에서 벗어나 자급자족 생활을 하는 '자연인'이 아닌 한, '사회인'일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 시장 패턴을 파악하고 수용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집안, 소속, 학벌, 외모, 실력,.. 한 개인이 가진 모든 소유를 돈으로 환산해 주고, 모든 것의 경제 가치를 꼼꼼히 매겨주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과, 꿈과, 일의 '값'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고만 살아가기는 어렵다.



미니멀리스트에게 SNS


구독자 팔로워를 늘려 이름값을 성장시킬 수 있고, 구독자 수요를 파악할 수 있는 통로인 소셜미디어는, 필요치 않은 것을 최대한 기피하는 미니멀리스트에게도 피하거나 버리기보다 활용해야 할 무엇으로 다가온다. 브런치, 인스타,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틱톡... 문제는 이 광대하고 다양하게 범람하는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취해야 할까이다. 이것이 상당히 오래 고민해 온 주제였고, 솔직히 지금도 고민이 깨끗이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목적과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고 시작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처음 시작 의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어느 지점부터는 정리되지 않은 의도들이 충돌하고 엉키기 시작하니 너무 부담감이 커져서 그만하게 되었던 경험들이다.


1년 정도 열심히 했던 유튜브는 글을 영상에세이 형태로 만들어 내 글을 알리는 도구로 쓰려던 것이었는데, 영상 에세이 한 편을 만드는 일이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몹시 큰 것에 비해 조회수로 증명되는 효율이 너무 낮았다. 결국 브런치 글쓰기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유튜브 영상에세이 작업은 흐지부지 되고 말었다.


페이스북은 태평양 건너 친구 친지들과 가족사진과 일상을 나누는 개인 앨범으로 쓰려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삶이 넓어지는 만큼 친구 지인의 범위가 이웃과 직장동료, 각종 모임으로까지 확장되면서 더 이상 개인 앨범의 의미를 넘어서게 되어 가족사진 공개가 마음에 부담이 커지며 서서히 손을 놓게 되었다. 트위터, 메신저도 동창들이 소통 도구로 쓰자 해서 계정을 만들었지만, 점점 각자의 생활로 바빠지고 옛 친구들과 연락이 뜸해지면서, 전혀 쓰지 않는 유령계정이 된 지 오래다. 몇 년간의 SNS 경험을 통해, 용도가 명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발히 사용할 명분이 없는 SNS 사용은 결국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계정 낭비가 될 뿐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인스타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한 것으로, 이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사용 목적을 독서 기록을 나누고 내 글을 알리는 용도로 대폭 좁힌 채로 시작하였다. 아는 지인이나 친구가 아닌, 불특정 다수로 교류 범위를 정하고, 올리는 피드 이미지에 사생활 노출을 제한하여 부담 요소들을 시작부터 차단하였다. 인스타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아침저녁 15분씩 하루 30분 정도. 나의 사색, 내가 읽고 쓴 것을 세상과 나누는 의미도 있지만, 다양한 방식의 소셜미디어 활용을 관찰하고 배우는 맛도 쏠쏠하다. 아는 사람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연결하여 세상을 알아가는 탐험이 있고, 너무 시간을 소모할 만큼 중독성은 아니지만 작은 어항에 물고기 몇 마리 키우는 느낌 정도의 부담 없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브런치는 인스타보다 글을 더 공들여 쓰고 대문 이미지 선택에도 글의 주제와 맞추어 신중을 기하는 면이 있어 시간을 좀 더 할애하게 된다. 브런치는 나에게 소셜미디어로서 글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키우고,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장치로서의 의미가 훨씬 더 크다. 브런치 플랫폼이 오래오래 건재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글을 쓰는 글쓰기 훈련소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브런치나 인스타 운영에 큰 부담이 없음에도 내 안의 미니멀리스트는 고민한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나는 소셜미디어를 하는가' 상당히 자주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미니멀리스트는 거대한 디지털 쓰레기 더미를 만드는 일에 조금의 시간도 쓰고 싶지 않다. 구독자 수, 팔로워 수에서 어떤 참 의미를 찾고, SNS를 통해 만들어 가는 세상과의 연결을 무엇을 위한 통로로 써야 하는 걸까.



소셜미디어에 담는 마음


내 마음은 자주 존경하는 위대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세상에 던져놓은 질문을 거듭 곱씹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What are you doing for others?)


내가 매일 같이 정성을 들이는 글쓰기나, 공들여 기획해야 할 책 쓰기에, 독자가 챙겨갈만한 좋은 가치를 꾹꾹 채워 담아야 하는 것처럼, SNS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돌아보고 손을 뻗을 만한 유익한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자신의 공간을 시원하게 비우기 위해, 주변 경관이야 어떻게 되건 대책 없는 쓰레기 더미를 집 밖에 던져놓는다면, 그 미니멀리스트는 민폐 이기주의자라고 욕을 먹을 것이다. 반면, 자신을 비우는 것이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 되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면, 너그러운 박애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 활동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거짓 광고와 과대 포장이 선을 넘어가면 사기 범죄까지 타락할 수도 있지만, 나의 재능을 나누어 타인의 필요를 채우고, 세상을 향하여 따뜻하고 진실된 마음 연결을 넓혀가면, 하나의 거대하고 건설적인 사회 운동, 우리의 삶을 좀먹는 불의와 악을 물리쳐 후세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비폭력 정의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라는 플랫폼은, 하나의 잘 지어진 건축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건축물을 채우는 마음이다. 결국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건축물은 그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공간이며,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그곳을 좋은 곳으로도 나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확실히 나는 언제가 될지 무엇이 될지 모를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달리 이름값이 없고, 가진 것이 없으니, 스스로를 브랜딩 하고 마케팅하는 길을 열어 나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구독자,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내 개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부담과 노력을 최소화하려는 미니멀리스트의 방향성이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너무 애를 쓰다 지쳐버리거나, 부담이 커지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출간을 위해 너무 크게 노력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마음에 짐이 되는 모든 것은 떨궈내고자 하는 미니멀리스트의 기본 태도를 줄곧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런 미니멀리스트에게도 꿈과 사명이 이끄는 방향은 있고, 그 길을 나아가기에 쉼은 없다. 다만 시간과 에너지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소모하지 않음으로써 끝없이 지속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이 내 일상이 편하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짐을 실어 나르는 중이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움직여 가고 있다. 결코 게을러서 느림보가 된 것이 아니라, 거북이 보폭이 원래 몹시 짧을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길을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특별한 재능과 주변 환경을 타고난 덕분에 성큼성큼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이들도 있고, 나처럼 느릿느릿 걸어가는 거북이도 있다.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중이라는 점에서 모두 같은 처지다. 인생은 어쩌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기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삶인지 모른다. 나아가는 길을 최대한 즐겁게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행복의 비결인지 모른다.


어차피 삶이 무엇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판국에, 나는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로서의 삶의 가치를 믿어버리기로 했다. 나의 거북이 삶을 '느리지만 그래도 즐거워' 하기로 마음먹었다. 즐거워하기로 마음먹은 심장을 기쁜 일들이 자꾸 두드린다.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는 것에, 매일 눈을 뜨면 앞이 보이고, 보이는 것을 향하여 다리가 나아가는 기적에 매일 감사하고 감격한다. 내 삶의 군더더기를 제거하여 내가 추구하는 것의 본질을 분명히 정확히 하여, 나의 길을 편안하고 쉽게 만들어 주는 미니멀리즘이라는 도구가 고맙고 기쁘다. 보다 느린 한걸음이지만 보다 많이 행복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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