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버린다는 건

[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by 하트온

과거의 버림


버리기만 잘한다고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건 아니다. '잘'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못' 버리는 사람이 있고, 버려서 좋을 수도 있지만 버리고 후회할 수도 있다. 버림도 하나의 선택이며, 선택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버리는 마음이 제각각인 만큼, 그 결과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되도록 '잘' 버리고 싶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버린다. 다른 모든 일과 마찬 가지로 버림에 있어서도 내 선택이 잘한 옳은 선택이 되려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물론 미니멀리스트 되기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다. 다만, 버리려는 내 마음이 어디서 온 것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분명히 진단할 수 있는 자신을 아는 능력은 갖추어야 한다. 적어도 버려서 나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 부르며 그 길을 오래 걸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자신을 잘 알고, 잘 버리는 능력 충만한 미니멀리스트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미니멀리스트라는 이름을 '내가 되고 싶은 정체성 리스트'에서 빼놓지 않는 것은, 내가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지난 10여 년의 시간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꽃과 처음부터 죽이 척척 맞아서가 아니라, 꽃을 위해 공들인 그 시간 때문에 꽃이 어린 왕자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된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미니멀리스트라는 정체성이 전혀 없었을 때도, 나는 참 잘 버렸다. 수없이 많이 여러 가지를 버렸다. 그때의 내 마음, 내 버림을 생각할 때 나는 자랑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얼굴이 따갑고 화끈거린다. 그때의 나는 참 세상모르는 철부지였고, 내 마음을 몰라도 한참 몰랐던 멍청이였다.


한창때의 외모와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 샘솟는 힘을 나는 부족한 내면을 꽁꽁 싸매고 포장하는 데 쏟아부었다. 숨기고 덮은 내 껍질을 건드리고 파고 들어오려는 모든 것들을 나는 징그러운 벌레처럼 거부했고 보는 족족 잡아떼어 버리려고 애썼다. 어쩌면, 그 시절 내 모습은 '버림'보다 '도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좀 불편하고 아파도 버리지 말고 붙들고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들, 겸허히 배워내야 했던 가치들까지 깡그리 버렸던 나는 참 어리석었다. 스스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늘 주변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고, 나를 휘두르는 주변이 너무 아프면 나는 주변 전체를 다 버리는 선택을 했다. 꽃과 잡초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환경은 늘 엉망진창이 되기 쉬웠고, 감당할 수 없는 높이로 수풀이 우거져 시야를 가릴 정도가 되면, 꽃과 잡초를 가리지 않고 다 베어버려야 했다.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그렇게나 극단적이었고, 아팠고, 고통의 후유증도 오래갔다.



현재의 버림


과거의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울 정도로 모자랐던 만큼, 거기에서 마침내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 내가 한결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느끼는 것인지 모른다. 온 자아가 맨땅에 부딪쳐 싸우며 고생했던 전력 덕분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까를 선택하는데 조금 더 신중히 조심하는 사람, 조금 더 참고 기다려보는 사람, 때론 아닌 것을 과감히 끊어내는 결단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10년 20년 후 미래에서 온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여전히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미래가 지금 당장 현재를 평가할 길은 없으므로, 나는 현재에 충실하고 만족할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 한 선택들을 믿고 나아갈 수 있다.


과거보다 현재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것 중, 내가 생각해도 무척 신기한 변화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에 대한 내 태도다. 과거의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모든 것을 우선 미워하고 보았다. 그것은 때론 학문이었고, 때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연인이었으며, 때론 윗세대 어른, 부모이기도 했고, 한 권의 철학서나 한 편의 시나 소설이기도 했다. 심히 자기중심적이었던 내 기준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잘못된 것'이거나 '이상한 것'이었다. 나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난해하고 불친절한 언어 사상 태도 문화 관계를 나는 쉽게 혐오했다. 내 알량한 논리가 인간의 대단한 타고난 능력이고, 세상의 중심 기준인 양 착각하고 있었으므로, 술술 읽히지 않고 물 흐르듯 이해되지 않는 모든 생각과 말을 거부했다. 수업을 거부할 때도 있었고 책을 던져버릴 때도 있었고 사람을 떠날 때도 있었고 문화 전체를 비하할 때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꽁꽁 묶인 채, 더 이상 '버리고 떠나는' 방어 기술을 쓸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 갇혀 버린 일이 일어났다. 그 이상한 나라의 다른 이름은 바로 '결혼'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길렀던 나의 삼십 대는 불합리와 모순의 용광로 그 자체였고, 나는 그 불구덩이 속에서 10여 년간 나와 너무 다른 존재들과 그대로 함께 '융해'하는 과정을 겪었다.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어 가는 과정은 마치, 과거의 나는 깨끗이 죽고 새로운 복합융합물로 재탄생하는 느낌이랄까, 함께 무인도에 표류한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협력해서 살아내야만 하는 극기 체험이랄까. 그런 환경 속에서, 내 속은 타들어가다 어떤 시점부터 변형이 되어버렸다. 터미네이터 영화에 나오는 전투 사이보그가 가질법한, 아무리 공격받아도 다시 신속히 재생하는 초합금 액체형 심장 같은 것이 내 안에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을 인내하고 소화해 내고 수용하는 최신형 고강도 터미네이터, 'T - 마음'이었다.



이해가 안 가도 버리지 않는 'T - 마음'


터미네이터 마음을 갖추고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밤하늘에 깔린 별들처럼 온 세상에 깔려 반짝이는 게 거슬리기보단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각 사람의 마음이다. 얼굴이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 언어, 문화, 사상, 역사가 다 다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를 사랑하자고 손을 뻗어 불러대고,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 마음을 참 힘들게 한다. 낯선 씨앗이 날아들어 생전 본 적 없는 이상한 성격의 꽃을 피웠을 때 어린 왕자가 느꼈던 설렜다가 반했다가 불쾌했다가 떠나버리고 싶었다가, 떠난 후에야 사랑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복잡하고 피곤한 마음의 과정을 다 요구한다. 참 번거로운 일이다.


피곤하게 완성한 사랑이기에, 번거롭게 맺은 관계이기에, 어렵게 인내하며 배운 학문이기에, 공들여 마음으로 읽고 쓴 시와 소설이기에, 내가 시간을 보내고 노력한 만큼 소중해진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내가 공들여 사랑한 존재, 그 소중한 존재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미니멀리스트는 무조건 버리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킬 것은 지킬 줄 알고, 버릴 것은 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버릴 것과 지킬 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이 미니멀리스트다. 정말 소중한 것을 함부로 버리고 그 결과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그냥 어리석은 실수일 뿐이다. 내 삶 속에 치열한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은 대상, 이해가 가지 않는 피곤함을 견디고 마침내 받아들인 소중한 존재들을 잘 지키기 위해, 아닌 것 쓸모없는 것을 골라서 '잘' 버릴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버리고 행복한 사람,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나는 전보다는 훨씬 더 점점 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Josch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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