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아침 의식(morning ritual)
나의 아침 의식은 아직 잠이 들 깬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첫 단계는 '가만히 누워 있기'.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차츰 깨어나도 죽은 듯이 누운 상태를 유지한 채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이 시간은 어둠과 빛, 죽음과 삶, 잠과 깸, 쉼과 활동, 무의식과 의식, 극도로 다른 성질을 가진 개체들의 충돌과 교차가 폭발하는 환승 대란 구역이다. 나는 고요히 눈을 감은 채로 대대적인 환승이 빠짐없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온몸 구석구석으로 깨어나고 싶은 의지의 물살이 퍼져나가, 몸이 스스로를 일으키고 싶은 세찬 의욕을 보일 때까지 몸의 의지를 존중하며 기다려 준다.
예전의 나는 이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려고 애를 썼다. 조급한 마음은 몸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고, 1분이라도 아끼자고 채찍을 마구 후려치면, 몸은 불안과 겁에 질린 채 후다닥 뛰쳐나가곤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기로 마음먹은 나는 이 시간을 단축시키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요가 마지막 동작으로, 온몸에 힘을 빼고 '사바사나' 죽음 같은 휴식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나의 의식은 몸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어나기까지 '사바사나' 되감기를 한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잠자리를 간단히 정리하고, 몸의 어떤 부위도 놀라게 하지 않을 온도의 따뜻한 물을 마신다. 이것이 나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편하고 간단한 아침 의식이다. 씻고 단장을 마치고 나면 나 개인의 아침 의식은 끝난다.
가족과 함께
이제 가족 전체의 의식이 시작될 참이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날 때마다 얼굴을 마주하고 아침인사를 한다. 다시 살아나서 또 얼굴 보니 너무 반갑고 행복한 감정을 전한다. 각자 스마트폰 비행기 모드를 풀고, 이메일 소셜 미디어 소식창을 열고, 밤새 쌓인 소식들을 확인한다.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만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한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면, 오늘자 주요 기사들을 쭉 읽어보기도 한다. 각자의 몸이 요구하는 대로, 원하고 필요한 것을 먹거나 마시거나 배출하는 시간을 가진다. 컨디션에 따라 공복 운동을 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두 나갈 채비를 마치면, 함께 집을 나서 근처 공원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매일 그날의 하늘, 그날의 자연을 확인하며 날씨와 계절 변화를 관찰하고 싶다. 세상이 지구가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연과 가까이하며 느끼며 살아가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에 수십 명의 아이들과 갇힌 채로 나는 자주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고, 늘 창 밖을 바라보며, 건물 밖 자연의 시원한 공기를 갈망했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마음은 인생길 내내 매일 같이 문을 열고 나와 활짝 열린 공간, 자연의 품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자연의 맑은 숨을 실컷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족은 돌아가며 먹고 싶은 음식을 브런치로 먹는다. 아이들이 함께 사는 집이다 보니, 종종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아침 첫끼부터 피자나 햄버거를 먹는 날도 있다. 오는 길에 큰 마트에 들러 저녁 찬거리 장을 본다.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에 매일 나가는 것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매일 느끼며 세상과의 연결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우리 가족 의식의 일부다.
집에 돌아와 정오쯤부터 각자의 작업, 일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홈스쿨을 하고, 남편과 나의 일도 오후부터 시작한다. 모두가 집에서 공부하고 일하기 때문에, 집이 학교고 사무실이다. 부엌 탕비실, 운동 시설을 잘 갖춘 편리한 작업실이다. 일 하는 사이사이, 머리를 식히며 운동도 하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오븐에 간식도 구워 먹고,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궁싯거리기도 한다.
내 일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고, 영어지도의 기본은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 4가지 언어 영역을 골고루 성장시켜 주는 일이다. 이 일은, 교사인 나에게 끊임없이 영어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며 스스로를 갈고닦는 훈련을 요한다. 나는 내 직업이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동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좋다. 하루 종일 영어라는 언어문화와 영문학 영어 기사글에서 얻는 감동과 영감, 깨달음이 많고, 끊임없이 내려와 쌓이는 지적 문학적 자양분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한다.
밤 9시는 우리 가족의 퇴근 시간이다. 남편도 나도 모든 스케줄이 끝난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의식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 날 아침에 어디 가서 걷고 무엇을 브런치로 먹을 것인지, 저녁 찬 거리는 어디서 무엇을 살 것인지 의논한 후, 서로서로를 꼭 끌어안으며 오늘의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하루 종일 고마웠다고, 너는 나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라고, 오늘 하루 잘 배우고 잘 성장해 주어서 정말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을 고백하는 뜨거운 소리가 싸늘하고 어두운 밤 서로의 잠자리를 따스하고 아늑하게 보살핀다.
나만의 밤
그리고 오롯이 나의 시간이 온다. 자기만의 밤이 열린다. 나는 책을 읽고, 느낀 점 배운 점을 기록하고, 어제 쓰다 만 글을 퇴고하고, 새로운 초고를 끄적거린다. 앞으로 쓰고 싶은 책 제목을 짓고 기획안을 써보기도 하고, 문득 읽고 싶은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들을 나열해 보기도 한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하는 역사 속 인물과 사건에 끌려 캐고 조사하기도 하고, 철학 사조의 흐름과 서로 간 연결고리를 잇는 퍼즐 맞추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무도 시키는 사람 없이, 혼자서 읽고 정리하고 배우고 쌓아가는 나만의 세상이다. 나의 세상에 어떤 감정 어떤 생각이 존재하는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면서, 나의 세상을 시대 역사와 더불어 연결하고 넓혀가는 확장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어둠의 탄탄한 벽으로 둘러싸인 숭고하고 존엄한 이 시간의 바다에서 내면의 불을 환하게 켜고 천천히 유영하며 나는 캄캄한 밤만큼이나 두텁고 진한 안정과 행복 그리고 자유를 느낀다.
아직은 자는 것보다 깨어있는 것이 좋다. 마음은 끝없이 밤바다 물놀이를 이어가고 싶고, 밤에 찾아오는 환승 시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밤에도 몸이 말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숭고한 환승 작업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수록, 삶에서 죽음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깸에서 잠으로, 활동에서 쉼으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환승 의식도 자연스럽고 편한 마음으로 맞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한다. 결국은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인생 과정을 감사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라 믿기에, 불안과 걱정은 마음에 들이지 않고 설렘과 즐거움만을 챙기며 소박하고 단출하게 살아가려 한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andelion_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