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이제야 보이는
나는 부족한 점도 많고 단점도 많지만, 그럼에도 내가 어떤 면에서 스스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 어둠 속 한 줄기 햇살 같은 믿음이 있었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줄 세우지 않는 뼛속까지 평등주의자. 사람을 껍데기나 포장으로 평가하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할 줄 아는 박애주의자. 나를 평생 지켜본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게 지켜주던 하나의 성냥 불빛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나의 위선과 비열함을 보았다. 어느 날 내가 실수로 중요한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못한 일이 있었다. 분명 나의 불찰이고 내 실수였다. 큰 실수를 하고 상대방을 실망시킨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부끄럽고 온갖 감정이 들었다. 하루 종일 작은 일에 짜증이 나고, 감정이 끓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나의 잘못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다음부터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실수로부터 배우고 개선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내 주변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이 일에서 그 사람의 실수를 샅샅이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 마디 할까 말까 속으로 붉으락 푸르락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화풀이와 책임전가를 하려는 게 나의 가치관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내 밑바닥에 깔려있는 인간 본성이구나 깨달음이 왔다. 한 번 깨달으니, 과거 내 비열했던 모습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씩 다 떠올랐다. 자라면서 엄마와 동생에게 했던 못된 말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과도하게 화내고 야단쳤던 일들, 가장 편한 친구들에게 더 많이 짜증 냈던 일들... 나 역시 선택적으로 분노조절을 하지 않는 구석이 있는 비열한 인간에 - 평소 내가 경멸하고 결코 함께 하고 싶지 않은 부류 - 지나지 않았다.
약자를 이용하고 괴롭히고 싶은 갑질 본능, 더 가진 사람 보면 화나서 뺏고 싶은 질투 시기심, 서열의 꼭대기에 서고 누리고 싶은 우월감,... 이 본성들은 빠져나갈 수 없게 내면의 바닥을 촘촘히 채우고 언제든 약간의 불씨만 붙으면 힘차게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만 계속하기엔, 내가 자초한 흑역사가 너무 많고, 낯뜨거운 실수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가 힘들다. 이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초월해서 살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는 내가 못살겠구나 싶다.
내 안의 동물 본성
인간이 가진 이러한 물고 뜯고 괴롭히고 이기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본성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이다. 이런 인간 본성을 죽이지 말고 열심히 싸우고 이기며 초인이 되고 디오니소스 라이프를 살라고 하는 철학자의 책을 읽으며 정말 그럴까 인간 본성 그대로를 세찬 삶의 동력으로 써 볼까 혹한 적도 있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은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를 이끌어 주지 못한다는 걸. 다른 사람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는 존재는 평화 대신 기꺼이 전쟁을 선택하는, 약자를 잡아먹는 천적으로 살아갈 도리가 없다. 천적 시선을 가지고는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동물 본능이 기본값 디폴트로 내 안에 깔려 있다는 것이 미치고 팔짝 뛸 인생 딜레마다. 아래로 흐르는 물을 역류해서 올라갈 기발한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으면, 평화를 선택하는 법,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한 번도 배워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동물 본성을 내다 버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이 본성을 다루고 통제하며 긍정적으로 발산하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사랑과 평화를 선택할 길을 찾는 일에 나는 내내 진지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겠다고 나는 스스로와 약속했다. 내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 특히 분노의 대상이 나보다 강한 사람이 아닐 때, 분명 그 상황 안에는 내 잘못이 큰 게 있을 거라고 의심해 보기로 했다. 화를 분으로 발산하지 않고 조용히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나서, 한 나절이 지난 후에도 상대가 더 잘못한 것이 있다고 분명히 생각되면 조용히 대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질투가 나고 시기심이 올라올 때는, 분명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거나, 뛰어난 재능이나 환경을 타고나서 잘하고 나은 게 있기 때문일 것이라 믿기로 했다. 그래서 나보다 더 잘하고 더 나은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데 질투심으로 솟구친 감정 에너지를 쏟아부으리라 결심했다. 나의 장점을 자랑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기분이 든다면, 나의 결핍이 건드려진 게 아닌지 의심해 보기로 했다. 결핍에 대한 자격지심이라는 동전의 뒷면이 우월감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먼저 더듬어 보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결핍에 대해서는 조급해하거나 수치심의 원천으로 삼기보다, 나를 배우고 열심히 살아가게 만드는 힘의 원천 진귀한 재산으로 삼자고 마음먹었다.
동물 본성을 함부로 방치하고 통제하지 못하면, 나를 사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내 인생은 점점 더 위험한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주변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진상이 되는 지름길이다. 사회가 나를 좋게 보지 않으면 나 스스로도 나를 좋게 봐주기가 힘들다. 사람은 인간의 포악한 동물 본성을 잘 통제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믿고 신뢰한다. 화가 난 순간에도 지혜로운 말과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안전하게 생각하고 함께하고 싶어 한다. 동물 본성이 거센 감정의 파도 폭풍을 일으킬 때, 잠잠하게 기다리고 화내기를 게을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감정 홍수 재난 상황에 처해도,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조절하는 힘을 갖추어 가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를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사랑해 낼 수 있는 경지,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를 선택하는 경지 가까이라도 이를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동물을 다루는 조련사
결국 미니멀리즘은 선택이다. 불필요한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여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것이다. 내 본성에 대해, 감정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 없는 것인가. 나는 사랑과 평화를 선택하고 전쟁과 갈등을 비워내고자 한다. 나는 부지런한 배움을 선택하고 자아에 대한 과잉보호 본능을 버리고자 한다. 나는 진솔한 자아성찰을 선택하고 비열한 위선을 떨쳐내고자 한다. 나는 나의 결핍까지 사랑으로 품는 쪽을 선택하고, 그것을 포장하는 순간적인 우월감 교만에 현혹되는 일을 피하고자 한다.
마침내 나는 선택을 끝냈다. 이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이 선명히 구분되었다. 불필요한 것은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필요한 것은 소중히 여기며 항상 곁에 두고 살아가면 된다.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며 적절히 잘 쓰며 살아가면 된다. 선택과 정리와 청소가 끝난 내 마음이 참 시원하다. 어떤 동물이 내 안에서 튀어나와도 나는 그것과 맞서 길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든든하다. 나는 이 정리정돈된 마음의 기쁨을 잊지 않기 위해, '멋진 조련사'라는 정체성을 내 뼈에 새겨놓는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mohamed_has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