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떽쥐뻬리의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
워싱턴 디씨, 조지타운 대학 앞 아마존 서점에 갔을 때 이 책을 샀다.
이 책 어떨까 물었을 때, 당시 아들은 사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아이들 세계에서 유행하고 핫한 책들이 따로 있고, 요즘 핫한 책은 대부분 만화 형식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그림 많은 책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아들은 5학년 고학년생임에도, 글자가 많은 책을 보면 부담감을 느끼는 듯하다.
남편이 ‘이 책 정말 좋아. 사서 읽어봐’라고 권유했고, 나도 어릴 때 읽어보긴 했지만 ‘보아 뱀’ 그림밖에 기억나는 게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린 왕자 책 내용을 인용하는 구절을 접할 때마다, 난 왜 저런 말들이 기억이 안나지 싶은 게 뭔가 내가 중요한 걸 다 놓쳐버린 느낌이라 책을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책을 집어 들고야 말았다.
막상 책 읽기를 시작하니, 책엔 생각보다 어려운 영어 단어가 종종 섞여 있어 아이와 함께 단어를 찾아보아야 하기도 했는데, 단어 100개를 찾으면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사주기로 약속하는 것으로 어려운 단어가 나오는 것에 대해 거부감 방지 조치를 취했다.
이 책엔 다행히 아이의 관심을 끄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이 글을 쓴 작가도, 이야기 내레이션을 하는 캐릭터 아저씨도 아들이 동경하는 비행기 조종사라는 점.
둘째, 100년 전에 쓰인 책이라는 점. 이 책을 통해 100년 전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니!
셋째, 흥미로운 그림이 사이사이에 있다는 점. 그림이 생각보다 크게 아이의 마음을 끌었다.
맨 처음 나오는 보아뱀의 그림을 보자마자 아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건 당연히 모자지.
이 책에 그려지는 어린이의 생각보다 어른들의 생각을 더 잘 공감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너무나 현실적 논리적 이성적인 아들과 이 책을 계속 함께 읽어갈 수 있을까 약간 난감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읽고 싶었기에 쭉 읽어나갔다. 생각보다 아이도 계속 흥미를 보이며 따라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책 내용 사이사이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일러스트들에 큰 관심을 보이고 따라 그리기도 했다.
아들은 조종사 아저씨가 어린 왕자에게 양을 그려주는 장면을 아주 좋아했는데, 마지막에 어린 양이 들어있는 상자를 그려주는 것을 보고 박수를 치더니, 어느 날 레고를 조립해서 상자를 만들곤 이 안에 양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어린 왕자' 캐릭터에 영감을 받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책을 계속 읽으며, 작은 행성에서 일상을 보내는 상상, 바오밥 나무가 행성을 다 차지해 버리는 상상, 물을 찾아 사막길을 헤매다 달콤한 노래 같은 물을 마침내 마시는 상상, 뱀과 여우를 만나 친구가 되는 상상, 꽃과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했다.
책의 후반부에 들어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나고, 여우가 말하는 인생과 관계에 관한 의미 심장한 대화 부분을 읽었다.
Anything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정말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It’s the time you spent on your rose that makes your rose so important.(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이야.)
You become responsible forever for what you’ve tamed. You’re responsible for your rose.(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너에게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니까, 너는 네 장미를 책임져야 해.)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어 단어 모르는 건 하나도 없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뭔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에 생각을 계속하더니, 자기가 아빠와 늘 함께 있고 싶고, 아빠가 소중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는 소리를 했다.
그건 내가 아빠를 길들였고, 아빠가 나를 길들였기 때문이야. 그래서 아빠가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슬퍼지고 찾게 되는 거야. 아빠는 나에게 중요한 존재야.
제 나름의 아빠에 대해 애틋한 감정이 드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찾은 모양이었다. 문장의 주어들이 죄다 아빠인게 내심 섭섭했지만 ㅠㅠ
책 -남의 글-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걸 도와줄 언어를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나는, 아들이 자신의 감정 한 자락을 설명할 언어 한 바가지를 이 책 속에서 찾아낸 것만으로도 이 책을 함께 읽기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