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한 마녀의 볶음밥

[힐링 푸드 에세이] 내 마음을 먹여 살리는 밥

by 하트온

푸릇푸릇 싱싱한 파 두 뿌리를 총총총 다져, 버터와 아보카도 오일을 섞어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참을성 있게 볶는 중입니다. 불맛 파향을 위한 진심 어린 정성입니다. 그리곤 밑간 한 닭살과 야채를 순서대로 넣어주고, 잘 익기를 기다려, 찰기가 덜하고 향이 고소한 태국쌀로 지은 밥을 넣어 섞어줍니다. 마침내 불을 껐지만,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참기름을 듬뿍, 깨와 아마씨 대마씨까지 솔솔 뿌려 섞어 줍니다.


가마솥 안에 이것저것 진귀한 묘약을 다 집어넣고 부글부글 마법 수프를 끓이는 마녀가 따로 없습니다. 맛있어져라 건강해져라 주문을 걸고, 맛을 내고 건강을 챙기는 묘약을 다 집어넣었습니다. 평소 아이들이 싫어하는 식재료를 숨겨 욱여넣기에 볶음밥 만한 음식이 없어서, 조리를 하는 제 입가에 마녀의 은밀한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음식 앞에서 교활해지는 저의 이 마녀 본성이, 다 밝힐 수 없는 재료의 비밀을 간직한 스릴 넘치는 볶음밥이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한계 없는 선택의 자유가 활개 치는, 내면 욕구와 충동이 마음껏 날뛰는, 그러면서도 먹을 사람이 기대하는 볶음밥 본연의 고소한 맛을 쉽게 잃지 않는, 이 뜨거운 볶음밥 조리 시간이 저에게 큰 만족감을 줍니다.


이 어마어마한 만족감은, 그전엔 가지지 못했던지라 더 그럴 거예요. 과거의 저는 마녀가 아니라, 잡아 먹히기 위해 마녀의 감옥에 갇혀있던 '헨젤'이었습니다. 부모가 세상이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며, 그렇게 정해진 레시피를 제가 바꿀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요리 연구가라는 사람들이 정한 요리법에 맞추어 따라가는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었고, 그렇게 열심히 따라 만든 것이 결국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경험을 하면서, 비싼 요리책들이 사기이거나, 내 손은 레시피가 있어도 손맛이 안 따라주는 몹쓸 살덩이에 불과하구나 실망하기를 반복했어요.


상처 피비린내 진동하는 성차별 역사 현장인 부엌이 처음부터 불편하고 어색하던 차에, 나는 요리에 더욱 관심이 없어질 수밖에요. 그냥 포기해 버렸어요. 내 인생에 멋진 요리를 번듯하게 차려내는 드라마는 주인공 연기력 논란으로 조기종영 해버린 거예요. '쉬운 조리로 건강만 챙기자'가 자연스럽게 저의 음식 모토가 되었습니다. 볶음밥이 저에게는 가장 쉬운 선택이었습니다. 몸에 좋은 재료 마음대로 넣고 밥 넣고 간만 맞추어 볶으면 끝. 다른 반찬 필요 없는, 맛 좋고 영양 좋은 한 끼 식사로, 가격과 시간 면에서 이것만 한 가성비 옵션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는 동안, 저는 다양한 볶음밥을 시도했어요. 재료만 적절히 다르게 구성하면, 수없이 다양한 볶음밥이 가능한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김치볶음밥, 달걀 볶음밥, 닭볶음밥, 햄볶음밥, 소시지 볶음밥, 소고기 볶음밥, 새우 볶음밥, 게살 볶음밥, 파인애플 볶음밥,... 식욕이 부르는 대로 상상의 나래가 펼치는 만큼 온갖 볶음밥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면서 점점 저는 재료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까부는 마녀로 변해갔습니다. 아마 그 옛날 숲 속 마녀도 가마솥 스프라는 한 가지 음식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온갖 기묘한 재료를 가지고 놀다 마법 수프 전문가 반열에 오른 게 아닐까요.


저는 아마 앞으로 점점 더 다채로운 마법 볶음밥을 만드는 마녀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교활하고 거침없는 마녀가 되고 싶어요. 내가 다루는 모든 재료의 특징을 잘 알고, 거침없이 이것저것 섞어 목적을 이루는, 분야 최고의 실력자 융합형 인재 마녀 말입니다. 내 삶 속의 모든 것을 볶음밥 재료로, 끊임없이 색다르고 맛난 볶음밥을 확장하고 창조해 가는 미래를 여는 개척자 말이에요.


아이들은 숨겨진 재료를 발견하지 못하고 뚝딱 볶음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워냅니다. 맛있게 먹었다며 인사도 잊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마녀 엄마는 혼자서 눈썹을 움찔거리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속웃음을 삼킵니다.


언젠가는 제 독특한 삶의 재료들을 남모르게 배합해 만드는 이 교활한 '볶음밥'을 세상 앞에 내놓을 날이 올까요? 사람들이 저의 마법 창작물을 누구보다 먼저 맛보겠다고 줄 서서 기다리는 날이 올까요? 미래를 향한 야무진 야심은 마녀의 심장을 매일 매 순간 쫄깃하고 짜릿하게 만듭니다. 제 안의 마녀가 세상에 내놓을 '볶음밥'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의 무엇일지 저도 궁금합니다. 분명 건강하고 맛있는 신묘한 무엇일 거예요. 제가 만든 '볶음밥'을 꿀꺽 삼키고 더 튼튼해지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마다 저는 더 큰 속웃음을 삼키며 살아가야겠죠. 혼자 길을 가다 자꾸 밀려오는 즐거움을 참을 수 없어 가끔 가던 길을 멈추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키득거려야 할 거예요. 세상을 더 쾌적하고 멋진 곳으로 변화시키는 은밀한 마법을 온 세상에 듬뿍 뿌려대며, 시도 때도 없이 자주 터지는 웃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렇게 신바람 난 마녀답게 살아갈 게 분명합니다.



대문 이미지 출처: 그림 동화 작가 하디님의 직품입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hady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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