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을 씻어내고 살아난 맛 묵은지

[힐링 푸드 에세이] 내 마음을 먹여 살리는 밥

by 하트온

김치 맛은 배추가 크게 좌우합니다. 유달리 배추가 맛이 없거나, 싱싱하지 않은 계절이 있습니다. 그런 시기엔, 굳이 김치를 담가두어도, 김치에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날이 덥기라도 하면, 김치는 순식간에 선을 넘고 시어져 버립니다. 푹 익어버린 묵은지 상태에서도 구제되지 못하고 방치되면, 김치는 더 이상 음식이라 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흉물 덩어리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다행히 저는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묵은지를 구제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묵은지를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아는 행복한 맛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기술이 대단하고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아까운 양념을 미련 없이 흐르는 물에 씻어 버릴 줄 알기만 하면 됩니다.


비싼 돈 주고 산 재료를 곱게 갈아 정성 들여 만들었던 김치 속을 미련 없이 털어 버리면서,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가 시원하게 떨어져 나갑니다. 더 이상은 먹을 수 없는 상태의 양념 같은 감정이 고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감정은 아마도, 맛없게 시든 배추 같은 존재로 태어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 김치의 시절을 보내야 했던 것에 대해 오래 묵혀온, 더 이상은 그 냄새를 참을 수 없는 제 안의 시어 빠진 원망인 듯합니다.


저는 참 오래도 나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같은 사람도, 어머니 같은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맛없는 김치인 우리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양념을 덧바르며 세상에 나가 싸워 이기라고 화를 내는 강압적인 폭군, 어머니는 자신의 김치까지도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뺏기고, 시키는 일 외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희미한 그림자 신하 같았습니다. 부부가 평등하지 않으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고 맙니다. 상호 존중이 깨진 양념은 실패입니다. 안 그래도 시들한 배추에 양념 비율의 균형까지 떨어지고 말면, 그 김치엔 다시 젓가락이 갈 일이 없습니다.


인기 없고 설익은 김치는 조상 탓 부모탓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왜? 내가 왜? 나만 왜? 왜 이런 고통을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가. 왜 이런 거절감을 반복해서 느끼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스스로를 이렇게 저렇게 고쳐보는 모습이 마치 김치를 볶아보고, 무쳐보고, 설탕을 넣어보고, 밥을 국에 말아 함께 먹어보는 모습 같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해 보아도, 이미 시작부터 맛없는 배추에 지나친 양념은 구제할 길이 없으니, 김치에겐 지쳐 나가떨어지는, 스스로를 방치해 버리는 수순만이 남아 있었겠지요.


씻어 물을 꼭 짜낸 김치는 큰 제천행사를 앞두고 목욕 재계한 엄숙한 신녀 미실처럼 신도 인간도 아닌, 김치도 배추도 아닌 맑고 겸허한 영혼이 가만히 절을 하듯 접시 위에 엎드립니다.


씻은 묵은지는 김치만큼 강하지 않아 좋고, 배추만큼 드세지 않아 매력적입니다. 몸에 밴 모든 역사의 흔적은 이제 더없이 강한 매력 포인트입니다. 이제 이 김치는 전, 찌개, 볶음밥,... 어떤 음식에 섞여 들어가도 기똥차게 풍미를 살릴 것입니다. 저는 오랜만에 묵은지 쌈밥을 해 먹으려 합니다. 양념은 이제 내가 만듭니다. 부모가 만든 양념은 씻어내고, 마침내 내가 이룬 깔끔하고 신선하고 균형 잡힌 양념입니다. 묵은지 잎을 펼쳐 갓 지은 쌀밥을 한 수저 얹고, 양념을 살짝 끼얹어 돌돌 감싸 입에 넣으면 한때 지나치게 짜고 시었던 과거가 매력적인 감칠맛이 되어 뜨겁고 고소한 밥맛과 어우러져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행복한 맛의 파도를 일으킵니다.


묵은지는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 냈고, 소명을 다했습니다. 마침내 조상과 부모에 대한 원망이 깨끗이 떨어져 나갑니다. 지금 이 묵은지를 존재하게 한 것만으로 그들의 소임은 다했다고 인정해 버립니다. 그간의 모든 몹쓸 오랜 절임이 다 오늘의 이 맛을 위해서입니다. 이젠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묵은지의 마음을 평생 눌러왔던 그 부담조차도, 꾹꾹 눌러져 감칠맛이 배가 되도록 제 역할을 하고 간 누름돌이었을 뿐입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면, 깨끗이 씻어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너무 앞당겨선 안됩니다. 잘못된 것 속에도 내가 꼭 취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필요한 양분이 있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고 나서, 이제 더 이상은 이 환경이 나를 해롭게 할 뿐이라는 확신이 들 때, 그때가 바로 모든 것을 벗어버릴 시간입니다. 나를 깨끗이 씻고 - 원망과 미움조차도 다 -, 그 전의 삶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도 됩니다.


앞으로 나는 나의 맛을 위해서 살면 됩니다. 양념이 아까웠다고 미련을 둘 필요도 없습니다. 힘든 환경에서도 살아남았고, 나는 이미 내가 취할 것을 다 취했고, 그것으로 내 존재의 도리는 다 한 것입니다. 어떤 김치는 끝까지 좋은 맛으로 시작된 양념과 어우러져 내내 사랑받으며 쉽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어떤 김치는 한참 두었다 씻어 먹는 묵은지로 딱 좋은 김치도 있습니다. 양념이 잔뜩 발린 채 맛있는 김치도 인기가 있지만, 맛이 잘 든 묵은지도 못지않은 사랑을 받습니다. 세상은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합니다. 무익한 존재로 버려지지 않고, 쓸모를 다 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결국 먹는 자의 입을 즐겁게 했고 뱃속을 편하게 했으면, 그를 위한 양분으로 삶을 마무리했다면 잘한 것입니다. 그러니 묵은지는 이제 자유롭고 행복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MIRAEBA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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