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푸드 에세이] 내 마음을 먹여 살리는 밥
넌 나에게 만족감을 줬어
저는 되도록 시들고 상해서 버리는 음식을 만들지 않고, 가급적 신선한 음식을 먹고자 하루 이틀 먹을 만큼만 장을 보는 습관을 가진 미니멀리스트입니다. 그럼에도, 제 안의 미니멀리즘을 거뜬히 억누르고 소비욕구를 최대로 이끌어 내는 파워를 가진, 충분히 꽉꽉 채워 놔야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단연 1등은 계란입니다. 식구 모두가 아침 식사로 밥반찬으로 계란을 좋아해서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아이템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장에 갈 때마다 12 알 들이 한 통씩 매번 챙겨 사 오는 편입니다.
내가 원하는 용도에 맞게 갖가지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한 계란은 여기저기에 필요한 대로 끼워 넣어 활용하기에 정말 유용한 식재료입니다. 알 모양을 자랑하며 입체감을 유지할 수도, 납작하게 바닥에 누워버릴 수도, 부드럽게 부풀려지거나 가루처럼 흩어질 수도, 반죽에 섞여 들어가 다른 재료들과 하나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계란의 변신 능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냥 프라이팬에 터뜨려 익히기만 하는 것도 '음식 하기'의 범주에 넣어준다면, 제가 태어나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 본 음식은 '계란 후라이'였습니다. 계란 후라이가 처음 만들어 본 음식인 사람들이 아마도 저 하나가 아닐 거라 쉽게 예상됩니다. 엄마가 없을 때를 대비할, 최소 기술 최단순 조리로, 단백질 영양소 골고루 섭취하며 건강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최대 효율을 가진 음식이 계란 후라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엄마는 부엌에 발도 들여 놓기 싫어하는 나에게 딱 한 가지 계란 후라이 만드는 방법만은 확실하게 전수시켜 주셨습니다. 집을 떠나 서울에서 하숙생활을 할 때도 계란 후라이는 각자 직접 해 먹어야 했기 때문에, 매일 아침 계란 후라이 연습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실컷 해보았습니다.
밥통에 밥을 퍼서 계란 후라이를 얹어 김치하고만 먹어도 대충 5대 영양소는 다 섭취하는 셈이지요. 이 조합에 질리는 날에도, 계란 후라이만 할 줄 알면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가짓수가 꽤 됩니다. 계란 후라이를 하다가, 프라이팬에 밥 한 공기와 파를 넣고 마구 볶아 소금 간만 해주면 '계란볶음밥'이 되고, 계란 후라이를 얹은 밥에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적당히 넣어 팍팍 비벼주면 바쁜 뉴요커들이 관심을 보이는 인기 한식이라는 '계란간장밥'이 됩니다. 계란 후라이에 고추장 참기름만 넣고 비벼 먹어도 얼마나 맛있게요. 바쁠 때는 계란 후라이를 빵 사이에 넣고 먹는 계란후라이 샌드위치도 매우 요긴한 메뉴입니다. 여기에 치즈와 햄까지 추가한다면, 미국 브런치 식당에 내놓고 팔아도 손색없는 브랙퍼스트 샌드위치가 되니, 계란만 있으면 혼밥러의 한 끼 식사 걱정은 뚝입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이 인생 난제의 답을 저는 저의 아들에게 배웠습니다. 이 문제의 답을 저에게 말해주던 당시 아들의 나이는 4-5세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당연히 답은 닭이 먼저지. 엄마가 없으면 아기는 죽으니까.
듣고 보니 너무 당연한 것을, 왜 어른들은 창조론이니 진화론이니 온갖 가설에, 몇 천년을 대단한 학자들이 토론하고 난리 쳐도 못 풀고 난제라고 골머리를 싸고 있었을까요.
'엄마'는 아기를 살리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엄마의 지상 최대 사명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엄마가 없었다면 전 인류는 이미 죽었습니다. 사람 하나를 살리고 성장시키는데 엄마가 주는 '맘마'가 절대적으로 큰 역할을 합니다. 제가 아무리 요리를 싫어하고 부엌을 기피해도 아기를 살리지 않는 엄마는 될 수 없었습니다. 음식은 생명을 연장하는 주요 수단이며, 이 생명을 아이에게 공급하지 않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패륜 악행이니까요.
요리에 자신 없는 엄마지만 계란만 믿고 나아갔습니다. 계란만 있으면 아이에게 완벽한 영양소를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다 보니, 계란 후라이를 넘어서서 계란찜, 계란국, 오므라이스, 계란말이까지 척척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각종 음식에 계란을 숨겨 욱여넣는 갖가지 방법도 익혔습니다. 오물오물 아이들 입에 이 영양소 가득한 계란이 들어가는 걸 보는 일은 엄마로서 큰 기쁨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계란
집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음식 해 먹는 일에 자신이 없다면, 옛날의 저처럼 계란 후라이로 시작을 해보기 바랍니다. 계란 몇 개를 낭비하더라도, 거듭 계란 깨는 연습을 해 보세요. 될 때까지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답니다.
힘들고 고된 하루를 보낸 나 자신에게 계란 후라이 한 가지만 잘 대접해도 든든하게 좋은 음식 먹은 느낌으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열이 나고 아파서 힘든 나에게 계란죽 한 그릇만 끓여주어도 고영양 환자식을 대접해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계란 볶음밥 한 그릇만 맛있게 만들어 주어도 인심 좋고 음식 할 줄 아는 매력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계란은 비교적 해 먹기 쉬운 음식이면서도 인스턴트 제조품이 아닌 건강한 자연식품, 영양소 가득한 완전식품이라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형편이 빠듯해져 먹고 싶은 음식을 다 살 수 없을 때에도, 계란만큼은 꼭 챙겨야 할 필수템이라고 저는 제 아이들에게도 누누이 말해줍니다. 계란은 나와 너를 살리고 건강하게 돌보는 사랑이니까요. 매일 계란으로 싱싱한 생명을 공급받는 우리, 언제나 삶은 계란의 연속이지요.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JillWelling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