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오랫동안 '삐삐'- 스웨덴 동화 작가 Astrid Lindgren의 책 <삐삐 롱스타킹>의 주인공 소녀 - 를 진심으로 부러워했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어른들이 말하는 '상팔자' 그 자체였다. 간섭하는 부모는 없는데, 커다란 저택을 소유하고 거기에 더해 매년 금화가 쏟아져 들어온다. 아웅다웅할 형제자매는 없어도,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아껴주고 매일 함께 놀아주는 친구들과 반려 동물들이 있다. 외딴집에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지 싶은데, 어른 누구와 맞짱 떠도 밀리지 않는 괴력을 가진 삐삐. 주인 사랑받는 개팔자보다, 사건 사고 없는 무자식보다 더 대단한 상팔자가 바로 삐삐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상에 어떤 사람이 가장 부러운가 배틀이 벌어지면, 결론은 이 삐삐처럼 혹은 재벌가 후손들처럼 부자 부모 만나 마음대로 펑펑 쓰고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삶이 압도적인 1위를 한다. 이 배틀 결과가 나에겐 어른들이 '상팔자' 부럽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필요 없고, 이미 내 필요는 넘치게 충족되어 있고, 앞으로도 맘 편하게 돈 걱정 전혀 없이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유유자적 친구들과 재밌게 노는 팔자가 젤 부러운 팔자라는 이야기 같다.
한때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 '사서도 해야 할 젊은 날의 고생', '국가와 회사를 위해 이 한 몸 다 바쳐 충성', '성실, 근면' 같은 열심히 땀 흘려 일할 것을 종용하는 윤리 명제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지금은 일을 위한 희생적 노력을 신성시하는 옛 명제들이 한층 힘을 잃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근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일과 성공 사이 불충분한 인과 관계가 여실히 증명되어 허무를 낳았기 때문이며, 오히려 일에 인생을 다 뺏긴 이들의 비참한 말로만 수없이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질문들을 한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일이 꼭 필요한가? 일을 안 해도 돈만 충분히 있다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가? 사람에게 일이 어느 정도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일을 어느 정도 하는 것이 가장 적정한가. 사람들이 일에 큰 시간을 뺏기지 않고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최소한의 일로 최대한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반적 정의에 따라, 일이 '생계(생존)를 위한 필수적인 인간 활동'이라 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시대에 일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버는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인생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시간 - 미성년기와 은퇴 후 노년기 - 가 너무 길기 때문에, 미성년 자녀와 부모를 부양하며 나 자신의 현재와 미래 노후까지 책임지고 준비해야 하는 중년기의 경제적 책임이 너무나 크고 무겁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학 기술 발달로 노년기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현실도, 노후 준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증폭시킨다.
게다가 세상은 늘 변화하고, 기술 발전이 끊임없이 급속도로 일어난다.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 내가 가진 업무 능력이 가진 경제 가치가 하루아침에 쓸려 나갈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회사가 망해서 나도 따라 그만두어야 할 수 있고,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없어 공급로가 봉쇄될 수도 있다. 그런 변화 위기 상황을 대비해 항상 새로운 기술 능력을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현실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처해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 인간이다.
사람은 감정과 자신만의 고집 아집이 있는 존재라, 나를 세상 변화에 맞추어 변형시키고 싶지 않다. 늘 하던 일, 내가 쉽게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에 머무르고 싶다. 나만 해도 생계 걱정 없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영감이 떠오르는 곳에서 몇 달씩 머물며 글만 쓰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곤 한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이 다르고 가고 싶은 장소가 다를 뿐,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모두가, 돈걱정 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 하며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럴 수 있는 팔자가 바로 '상팔자' 이상향인 게 아닐까. 그런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인생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건 몹시 자연스럽고 당연한 심리 현상이다.
다만 나는 더 이상 '삐삐 상팔자'를 부러워하기가 지겹다. '상팔자'를 부러워하는 이 당연한 심리 끝에 미끄러져 빠지기 쉬운 구덩이 함정이 있다는 불쾌한 느낌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삐삐 인생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이고, 마음에 허무와 고통만을 남기는 낭설일 뿐이다. '열심히 몸 바쳐 일하라'를 의심하는 같은 강도로 '남의 상팔자'도 의심해야 한다. 누굴 '상'팔자로 만들면, 내 팔자는 곧장 '하'팔자가 된다. 결국 '상팔자'라는 말은 내 삶과 다른 이상적인 급을 굳이 만들어, 내 인생을 낮추고 고통을 주는 거짓말이 아닐까. 상하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오류이며, 실제 이상적인 상팔자를 사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맹점도 있다. 우선 '삐삐'는 동화 속 인물이고, 사람들이 부럽다고 하는 재벌 2세 3세들, 부동산 부자 주식 부자들이 정말 돈 걱정 안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맘 편히 살아가는지 증명된 바 없다.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돈이 더 많고 마음도 더 편하고 행복한 것 같아라고 생각이 든다 해도,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 없는 가설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상팔자'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며, 상팔자를 따로 두고 나를 하팔자 범주로 분류해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쓸데없이 비하하는 거짓 오류라 정리하겠다.
'상팔자'를 잠시 치워 놓고, 내가 바라는 보다 현실적인 일을 다시 그려 보자. 내가 끊임없이 그 일 안에서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일. 이 시대 수요 흐름과 맞는 일이라서 불안감이 들지 않는 일. 나의 아이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그들을 잘 돕고 있다는 보람이 인생의 의미를 주는 일.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를 충분히 제공해 주는 일. 나는 그런 일을 추구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려보는 이 과정에서 확실히 나는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내 통장에 엄청난 액수의 돈이 들어 있다 해도,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성장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 삶이 사회를 돕는데 기여할 수도 없다면 나는 그런 종류의 '상팔자'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돈이 없어 봐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큰 자산을 소유한 아버지를 등에 업은 딸로 살았던 적이 있고, 그 시절 우리 집안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큰 재산가의 재물에 기생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탐욕 전쟁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더 많은 '기생충'들이 달라붙으려는 걸 경계하고 떼어내기에 바쁜 불안하고 불쾌한 나날들이 이어질 뿐이었다.
주변과의 경쟁 스트레스 없이, 어린아이처럼 늘 천진난만하게 살아가는 '부자 상팔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실체를 모르는 이 허상과 나는 이쯤에서 깨끗이 헤어지려 한다. 조상이 다 만들어 놓은 자산의 틀에 나를 구겨 넣어 기생하겠다는 '상팔자'라는 이 모호한 덩어리를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넣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는 내 삶을 마음대로 상하로 분류하는 외부 기준을 허락지 않을 결심이다.
결국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원하는 삶을 개척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이 개척해 놓은 형태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일은 내 삶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도구다.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그 삶을 위해 어떤 도구를 만들어 어떻게 사용할지 내가 정해 나아간다. 내 라이프 스타일, 내 시간 내 공간을 내가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데 인생의 큰 기쁨과 설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짓는데 큰 역할을 하는 '일'이라는 도구를 탄탄히 부지런히 재정비하되, 일에만 빠져 인생의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잊어도 안된다. 심신의 건강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내 안의 예술가가 그리는 돈 안 되는 그림도 중요하다. 이런 요소들은 인생이라는 마차의 수레바퀴 같은 것이고, 일은 그 마차를 끄는 말과 같은 존재다. 인생의 중요한 요소들 사이 균형을 잘 잡고, 잘 돌보고 관리하며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진짜 삶, 그건 바로 '거저먹는 상팔자' 아이의 삶이 아닌 '독립하고 개척하는, 나아가 좋은 가치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어른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