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끄러워하는 '평범'한 욕망

[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by 하트온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수많은 한국인들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상적인 삶'을 당당히 드러내고 꿈꿀 때, 한국인은 소박하게도 자신의 이상 속에 '평범'을 넣어 버무린다. 내 주제에 많이 바라지 않을 테니,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불편함 없이, 꿀리지 않게만 살아가게 해줍쇼, 돈 걱정 끼니 걱정 없이, 가족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만 살아가게 해줍쇼, 내 정말 다 내려놓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만 바라겠소,.......


큰 부자는 아니어도 좋으니, 행복과 안전을 느낄 수 있을 만큼만은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안락하게, 남 앞에서 수치심에 주눅 들지 않고 떳떳한 기분을 느낄 만큼만 갖출 수 있게 해 달라는 '평범'에 담긴 염원은 몹시 간절하다. 이 간절한 바람은 '중간은 가야 한다'는 말과 비슷한 곳에서 태어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마라, 몸 사려라'라는 말을 들으면서 다듬어진, 잘 살긴 잘 살되 남의 눈에 거슬릴 정도로 바라지는 않은 내 주제와 서열을 잘 파악하는 집단주의적 이상이다.


큰 욕심 없이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바짝 낮춘 듯 보이는 이 이상은 이름이 뜻하는 겸허한 뉘앙스와 달리 요구하는 게 이것저것 전통혼례 혼수 수준으로 많다. 적어도 서울에 번듯한 직장과 우리 식구 안락하게 오손도손 살 수 있는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 한 채쯤 있고, 자동차가 적어도 맞벌이하는 어른 수만큼 한 대씩은 있고, 남들 다 가는 평범한 휴가지로 일 년에 한 번쯤 온 가족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이상적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자녀는 한 명으로 만족할 마음도 있다. 대신 공부를 잘하든 뭔가 제 앞가림할 만한 특출 난 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아이도 경쟁 치열한 대한민국 땅에서 적어도 '평범한' 삶은 영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평범'을 바라는 한국인의 간절한 마음과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미국인 또한 머릿속에 이상적인 삶에 대한 그림이 있다. 여러 면에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깨끗하고 편리하고 안전한 동네, 주변 집들과 비슷한 크기의 마당이 있는 예쁜 단독 주택에 손님방까지 갖출 만큼 방 개수 화장실 개수가 넉넉하면 좋겠고, 가급적 타인의 간섭 없이 사생활 보호가 잘 되면 좋겠다. 남들이 좋은 차라고 인정할 만한 자동차가 가족 수 대로 필요하다. 두세 명의 건강한 아이들, 그리고 비슷한 수의 애완동물이 있는 것이 좋겠고. 이왕이면 수준 맞는 사람들끼리 애들 놀리며 밤엔 어른 술 파티하며 재미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숲 속이나 바닷가에 잘 갖춘 별장까지 추가할 수 있으면 더욱 이상적이다.


친구나 주변 사람은 착착 이 그림을 그려가는데, 자신만 낙오되는 느낌이 들 때 미국인들도 마음이 씁쓸해 견디기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오랫동안 전쟁 혹은 찢어지는 가난 같은 고난이 없었던 역사 덕분에 대부분 고이고이 편리를 충분히 누리며 큰 요즘 미국인은, 내가 원할 때 당장 가질 수 없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고, 인생이 종종 불러들이는 좌절감 실패감을 참지 못한다. 어떻게든 이상적인 그림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를 돈의 노예 물질의 노예로 몰아가고, 어떻게라도 당장 행복해야겠는 급한 마음이 약물에 영혼을 급히 팔아버리기도 한다.


한국인의 이상과 미국인의 이상이 그리는 구체적인 그림 모양은 다르지만, 둘 다 실제 하지 않은 것을 꿈꾸는 자기 파괴적인 이상이다. 양쪽 다 이상적 그림에 도달하지 못하는 삶이 수치스러운 완벽주의 강박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은 누가 그린 걸까? 그 그림은 미디어와 문화가 공동작업으로 만들어 낸 '보통 라이프' 판타지다. 한국에 살 때와 미국으로 이주해 온 후 내 머릿속에 이상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 판타지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꼼꼼히 이 이상을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다름 아닌, 이 이상은 티브이, 영화,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의 차이였다. 한국의 경우는 드라마나 영화에 평범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가족이 아파트에 사는 장면이 주로 나오고,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평범한 가족은 대부분 아담하고 예쁜 싱글 하우스에 살고 있다.


미디어 속 장면들은 금세 우리의 모델이 되고, 그것을 욕망하게 만든다. 모두가 시청하는 인기 티브이 프로를 보면서, 저 주인공들이 사는 삶이 평범한 삶의 기준선이고 저 정도는 나도 반드시 갖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정도 가져야만 '평범'이라는 보편적 기준에 힘입어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상은 좀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고, 이상과 내 현실을 비교하며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수치심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수렁에 빠져들 뿐이다.


미디어, 잡지, 각종 광고판, SNS 가 쏟아 내는 미남 미녀의 외모가 우리의 모델이 되고 닮고 싶은 욕망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이상에 대한 욕망은 너도 나도 성형외과에 달려가게 만든다. 저런 모습이어야 호감을 얻고 사랑받고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트렌드는 자꾸 바뀌고, 이상적 외모엔 좀처럼 도달할 수 없다. 인기 연예인 모델의 외모와 내 외모를 비교하며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절망을 쉼 없이 느끼며 살아간다. 외모, 형편,...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같은 맥락의 이상적 기준이 우리를 쥐고 흔들고 있다.


이상을 품고 사는 완벽주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 이상이란 실제 하지 않는 거짓말이며, 그 안에 행복은 없다. 연기자들은 다정하고 행복한 척 연기를 했을 뿐이다. 광고 속 모델들은 욕망을 부르는 이미지 창조를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와 운동에 메이컵과 거기에 더해 수많은 보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상적인 이미지 제작 활동에 참여했을 뿐, 거기 출연한 배우와 모델들조차도 이상을 이룬 것이 아니다. 물질과 외모를 남보다 많이 가졌다고, 이상적인 행복한 삶을 살지 않는다. 이상이란, 거의 다 이르렀나 싶으면, 약 올리듯 더욱 높이 뛰어올라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허상의 속성을 가진 것이니까.


결국 남이 정해주는 기준이란 허상일 뿐이다. 그러니 평범이란 없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무엇 때문에 고통에 빠질 이유가 없다. 미디어가 그리는 '평범'이라는 그림과 다르다고 내 삶의 모습을, 내 몸이 생긴 모습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그 이상에 내 목을 걸고 열망하며 따라다녀서는 더더욱 안된다. 결코 그럴 필요도 가치도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살아가 건, 나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내가 나를 굳게 믿어 주는 마음 거기에 행복이 돋아나는 것이다. 겨우 싹튼 현실 행복을 온 마음 다해 - 이상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 잘 돌보고 키워주어야 실제 하는 행복이 커져가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내 삶의 모습, 이 실체만이 진짜다. 내가 만드는 내 삶의 기준, 내 소신만이 내 삶을 맡길만한 진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될 수 있다, 그리 되어야만 한다. 결코 남의 손에 그 결정권을 쥐어 주지 말자. 나 정도 살면, 모든 역경과 곤란을 헤치고 독보적으로 충분히 멋있게 잘 사는 거라는 걸 항상 믿자. 나 같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으니, 그냥 나답게 내 속도대로 사는 삶을, 세계 최초 유일 무이한 특별한 삶이라고 자랑스러워 하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범' 따위 개나 물어가라고 던져 주고, 나의 개성을 믿어주고 인정할 용기 한 스푼 정도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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