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어릴 때 야단맞을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어른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남사스럽다', '남들이 욕한다'였다. 몹시 기이하고 이상한 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특히, 밖에서 너무 신나게 놀다 옷을 더럽히거나, 머리가 산발이 되어 외모가 흐트러질 때 그런 말을 더욱 많이 들었다. 거듭 내 머리 위로 쏟아진 이 말이 나의 내면에 그린 '남'이라는 존재는 도처에서 나를 관찰하며 내 모든 흠을 지적해 내고 잘잘못을 가리는 '신', 언제나 나를 조롱하고 업신여길 준비가 된 '악신'처럼 느껴졌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수도 없이 듣던 말은 '쪽팔린다'였다. 왜 이런 말을 할까. 쪽팔린다는 게 무슨 뜻일까 어린 마음에 한참을 고민하고 뜻을 가늠해 보려 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선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이 어른들의 '남사스럽다'는 말과 결국 같은 말이라는 걸 나는 한참 나중에야 깨달았다.
나는 이 모든 말에서 '부끄러워 죽겠다'는 극도로 강렬한 수치심을 느낀다. 뭐가 그렇게 매일 실시간으로 남사스럽고 쪽팔렸던 걸까.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길래, 그렇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수치스럽다' 외치며 살아갔던 것일까. 그 시대 유행어였을 뿐인데 내가 과도하게 반응했던 걸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그 메시지를 하루 종일 들으며 자란 셈이다. 그 끈질기고 찐득한 '수치심'은 나의 내면 깊숙이까지 흘러들어왔고, 지금도 '남'의 호의를 잘 믿지 못하고, 남의 시선이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사생활 보호를 중요시하는 성향이 자리 잡은 데는 내 어린 시절 언어 환경과 상관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 시절 주변 사람들이 느꼈던 수치심에 대해 나는 오래도록 생각해 보았고 이렇게 결론 내렸다;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은 체면 문화 속에서 내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 관리에 실패하는 순간마다 수치심을 느꼈던 게 아닐까 하고. 나뿐 아니라 내 배우자, 내가 관리하는 내 자식까지도 예쁘고 똑똑하고 단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자녀가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할 때 남사스러웠던 게 아닐까. 저 애들 엄마는 애들 관리를 왜 저리 허술하게 할까, 엄마의 살림 능력 자녀 양육 능력을 의심받고 저평가당할까 봐 두려웠던 게 아닐까. 전 국민이 남의 시선에 그렇게 부들부들 떨 만큼, 그 사회가 쉽사리 상대를 헐뜯고 잔인한 편견을 쉽게 품는 사회였던 건지도 모른다.
한층 더 윗세대로 올라가서, 할머니가 항상 상놈 양반 따지던걸 생각하면, 사람들은 배움 부족한 상놈 집안처럼 보이기보다 양반 교육 제대로 받은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랬으려나 싶기도 하다. 인간을 두 부류로 갈라 서열을 나누고, 그 시대 사회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상류가 아닌 하류의 사람들로 간주하고 차별했다면, 그런 취급을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면, 남사스럽지 않게 상류의 교양을 갖추고 그 집단 분위기에 맞게 외모를 꾸미는 등의 일이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었을지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수치심이 아이들에게까지 내려가, 아이들도 굳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 없는 순간에 남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다수의 시선이 몰리는 상황을 당하면 수치심이 몰려와 쪽팔린다고 아우성이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그 쪽팔림을 다 감당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때 그 아이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이렇게 구축했는지 모른다. 수치심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형태로, 혼신을 다해 이 도시를 건설하는 일을 주도하였는지 모른다. 이웃 시선이 고향집 낮은 담장 너머로 던지는 수치심 폭격이 부담스러웠기에, 높디높은 담을 세웠는지 모른다. 익명의 존재로 쪽팔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이웃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단단하고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사방을 막는 아파트 밀림을 건설하고, 그 한가운데 나만의 작은 직육면체 성곽 속에 숨어들어, 커튼을 닫아 놓은 채로, 작은 SNS 구멍만 뚫어놓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삶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내 부모 세대 어른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면, 이 분들은 아직도 순간순간 남사스러운 수치심의 폭격에 마음을 잠식당한다는 느낌이 들고, 그 느낌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뭐가 그렇게 '남 시선'이라는 기준에 차지 않고, 뭘 더 바라는 걸까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윗세대 머릿속 그림을 내가 완성시켜 줄 수는 없다. 진작에 포기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분명히 안다.
이제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때가 되었다. 양반 상놈 따지는 조선시대 고리짝 기준도, 남의 시선 힘이 여전히 강렬하던 부모세대 기준도 다 이제는 실체 없이 흐물흐물 흩어져 가는 퀘퀘묵은 외부 기준이다. 이런 낡은 외부기준이라도 부모가 그 기준에 힘을 실어주고 집안으로까지 들여오면, 아이는 그 뿌연 안개처럼 모호하게 시선을 가리고, 불쾌하게 따끔거리는 기준에 고통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부모가 남의 시선이 만드는 수치심을 끊어내지 못하고 내면 구석구석까지 잠식당한 상태라면,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그 집을 빠져나와 자신만의 세상을 다시 건설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허상 기준을 끊어내고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스스로를 강하게 키워내는 수밖에 자신을 구할 길이 없다. 이리저리 외부에서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고통을 멈추려면, 한 사람이라도 단단한 무엇을 붙잡아야 삶을 회복시키고 안정시킬 수 있다.
내가 바로 그 아이였다. 혼자 일어서서 자신의 내면을 강하게 키워가야 했던 그 아이, 고통에서 스스로 헤쳐 나와 내 집을 따로 지어야 했던 아이였다. 그 수치심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남사스럽다, 쪽팔린다라는 말을 떠나, 새로운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불어넣어 주어야 했다: 나는 남사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모든 행동은 긍정적 해석과 부정적 해석이 가능한데, 나의 부모와 내 주변 사람들이 외부 기준에 흔들리며 부정적 해석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들의 부정적 해석에 고통스러워하기보다, 내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내면 된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건, 나는 나를 다르게 재평가 재발견해주고 빛나게 해 주면 된다. 나 스스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 된다. 나는 '남사스럽다, 쪽팔린다'라는 언어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자녀에게 내가 물려받은 수치심 대신 내가 찾은 자기 소신을 키우는 삶을 전수할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하는 부모가 되기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