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글쓰기를 배운다

[글쓰기 에세이] 글을 낳고 기르며 살아갑니다

by 하트온

좋은 양육자가 되기 위한 공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다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다 저절로 아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산모들이 아이를 낳기 전부터 모유수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유는 어떤 제품을 골라 어떻게 만들고, 어떤 온도에서 데워야 하는지, 아기 목욕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육아를 보다 쉽게 하도록 돕는 장비들이 있는지, 아이가 어떤 발달 과정을 거치는지, 언제 어떤 장난감을 사 주고, 어떤 놀이를 하면 좋은지 시중 베스트셀러 육아서를 구매해서 공부를 한다. 그렇게 하고도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모르는 게 어찌나 많은지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유모차나 아기 침대 하나 장만하는 일도 엄청난 사전 조사와 발품을 필요로 하는 막중한 일이다. 아이를 처음 낳아 기르는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과 교육에 관해 배워야 할 학습 분량이 산 넘어 산인 상황에 처한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나도 부모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이제 자아 개념까지 생긴 아이가 감정 조절력과 바른 윤리관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고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나가야 한다. 부모가 감당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 양육 교육 기술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르쳐야 할 것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좋은 양육자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 책을 읽고, 선배 부모들이 열어주는 부모 수업을 들으며 주변 모든 지식을 흡수하고 실천하며 자식을 키우는 기술을 연마해 내야 한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


하루아침에 '부모'를 완성할 수 없는 것처럼, 글쓰기 또한 단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생겼다고, 책 한 권 출간했다고 글쓰기를 통달한 게 아니다. 배우고 실천하고 때론 실패하며 지혜롭고 성숙한 양육자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처럼, 작가도 부지런히 배우고 거듭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노력을 통해 훌륭한 작가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Leonardo da Vinci)가 87세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Ancora imparo, Yet, I'm learning.)


미켈란젤로는 88세에 사망했다. 이 말은 그가 살아생전 자신의 예술 추구 과정에 대해 언급한 마지막 말이자, 이 세상 모든 예술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는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마치 자신의 예술이 결코 완성이 아니라고 극도의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완벽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떠올려 볼 때, 이는 지나친 겸손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의 나이 87세에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겸손에 불과했을까. 그는 끝없이 배우며 완성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예술가임을, 배우는 과정이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관건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이란 완성품이 아니라, 배움과 성장을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0세기 뛰어난 미국 작가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또한 작가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모든 성취는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우겠다는 겸손한 태도와 욕구를 필요로 한다.(Every achievement requires a humble attitude and a desire to always learn what can be learned.)


헤밍웨이에게 이 말은 자신의 마음에 몸에 새긴 태도였다. 평생 그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선택했다. 작품에 현실 경험을 반영할 수 있기 위해 스페인 내전 현장을 직접 보고자 전쟁 기자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였으며, 미국 태생이었음에도 당시 문학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상실 세대(lost generation)' 작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자신을 문학적으로 한층 성장시켰다.


헤밍웨이의 자서전인 <움직이는 향연 (A Moveable Feast)>와 그가 친구 작가 동료들과 주고받은 긴 편지 및 일기 같은 자료를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열심히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하고, 자신의 문학 접근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끝없이 논의하고 노력한 작가였는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배우기를 멈추고 뽐내기, 장사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글쓰기는 정체된다. 배움을 잃은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일 수 없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이 교만과 눈앞의 이익이라는 '정체의 덫'에 걸려드는 걸 본다. 정체란 내려가는 길이다. 성장하고 나아가지 않으면 미끄러져 내려가는 일만 남아 있는 수순이 '정체의 속성'이다.


내가 이미 완성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착각에 빠진 것이다. 팔근육 하나를 키우는데도 삼각근, 이두근, 삼두근, 전완근 여러 가지가 있고, 각각을 키우는 방법이 다 다르고, 잠시라도 연마를 게을리하면 빛의 속도로 근육은 빠져나간다.


글쓰기 근육도 마찬가지다. 작가 근력, 즉 필력을 이루는 요소는, 주제 선택 능력부터, 문단 구성 능력, 문장력, 표현력, 책을 기획하고 완성하는 능력까지 근육의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각 근육을 키우는 방법도 다양하다. 게다가 필력을 전수해 주는 사람이나 교육 기관이 따로 없으니, 스스로 알아서 연구 공부하고 실력을 키워갈 길, 끝없이 멈추지 않고 연마하고 유지할 길을 자신이 찾아내야만 한다. 따라서 글쓰기는 결코 완성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배움의 과정일 수 밖에 없다.



나의 끝없는 글쓰기 공부


나는 아직 내 글쓰기 공부법을 자랑할 만한 '위대한' 작가도 '유명' 작가도 결코 아니다. 따라서, 자랑할 무엇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글쓰기 근력 연마, 배움 성장이 끝없이 일어나게 삶을 꾸린 한 개인의 성장 스토리로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글쓰기를 끝없이 배우기 위해 '끝없이 가르치기'를 선택했다. 나는 초중고생 - 영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는 비영어권 ESOL 학생 - 대상으로 영어 에세이 쓰는 법을 비롯한 영어 전 영역을 지도하는 교사다. 한국어 능력이 영어로 다 전이되는 언어의 연결성 덕분에, 나의 한국어 글쓰기 능력은 영어 에세이 지도 기술로 쉽게 이어질 수 있었다.


미국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에세이 종류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자기 관점 에세이 (narrative essay)

- 허구적 에세이 (fictional essay)

- 묘사적 에세이 (descriptive essay)

- 설명적 에세이 (expository essay)

- 논쟁적 에세이 (argumentative essay)


다양한 에세이 쓰기를 학생들에게 거듭 반복해서 가르치면서, 나는 수필과 소설, 논픽션 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쓰는지,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지는 글은 어떻게 쓰는지, 강한 설득력을 가진 글은 어떻게 쓰는지를 역으로 배우고 훈련받고 있다. 영어 에세이 지도를 하며 새삼 깨닫게 되는 좋은 글쓰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이 내 글에 좋은 자양분이 되는 걸 느낀다.


영어라는 언어 속에서 일어나는 성장 발달이 모두 나의 한국어 실력으로 다시 전환된다. 다양한 영어 어휘를 매일 늘려가는 지식이 한국어 실력이 되고,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국어 다운 문장으로 다듬는 과정이 나의 문장력을 키운다. 아이들 지도를 위해, 거듭 샘플 문장과 문단을 써 주는 일이 나에게는 효과적인 작문 훈련이 되고, 수많은 에세이 교정을 담당하면서 좋은 에세이에 대한 감을 익히고 서론부터 결론까지 효과적으로 문단을 구성하는 능력을 키워간다.


원래 공학 연구 전공이었지만, 어느 절박했던 순간 나는 내 삶에 글쓰기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도구임을 깨달았고, 내 삶의 모든 것이 글쓰기를 돕고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도록 다시 재정비하고 설계해 왔다. 마침내 내 삶은 글쓰기를 배우고, 배운 것을 가르치고, 가르치며 다시 익히고, 익힌 것을 내 글에 적용하고, 글쓰기로 시작해서 글쓰기로 끝나는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다. 내 일상은 끝없는 글쓰기 배움터 성장터다. 이런 일상으로 이루어진 내 삶은 끝없이 글을 낳고 기르는 '글 양육'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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