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양육서] 전문가 도움 없이 하는 자기 마음 치유법
나를 정의하는 경계선
며칠 후 어느 저녁 서점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 자아가 현주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헨리 클라우드와 존 타운샌드가 쓴 <바운더리 (Boundries)>라는 책이었다. 바운더리는 한국어로 '경계선'이라고 했다.
경계선은 우리를 정의한다. 경계선은 나 자신인 것과 나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 짓는다. 경계선은 나 자신이 어디서 끝나고 다른 사람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보여주며, 내 소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려준다. 내가 소유하고 책임져야 할 영역을 분명히 아는 것은 내게 자유를 준다. 자기 삶을 책임지는 사람 앞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있다. 경계선은 내 삶에 좋은 것을 지키고 나쁜 것을 축출하도록 도움을 준다. 경계를 설정하는 일은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는 불가피한 몫까지 포함한다. 당신이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이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행복해질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당신 자신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사고를 책임지고 왜곡된 사고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만 한다. (Boundaries define us. They define what is me and what is not me. A boundary shows me where i end and someone else begins, leading me to a sense of ownership. Knowing what I am to own and take responsibility for gives me freedom. Taking responsibility for my life opens up many different options. Boundaries help us keep the good in and the bad out. Setting boundaries inevitably involves taking responsibility for your choices. You are the one who makes them. You are the one who must live with their consequences. And you are the one who may be keeping yourself from making the choices you could be happy with. We must own our own thoughts and clarify distorted thinking.)
현주는 신기하고 새로운 개념을 담은 이 책이 마치 자신을 지킬 호신용 스프레이라도 되는 양 꼭 품고 한 단어 한 단어 꼭꼭 씹어가며 3일 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은, 사람 몸에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넘어 침범하면 폭행과 학대가 되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영역에도 선이 있어서, 이 경계를 넘어 침범당하면 사람이 고통스러워진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어쩌면 현주의 문제를 이렇게 잘 설명한 책이 있을까!
호구의 책임
현주는 지난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자식의 돈이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고 생활비를 달라고 했던 아버지, 부하직원의 여유 시간까지 자신의 소유라 생각해, 수시로 야근하게 만들던 상사의 명령들, 내가 저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이유로 갚을 마음 없이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버릇처럼 하던 친구, 밤늦게 술 먹고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전 남친, 자신이 어려 보이는 여자라는 이유로 존중을 빼고 편하게 뭐든 시켜 먹을 대상으로 여기던 수많은 더 늙은 사람들.......
현주는, 그 모든 자신의 '선'을 존중하지 않는 요구에, 자신이 다 묵묵히 응함으로써, 자신 또한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들 편에 서 있었다는 걸 자각했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가장 만만한 스스로를 내팽개치고 그들에게 '소속'과 '우정'을 구걸했던 거였다. 그것만 주면 나를 통제할 힘을 주겠다고 스스로 다 갖다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나에게 죄책감을 '준다'라고 남 탓을 한다면, 여전히 그 사람 손에 나를 통제할 권한을 쥐어주고 있는 것이며, 그 사람이 그 행동을 멈출 때만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을 통제할 힘을 남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남 탓을 멈추어야 한다. (If you continue to blame other people for “making” you feel guilty, they still have power over you, and you are saying that you will only feel good when they stop doing that. You are giving them control over your life. Stop blaming other people.)
책을 읽어 가면서 현주는 건강한 '경계선 설정'이 자신을 보호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정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는 걸, 바른 경계 설정이 바른 인간 상호작용을 이끌어 간다는 걸 배웠다.
진짜 친밀감은 오직 동의하지 않을 자유가 있을 때만 형성된다. (True intimacy is only build around the freedom to disagree.)
생각해 보면, 자신이 억지로 요구에 응하고 고통스러운 그 강도만큼, 억지 요구를 해오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실은, 자신이 부당한 일을 받아주는 바로 그 순간에, 그들과의 관계는 그 자리에서 이미 산산조각 났다. 차라리 안된다고 거절을 했다면, 그들은 다음부터 더 조심했을 테고, 현주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조심해서 대해줬으면 관계는 더 긍정적으로 이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현주가 싫어하는 마음을 숨기고 응한 것이, 상대를 속이고, 그들에게 두 번 기회조차 주지 않고 상대를 마음에서 '인격장애자 진상', '인간 이하‘로 낙인찍어버린 셈인 거였다.
'선'을 보여주는 사람
현주는 '착한 아이'로 길러진다는 의미는 언제 '예'를 하고 언제 '아니요'를 해야 하는지 판단 능력을 손상당하는 의미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거절할 줄 아는 기능을 거세당한 사람이 바로 '착한 아이'가 자라서 된 '호구'였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착한 아이'와 '호구'를 대신할 새로운 캐릭터를 써넣었다.
진실된 사람, '선'을 보여주는 사람
진심으로 '예' 할 수 있을 때만, 동의하고 응하리라 결심했다. 부당한 요청에 '아니요'라고 말할 용기를 내보리라 마음먹었다. 자신의 의견과 기호를 당당히 밝히고 '선'을 선명히 보여주는 사람으로 성장하자고 스스로에게 굳게 맹세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lubovlisit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