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어린 애가 무슨 관절염이야?”라는 말을 수없이 듣게 만든, 내 나이 9살에 발병한 이 병으로 인해 난 4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심한 통증과 함께 관절이 서서히 굳어가고 변형되는 신체 상태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제는 익숙하게 평생을 함께할 반려병(?)이란 생각까지들지만 어린 날에는 그럴 수 없었던 질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학교 때,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수술의 부작용과 이후 계속된 병의 악화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되고 결국 바퀴가 있는 삶을 살게 된 원인이 바로 이 병, 류마티스 관절염입니다.
<류마티스 둘>
중학교 당시 '나의 별명'이자 근원의 '트라우마 중 하나'입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처음 나라는 ‘사람’을 '류마티스'라고 불렀던 것은 당시 중학교의 학과교사(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교사가 인증한 그 명칭이 하나의 반을 넘어 (다른 몇몇의 교사들을 포함한) 전교생이 부르는 내 별명이 되기까지는 약 세 달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의 나는 엄청나게 숫기 없는 모범생이자 소위 요즘 말하는 찐따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지옥같았던 당시의 상황에서도 한 번 반항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일 겁니다. 무엇보다 이 기억이 제게 트라우마가 된 이유는 당시 사람들에게 류마티스라고 불렸다는 사실보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그 상황을 놔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만만한 찐따는 아니기에 학창시절로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다해 노력하겠지만 그 당시의 나라는 사람은 그저 평범보다 조금 못한 중학생 찐따였을 뿐입니다.
이 기억은 '바퀴가 있는 삶을 살기에 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라는 진실을 본격적으로 바퀴가 있는 삶에 돌입하기 직전에 알게 해준 일종의 체험학습 같은 거였을 거라고 가끔 정신승리하기도 하지만.. 어떤 미사여구를 붙이더라도 결국은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기억입니다.
<류마티스 셋>
아직 '완치할 수 없는 류마티스성 질환', 내 '평생의 악우'.
류마티스성 질환은 자가면역질환이라고도 하며,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대상자의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대상자의 면역체계가 대상자 스스로를 공격해서 발생하는 증상들을 말합니다.
참고로 네이버 생명과학대사전의 류마티스성 질환 항목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이버-생명과학대사전 발췌]
내 스스로 날 괴롭히고 조금씩 파괴해 나가는 병
아직 확실한 치료법도 없으며 원인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병
최고레벨의 통증을 동반하며 평생 관리를 받아야 하는 병
내 지병이자 평생의 악우(惡友)는 그런 녀석입니다.
하지만 그냥 주저 앉아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삶이란 것이니까요.
난 이 녀석과 비교적 원만하게 타협하고 지내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물론 이 녀석은 내게서 걸음을 가져갔고, 한 눈의 시력을 가져갔으며 지금도 가끔 비명도 모자를 정도의 고통을 주거나 온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매번 극적으로 화해도 하고 잘 다독여가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난 류마티스라는 병이 났길 바랐고,
류마티스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길 바랐고,
류마티스라는 악우와의 연을 끊어내길 바랐습니다.
결론은 무엇하나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는 아닙니다.
아마 내가 지킬 박사라면 나를 괴롭히는 류마티스라는 녀석은 아마 하이드씨일 겁니다. 우리는 수십년간 서로 반목하며 지냈고 앞으로도 아주 친해지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서로 미묘한 거리를 두고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겠죠. 그게 내 삶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