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비 내리는 날

바퀴가 있는 삶 ep.8 (by 코리하 라이브)

by 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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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이야기: 눈 비 내리는 날


글: 코하


아침부터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고 아름다워 눈물이 나려 합니다.. 라고 말하던 코하는 이제 없습니다.


현시대의 코하는 내리는 눈 때문에 컨디션이 최악이라 침대 위에서 번데기가 되어있구요. 그에 더해 온 몸이 쿡쿡 쑤시고 아파서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진통제를 먹어야 했어요.


그것 뿐이라면 그럭저럭 참을만 할텐데.. 무엇보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해서 더 답답해요. 월말이라 은행업무도 봐야하고, 반찬거리가 떨어져 장 볼 것도 있었는데 오늘은 다 취소에요. 게으름 같은 게 아니라 '눈이 내리니까.' 하지 않겠다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눈 싫어. 비 싫어. 하늘에서 내리는 건 전부 싫어.', '낭만 개뿔,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쓰레기, 투명한 쓰레기 모두 최악!'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이렇게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비 내리는 날 우산도 쓰지 않고 비 맞으며 가는 것도 좋아했고, 눈 내리는 날 새벽 아무도 걷지 않은 새하얀 거리에 두 줄의 바퀴자국을 남기고 눈을 맞으며 가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렇게 꽤나 낭만적인(?) 편에 속하던 내가 지금은 비도 싫고 눈도 싫고,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것들을 차별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수동휠체어, 전동휠체어는 위험합니다.

수동휠체어의 경우, 내리는 비 때문에 손으로 미는 곳에 꽤나 미끄러워집니다. 그래서 손이 미끄러워서 휠체어의 제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동휠체어의 경우는 수동휠체어 같은 어려움은 없으나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는 엄연히 전기로 가는 물건인지라, 기본적인 방수대책이 있긴 해도 많은 비에 오래 노출되면 답이 없습니다. 내부 전자기기의 고장으로 휠체어가 멈춰버려요. 거기다 양자 모두 도로 노면도 화창한 날의 노면 보다는 훨씬 미끄러지기 쉬운 편이니 그에 따른 사고 위험도 존재하구요.


눈 오는 날의 수동휠체어, 전동휠체어 역시 위험합니다.

비 오는 날과 달리 수동휠체어만의 혹은, 전동휠체어만의 애로사항이 존재한다기 보단, 노면 자체가 평소 혹은 비오는 날과는 비교도 안 되게 미끄러워지기 때문에 매 순간순간 사고위험에 노출 됩니다. 게다가 평소엔 멀쩡하게 다녔던 약한 경사의 도로나 기울어진 보도블럭 같은 곳도 사고위험지역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제어권을 잃은 휠체어는 타고 있는 사람이나 주변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꽤나 심각한 위협이 되곤 합니다.


그 외에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거나 우박이 내리거나 하는 날도 있지만.. 그런 건 맞으면 누구든 골로 가는 거고 누구에게나 위험한 거니까 이 글에선 굳이 다루지 않기로 하구요.


위에서 말한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의 이런 단점들은 물론 휠체어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나 유아차같은 바퀴가 달린 모든 것을 이용하게 되면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휠체어가 다른 바퀴가 달린 탈것들 보다 조금 더 위험할 수 있는 이유는


첫번째로 휠체어라는 물건은 건물의 내부와 외부에서 다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탈것이기에 외부를 다니는데 특화되거나 내부를 다니는데 특화된 다른 바퀴달린 탈 것들과는 달리 어느쪽이든 애매한 지점이 있을 수 밖에 없고 특히 눈과 비가 오는 날 같은 특수한 환경에 취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비나 눈에 대비한 옵션 장비 같은 것도 내외부를 동시에 돌아다녀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장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합니다.


두번째로 그것을 몰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장애인이기에 해당 휠체어에 대한 제어권을 잃어버리면 제어권을 찾을 다른 방법이 대부분 없으며 일반적인 경우보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휠체어가 미끌어지거나 엎어지거나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큰 사고가 될 확률이 높고 자신 혹은 자신과 주변까지 피해를 입힐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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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라는 사람이 대충 겪었던 사건 사고만 해도 비 오는 날 수동휠체어를 밀다가 갑자기 손이 미끄러져 휠체어로 피겨스케이팅의 스핀을 뱅글뱅글 돌다가 휠체어와 함께 구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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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 오는 날 컨트롤 박스가 고장나버린 전동휠체어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구해줄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4시간을 폭우를 맞으며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어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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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엔 휠체어가 눈길에 미끌어지며 휠체어의 제어권을 상실하는 휠체어 무관성 드리프트를 매년 10회 이상 겪고 있기도 합니다.


근데 가끔 이렇게 말하면 다른 분들이 그래요.

그렇게 위험한데 '왜 비나 눈 오는 날 나다니냐'고 말이죠.


물론 그런 날은 저도 나다니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말짱한 날이라(심지어 일기예보조차 하루 종일 맑음) 나갔는데 밖에서 혹은 돌아오는 길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리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위험해 보이는 날이라도 생계가 걸린 일, 혹은 중요한 약속이 있는 상황에 그 일들을 다음으로 미룰 수 없어 위험한 걸 알면서도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일 때문에 회사에서 밤을 세고 집에 돌아가려 하니 바깥세상이 바다왕국이거나 겨울왕국인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고.. 살다보면 너무 다양한 상황이 있어요.

그런 경우는 어쩌겠어요. 내리면 맞아야죠.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내리면 맞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길이 조금 더 평탄한 구조였다면, 길 위에 위험한 장애물이 없다면,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조금은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덧붙여.. 일기예보가 조금만 더 정확하게 변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눈이나 비를 맞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확률도 조금 줄어들텐데.. 그런 생각도 같이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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