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는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어떻게 해야 더 쉽게 할 수 있는가야.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카레밥이 먹고 싶다는 아들의 주문에 마트로 향했다. 감자랑 당근 등 카레에 넣을 재료를 카트에 담고는 카레가루가 있는 코너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즉석식품 판매대를 지나는데 묶음 할인 판매하는 모회사의 3분 카레가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짜장도 교차가 된단다. '그래, 나중에 시간 없을 때 이걸로 해 먹지 뭐'하는 생각에 집어 들고 왔다. 결국 그날 아들은 3분 카레를 나는 3분 짜장을 먹었다. 빨리 달라는 아들의 성화도 한몫했지만 솔직히 귀찮았다. 그러고는 자책한다. 본의 아니게 이런 식으로 쉽고 빠르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씁쓸함과 함께.
요즘은 무언가를 천천히 하는 것이 점점 더 이상하게 여겨진다. 5분 이상 기다리는 건 인내심의 문제가 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일은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한다. 지하철역에서, 식당에서, 인터넷 화면 앞에서 우리는 늘 조급하다. 그 조급함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해졌고, 오히려 느긋함은 경계의 대상을 넘어 경멸에까지 다다르고 있다.
현대인들은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고 평가받는다. 얼마나 노력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많은 수익을 창출했는가가 중요한 사회다. 몇 년을 준비했느냐보다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사회는 우리를 끝없이 '성과'라는 제단에 올려놓는다.
속도만을 좇는 삶은 방향을 잃어 가고 있다. 숏폼 영상, 요약 콘텐츠, 자동 완성된 문장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정보 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우리는 이제 '읽는다'기보다는 '훑는다'에 가깝고, '느낀다'기 보다는 '스친다'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내 모습이 지금 왜 이런지 이해가 간다. 나는 그동안 '더딘 성장' 보다는 '빠른 성공'을 원했다. 나를 변화시키거나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어려운 길'보다는 현재 상태에서 큰 노력 없이 결과를 얻는 '쉬운 길'을 택해 왔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움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요령, 꿀팁, 편법과 같은 인스턴트 방식을 찾아 헤맨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마도 그 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저 쉽게 얼른 해치우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 들 테니까 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무 쉽게 얻어지는 건 가치가 떨어지죠."
깊이보다는 속도를, 본질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지금의 시대에서 나는 진정 가치 있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주말에는 감자랑 당근 손질해서 손수 만든 카레밥을 해 먹어야겠다. 아들에게 내 카레비법도 전수해 주고. 그렇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가 손쉽게 내가 만든 것과 같은 맛으로 카레밥을 먹는 방법.
인용 : 로라 데이브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