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무언가 끌어올리는 일과 닮아 있다. 어떤 날은 가벼운 바람처럼 흘러가지만, 대부분의 날은 무거운 바위를 끌어올리는 시시포스의 하루처럼 느껴진다.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다시 올리고, 또 떨어진다. 그런 반복 속에서 우리는 종종 묻는다. "언제쯤 이 고통은 끝날까?"
하지만 끝은 오지 않는다. 대신 조금씩 변하는 것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뎌진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한 번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누군가 인생은 흐르는 강물 같다고 했다. 조금 전에 발을 담근 강물은 지금의 강물이 아니다. 흘러가고 새로운 물이 밀려온다. 고통도 행복도 같은 것이 다시 오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부조리를 만들어 낸다. 고통은 반복되며 행복은 흘러가 버리는 것처럼 착각한다. 우리가 어떤 순간을 행복하다고 느낄 때, 그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한다.
"아, 이 순간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행복의 순환을 원한다. 이와는 반대로 고통이나 불행이 반복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늘 고통이 반복되고 있으며 그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라는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어감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떤 번역서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라고 번역되어 있다.)고 말한다.
나는 믿는다. 시지프('시시포스'를 카뮈는 '시지프'로 표기했음)는 진정으로 행복했다고.
왜냐하면 그는 반복되는 고통을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번 같은 바위를 밀어 올리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리듬과 호흡을 찾은 사람이기도 하다.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속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놓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아도, 나 자신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고통은 반복된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상처는 여전히 아프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고통도 반복되면 무뎌진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고통은 똑같이 아프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상처도 다시 닥치면 우리는 여전히 무너진다. 단지, 우리가 익숙해지는 건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을 껴안고 사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그 고통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또한 고통이다. 어느 날 문득, 같은 고통 속에서 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걸 알아차릴 때가 있다. 아주 아주 가끔이지만.
행복도 반복된다. 하지만 한 번 느낀 행복은 다시 찾아와도 그 감동을 똑같이 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설레고 벅찼던 순간도 익숙해지면 덤덤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 큰 기쁨을 찾아 나서고 가끔은 처음의 감정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행복은 익숙해질수록 도망치고, 고통은 익숙해져도 남는다.
카뮈가 말하는 시지프는 인간과 조금 다르다.
그는 돌을 굴려 정상에 도달할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 스치는 햇살, 자신의 숨결에서 매번 같은 크기의 기쁨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영원의 고통을 감내하고 형벌을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우리는 자꾸만 더 많은 더 큰 행복을 찾고 바라본다.
삶은 늘 바쁘고 고단하다. 한 달 내내 일하고, 단 하루 월급이 들어온다. 잠깐의 안도는 곧 청구서와 책임으로 바뀌고 다시 일상은 굴러간다. 일하는 날은 줄어들기 바라면서 월급은 늘어나기 바란다. 고통은 길고 행복은 순간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작은 행복에 무뎌진 때문이 아닐까? 퇴근길에 좋아하는 노래, 따뜻한 커피 한 잔, 피곤한 하루 끝에 누군가 건네는 "고생했어요"라는 말.
그 짧고 작은 순간들이 바로 시지프가 정상에서 느끼는 바람과도 같은 것 아닐까?
어쩌면 아주 잠깐, 땀 흘려 정상에 올랐을 때 불어오는 바람, 하늘의 색, 나의 숨소리에서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반짝이는 그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닐까 한다.
나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린다.
언젠가, 그 무거운 하루 사이에 또 한 번 작은 꽃잎 같은 순간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인용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이미지 : 티치아노 베첼리오 [ Sisyphus], 프라도 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