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속에
'언젠가 내 모든 게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인생에 깃든
가장 큰 두려움이 아닐까?
나는 나를 얼마나 숨기고 살아왔을까?
내가 만들어 쓴 가면은 크기가 얼마나 될까? 굳이 가리지 않아도 될 것을 가릴 만큼 크지는 않나?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간혹 호감이 가는 사람이거나 좋은 이미지를 남겨야 할 상대 앞에서는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말투, 표정, 심지어 웃는 타이밍까지 계산하고, 내 부족한 면은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 보다 한 뼘이라도 더 커 보이려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돋보이려고 한다. 때로는 과장이 섞인 허세도 부려보고, 어떤 때는 침묵으로 무게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나의 부족한 면이나 상처, 결핍 등은 가면 뒤로 숨긴 채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가 지속되고 깊어 갈수록 우리는 불안해진다. 이 불안감은 내가 쓴 가면이 벗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온다. 나의 진짜 모습이 들통날까 봐 초조해진다. 내가 불안정하다는 것, 실수를 자주 한다는 것, 때로는 누구보다 외롭고, 질투하고, 초라해질 때가 있다는 걸 누가 알게 될까 봐.
우리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로운 주체가 아닌 타인에 의해 규정된 객체가 된다. 이 시선 앞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규정될까 봐' 생기는 불안은 곧 공포가 된다.
우리의 자아는 사회적 규범에 따라 '보이는 나'를 관리하지만, 무의식은 종종 이 자아의 틈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무언가를 감추려 하고, 동시에 드러나게 될 것에 불안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우리는 가면을 쓴다. 조금 거추장스럽고 답답해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있으니까.
이렇듯 우리는 저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그 가면이 벗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있다. 이 가면은 때로는 나를 보호하지만, 오래되면 진짜 나와의 간극을 점점 벌려 놓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의 실체적인 모습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상대방에게 무시나 거절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동반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마치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역설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취약한 모습이 오히려 진정한 관계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실제로 취약함은 잘못된 상대 앞에서는 무기화될 수도 있고, 사회적 위계나 경쟁의 논리 속에서는 약점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모든 사람에게 진짜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지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정말 소수의 사람들과는 선택적으로, 의식적으로 자신의 본질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보통 '진실을 말하는 것'이 도덕적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선은 아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을 숨기는 경우는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 사랑은 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혼자 견디는 용기에서 비롯되기도 하니까.
문제는 그 침묵이 점점 자기 자신을 잠식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다. 병을 숨기다가 치유의 기회를 놓친다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지 못해 관계에 더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그렇다. 처음에는 배려로 시작했지만 결국 고통의 공명 대신 단절을 낳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사랑은 짐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짐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는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진실을 조심스럽게 시험해 볼 때 비로소 나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진짜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나와 타자에 대한 신뢰의 모험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선택이고, 그 선택이 위험을 동반하더라도 때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걸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가?"가 아니라
"이걸 말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더 진실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자문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다면 진실된 나를 보여줘야 한다. 자존심은 관계의 문을 닫고, 자존감은 문을 열게 만든다. 그리고 관계는 문이 열릴 때 비로소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연약함을 보게 되었을 때, 그가 등을 돌리면 아프겠지만, 그 또한 진짜다.
가면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어쩌다 상대의 가면 너머를 보게 되었을 때 우리의 태도다. 나에게도 가면이 나를 지키는 갑옷이듯 상대에게도 그럴 테니까.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서며 가면을 쓴다. 가끔 집에서 쓸 때도 있지만 주로 집 밖에서 쓴다. 관계의 깊이에 따라 내 가면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신축성 있는 재질로 만든 것을 추천한다.
인용 : 더글라스 케네디 <빅 퀘스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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