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겨울 메모

by 권희대


새벽 1시.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해운대로 찾아간 겨울의 어느 저녁, 해변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혼자 온 사람들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여럿이서 몰려온 사람들처럼 소란스럽게 겨울바다를 맞이해서는 안 된다.


하늘을 나는 모든 새들이 까마귀처럼 보이는 시간, 할머니 한분이 휘적휘적 모래밭을 저어 내게로 다가왔다. 중증장애인이라며 돈을 요구한다. 저녁을 먹지 못했다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이상하게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주머니를 뒤적여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줬다. 가방에 지갑이 있긴 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휴지 같은 지폐가 그녀의 위장을 덮여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노인은 당연한 듯이 돈을 낚아챘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 어디가 장애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속도였다. 내가 주저하던 모습, 할머니의 빠른 손동작. 저문 바다는 저 멀리 수염고래의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떠나갔지만, 겨울밤의 을씨년스러움은 유령처럼 내 옆에 붙어 있었다.


해변에는 아이들이 몰려다녔다. 어디나 그렇듯, 주인 없는 곳에서는 천진난만함이 주인이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쏘아 올리는 폭죽은 밤하늘에 확실한 궤적을 그리며 사라져 갔다. 현란한 잔광들이 어둠의 목을 움켜진 손을 놓으면 어디로 가는지 누구도 묻지 않았다. 잔광이 사라지고 나면 밤하늘은 더 확실하게 어둠의 편이 되었다.


겨울은 여름의 해운대를 기억하고 있을까. 여름을 떠올리자, 벌써부터 시끌벅적한 여름밤의 해운대가 생각난다. 젊은이들이 밤새워 욕망의 크기를 자랑하던 곳. 데워진 엔진을 더 힘차게 가열하던 공장 같던 , 내가 알고 있는 여름의 해운대는 바로 그런 곳이다.

하지만 겨울의 해운대는 버려진 기계 같다. 군데군데 녹이 슬고, 기계를 힘차게 돌리던 체인은 탈장된 것처럼 방치되어 있다. 근처의 풀만이 기계를 먹어버릴 것처럼 살아있는 것이다.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지고 나면 남는 정적. 그와 같은 적막이 바다와, 해변과, 불을 밝힌 고층건물들을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다. 야윈 가로등은 애처롭게 차가운 밤을 버티고 인적은 점점 끊어진다. 불빛이 가닿지 않는 곳에서 파도는 조심스럽게 잡았다 놓는다. 곤하게 잠들어 있는 해변의 모래를.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없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는 어떤 동질감을 느낀다. 겨울의 바다에서 우리는 서로의 허무를 보고 있다. 새벽 1시.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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