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나 위대한 복수심
아, 결국 결말을 향해 오고야 말았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오랜만에 다시 봤습니다. 디카프리오가 죽음의 계곡을 정말 처절하게 기어가서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진 영화죠. 심사위원들이 오스카상을 주지 않고는 못배기게 소름끼치는 연기를 했습니다. 그해 심사의 기준은 디카프리오가 만든 트랙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어느 영화의 누구도 그보다 치열하게 기어갈 수 없었다는.ㅎ
시상식에서 디카프리오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가요. 역시 멋진 배우라는 댓글이 달리는 걸 봤습니다. 과연 대종상시상식에서 우리나라 배우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똑같은 반응이 나왔을까요? 아마도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안타깝지만 ‘오버한다’, ‘ 위선적’, 이런 반응이 많았겠죠?
문화적 자신감의 차이일 듯 한데요, 지구온난화를 걱정할 만한 배경과 힘이 있는 곳과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각기 다른 대중의 감수성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어느 배우가 실제로 실행해본다면 현장상황이나 진심의 정도, 말의 미묘한 뉘앙스에 따라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네요. 예측불가한 인간의 일이니까요.
영화내용을 잠깐 발설하자면, 극중 주인공의 아들은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아 살해당합니다. 그의 죽음이 역설적이게도 곰의 공격을 받아 다 죽어가던 주인공을 살려냅니다. 질투는 누군가에게 시를 쓰게 하는 힘이지만 복수심은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위험하나 위대한 힘임을 영화를 통해 실감합니다. 더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니 그 찌릿함이 배가 되네요.
<레버넌트>는 끔찍한 장면이 곳곳에서 눈을 찔러대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보다 더한 슬래셔 무비들이 부산행의 좀비처럼 널려있지만 체감이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압도적입니다. 주인공의 상처를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이가 아플 지경이니까요. 그리고 화면을 분할하지 않은 롱테이크가 현실감을 높여줍니다. 인디언과의 전투씬은 저도 위협을 느껴 총을 거머쥐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네요.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하다는 말로 영화의 주인공을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강하다는 건 인간의 의지만이 개입된 말처럼 들리는데, 주인공을 끝까지 밀고가는 복수심은 인간의 일 너머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눈덮인 산맥의 장쾌한 스케일 속에서 그의 생존을 도와주는 곳곳의 장치들은 마치 자연의 섭리같은 거대한 힘을 연상시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혹독한 겨울이 당도하듯이 그의 복수도 그런 느낌이 드네요. 아, 결국 결말을 향해 오고야 말았군. 뭐 이런.
좋은 영화는 뭐든지 끄적이게 합니다. 출근시간이 다가오는 내일을 향해 밀려오는 벽같은 휴일 오후를 보내는 방법 중 제게는 영화만한 것이 없습니다. 또 그것이 제게 무엇을 남겼나 해부해 이것저것 건드려 보는 것도 즐거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