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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Nov 18. 2018

이 겨울, 강원도

그 분이 머물렀던 방이라네


 나는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겨울바다의 식민으로부터 해방된다.



매년 겨울여행을 간다. 겨울여행이라고 특별한 게 있는 것은 아니다. 추위와 헐벗은 풍경과 그리고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동행자가 있으면 된다.

올해는 만해마을로 갔다. 마을이 있는 인제는 다섯 시만 되어도 캄캄한 밤으로 둘러싸인다. 앙상한 나무 사이로 달이 뜨고 그야말로 스산한 겨울 풍경이 시야를 덮는다. 시골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다. 숙소에서 편의점으로 차를 몰고 가노라면 겨울이라는 계절은 이 어두운 산골에서 태어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개울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그렇다고 일러주며 어딘가로 흘러간다.

편의점에는 청년 하나가 거의 실신한 듯 누워있다. 몇 시간 만에 처음 사람을 보는 듯한 인사다. 왠지 모를 미안함이 마음자리에 물든다. 몇 가지 식료품을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다른 길로 진입한 것처럼 두려움이 엄습한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어느 때보다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 농도 짙은 어둠이 더 이상 차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피곤한 모양이다. 그 잠깐 시간 샤워를 마친 할머니와 손주는 벌써 잠이 들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다. 방의 장점은 찜질방에 온듯한 후끈함이다. 절절 끓는다는 표현 그대로 방의 공기는 다른 화학방정식이 적용된 듯 익어가고 있다.



낮에는 백담사에 들렀다. 가는 길이 험했다. 버스는 놀이공원의 탈것처럼 산길을 종횡무진 누볐다. 아주 오랜만에 멀미를 느낄 정도였다. 어렸을 적 터미널에 가면 언제나 그랬다. 속이 메슥거렸고 불쾌한 기분이 나를 휘감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백담사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차에서 내려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뫼르소가 보았다는 태양이 연상될 정도였다. 햇볕은 이 고지대에서 계절과 상관없이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백담사에는 제12대 대통령(이름은 밝히지 않는 그곳의 표현 그대로)이 머물다 간 방이 있다. 대웅전 앞에 그 방이 있다. 내 상식으로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구조다. 내 상식 따위는 또 개의치 않다는 듯 그가 머물렀던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몇 가지 겨울 옷과 두꺼운 이불이 마치 박물관의 그것처럼 전시되어 있다.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그 방은 항상 겨울이다. 무엇을 기리려는 의도인지 모르겠다. 반면교사일까. 아니면 어두운 역사도 역사로서의 가치를 얻는다는 인증 같은 것인가.

생각보다 방은 작았다. 어쩌면 그곳을 오래 보게 되면 그를 동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때 청와대에서 떵떵거리던 이가 등받이 의자를 그렇게 애타게 찾았다고 하니. 얼음장 위를 걷는 것처럼 역사를 모르는 연약한 의식은 누군가의 선동과 위장이 낳을 무의식의 강으로 위태롭게 빠져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무지한 의식은 지배당하기 쉬운 것일 테니.

그리고 속초의 바다...


그곳에서도 겨울은 이미 단단하다. 하지만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 덕분에 겨울바다의 식민으로부터 해방된다. 먼 바다가 카페의 창을 향해 바람의 아우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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