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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Dec 16. 2018

해남, 세계의 끝처럼

여행하라


숲과 아름다운 여인은
어떤 사물의 대비보다도 강렬하다.
미시마 유키오가 그린 세계의 일부처럼.




해남은 세 번째다. 예전에 일로 한번, 그리고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바람을 쐰다는 핑계로 7년 전에 왔다. 처음 만난 해남은 컴컴함 자체였다.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숙소로 가는 동안 거의 가로등을 보지 못했다. 도로는 어두웠고, 낮은 빌딩도 어두웠고, 하늘도 어두웠다. 도저한 어둠은 해남을 지탱해주는 에너지 같았다.




두 번째 해남에 갔을 때는 온통 땅끝마을이라는 마케팅 용어가 뒤덮고 있었다. 터미널에도 버스에도, 길에서도 땅끝은 해남을 먹여살리는 확실한 자산이었다. 땅끝이라는 말의 강박적 사용 때문에 그곳은 마치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터미널에서 마주친 검은 옷을 입은 할머니는 지상에 내려앉은 한마리의 까마귀처럼 보였다. 그녀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언가를 요구했는데 그 야윈 모습은 세계의 끝에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그때 대흥사에 갔다. 운무가 산을 뭉텅뭉텅 그러쥐고 있는 날이었다. 새들은 산속에서 치열하게 울었고 이끼도 바위에서 울창했다. 대흥사로 가기 전 도로에서 ‘죽음사’라는 이상한 이름의 간판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몇몇의 로드킬을 당한 사체도.



대흥사 앞에는 서산대사가 하셨다는 말씀이 쓰여있다. “한없이 넓으면 바다와 같지만 좁아지면 바늘 꽂을 자리도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지혜는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가. 물론 법구경을 열심히 읽고 외우면 말이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육화된 지혜는 무엇으로 가능할까.
밤이 되자 대흥사의 웅장한 종소리는 땅바닥으로 낮게 깔려 퍼져나갔다. 종소리는 한번 울릴 때마다 마음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가까이서 듣는 종소리의 위력이 그렇게 큰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날 윤장대를 돌리던 남녀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누가봐도 정상적인 부부는 아니었다. 여자는 말없이, 눈동자의 미동도 없이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 많은 남자는 가끔씩 무슨 말인가를 건넸는데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여자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숲과 아름다운 여인은 어떤 사물의 대비보다도 강렬하다. 미시마 유키오가 그린 세계의 일부처럼.

왠지 지역 하나를 내 개인 감정의 어둠으로 물들이는 것 같다. 오해하지 말기를. 해남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는 최남단이라는 분기점이 가진 설렘이 있다.

‘ 이곳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남에 와서 망망한 바다를 보다 돌아갔죠. 이번에는 당신 차례입니다. 이곳을 벗어나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라는 듯한.



그때 묵었던 유선관이 깨끗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네에 보이는 낡은 여관이 규모가 큰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불을 들추면 머리카락이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 사연 많아 보이는 이의 긴 머리였다. 하지만 그곳에 축적된 시간의 양을 무시할 수 없다. 돌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 오랜 시간을 지나온 흔적이 역력하다.
음식은 맛있었다. 전라도 특유의 쿰쿰한 맛이 적당하게 입맛을 자극했다. 몇가지 나물반찬과 생선이 전부였지만, 한상 가득 차려내오는 아침은 크게 대접받는 느낌을 주었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밤이면 옆방에서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쁘지 않았다. 앙칼지거나, 욕지거리거나, 몸에 변화가 일어나는 듯한 소리만 아니면 된다. 유선관은 뒤뜰의 물소리와 함께 정겨운 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곳이다. 새벽에 대흥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아득하게 감정의 뒤안길을 걷게 만든다.

이번 여행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에 올랐다. 역시 날은 흐려 운무가 산을 뒤덮고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계단에는 처칠이나 드골이 했을 법한 역경에 대한 이야기가 군데군데 쓰여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 했다고 자조하는 세대에게 그들의 말은 먼나라의 전투용어처럼 들린다. 자꾸 무언가를 힘주어 극복하고 이겨내자고 하는 주장은 이미 동력을 잃었다. 적당히 역경과 친구가 되고 다독여 가급적이면 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게 좋다는 식의 삶의 태도가 공감을 얻고있다. 삶의 고난과 싸워야하는 목적이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였다면 지금의 대중은 그 행복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하여 ‘소확행’ 이라고 하지 않나. 어차피 먼 미래에도 눈이 번쩍 뜨일 행복 같은 것은 없을테니..

산의 정상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도 그러한 세태를 응원하는 듯 하다. 영원한 것은 없고 우리가 좇는 것은 환영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어렵게 쟁취해야 하는 것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하라는..
산에 오니 스님 같은 생각이 가득찬다. 새벽잠을 설칠 때 들린 종소리의 힘이 분명하다.

비수기라 숙박을 따로 예약하지 않았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좋은 곳이 보이면 일단 물어볼 예정이었다. 마침 땅끝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 마을에 새로 지은 듯한 펜션 하나가 있다. 마당에는 몇 그루의 야자수도 보였다.
이국적 풍경에 끌려 관리실의 문을 열어보았다. 고요하게 생긴 할아버지 한분이 나오셨다. 오늘 묵을 사람은 우리 가족 외에 아무도 없다. 방에서는 바다가 보였고 와도라는 자그마한 섬도 보였다. 섬에는 미니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소나무들도 있다.

“ 물이 빠지면 길이 생기는데, 그럼 섬에 갈 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전설을 이야기하듯 일러주시지만, 주저하던 관광객은 그 말에 흔쾌히 방값을 지불했다.


밤이 되자 주변은 역시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바다 위에 밥공기 같은 섬의 실루엣이 환영처럼 떠있다. 몇마리인가 개가 컹컹 짖고 물이 빠진 뻘에는 몇척의 배가 정박해 있다. 펜션의 창문으로 비치는 밤바다는 막 붓을 뗀 화가의 그림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코고는 소리가 여행의 고단함을 말해주고 있다. 잘 자두렴. 내일은 아름다운 절, 미황사로 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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