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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May 18. 2019

오랜만에 감동한 소설, 스토너


우리가 우리 이름으로 주어진 인생을
질척거리며 걷는 것처럼.



<스토너>를 읽다.
이 책을 발견한 곳은 여행지였다. 가족과 함께 간 속초에서 서점에 갔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평상시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지루해 보이는 소설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표지조차 나른해 보였고 작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존 윌리암스라는 미국인이었다. 물론 그는 무명이 아니다. 죽고 나서 그의 책은 유럽에서 발간 50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다시 평가받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는 대학교수다. 미주리주의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위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영문학에 매료돼 대학에 눌러앉고 교수까지 하게 된다.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주인공이고 흥미로운 일 따위는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인생이다. 스토너는 융통성 없는 한 남자의 일생을 시간순으로 그려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책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첫 서너 페이지를 읽으며 수수하지만 인상적인 문장에 끌리고 말았다.

"자식이라고는 윌리엄밖에 없는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에서 식구들을 묶어주는 것은 힘겨운 농사일뿐이었다. 저녁이 되면 세 식구는 등유 램프 한 개로 불을 밝힌 작은 부엌에 앉아 노란색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대략 한 시간 동안 들리는 소리라고는 대개 등받이가 높고 딱딱한 의자에서 식구 중 누군가가 지친 듯 몸을 움직이는 소리, 낡은 집 어딘가에서 목재가 작게 삐걱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왠지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주인공 윌리엄의 가족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주인공 앞에 펼쳐질 인생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풍파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이 그러하듯 굴곡이 있고 소설을 끌어가는 몇 가지 사건들이 일어난다.

아내와의 불화, 동료 교수와의 전쟁 아닌 전쟁, 그리고 불륜.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스토너는 고집스럽고 일관되게 살아간다. 답답해 보이까지 하는 모습은 거창한 신념이라기보다는 스토너라는 주어진 길을 어쩔 수 없이 걷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 이름으로 주어진 길을 질척거리며 걷는 것처럼.

그 모습에는 아스라한 감동이 있다. 강렬하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감정을 툭 치고 간다.
크게 성공하지 않는 교수, 희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에도 가끔 주목할 만한 빛이 들곤 한다. 작가는 그 빛을 잘 빚은 공예품 같은 문장으로 잡아내어 보여준다.

하지만 주인공의 인생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환한 빛이 사라지고 나면 늘 그렇듯, 공허하고 슬프기까지 한 외로움이 그를 감싼다. 액자 밖으로 잠시 물러나 있는 고독을 품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처럼.
 
스토너. 아주 오랜만에 마음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고 간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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