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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n 09. 2019

강변호텔에 가봤다

영화를 보고서


그의 이름이 여자들 사이에서
각자의 ‘악인전’에 쓰여지는 상징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영화에 나오는 강변호텔에 갔다. 물론 영화를 본 다음날 영화 속 배경을 찾아갈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않다. 마침 집에서 차로 3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라 드라이브 삼아 와이프와 길을 나섰다.

호텔의 이름은 하이마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주 드물게 하룻밤 묵으면서 최신 가전제품을 체험해보는 그런 트렌디한 곳일까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전혀. 서울 중심가도 아니고 으슥한 강변에 그런 곳이 들어설리는 없다. 홍상수 영화에 가전제품 사용법에 대해 옥신각신하는 내용이 나올 법 하지만 그리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호텔의 이름은 독일어로 Heimat며 고향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외관은 마치 채르맛 인근의 산장을 연상시킨다. 사실 말이 호텔이지 어떤 기준 때문에 근처의 모텔들과 구별해 호텔로 불리는지는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호텔 주변은 이전에도 몇 번 지나친 적이 있다. 3층짜리 건물이라 나무에 가려 외관이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이라 나름 운치는 있으나 젊은이들이 찾는 곳은 아니다. 뭔가 새로 불륜을 시작한 중년들의 아지트 같은 냄새가 폴폴 풍기긴 하지만 워낙 양수리 주변에 그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으니 하이마트의 탓은 아니다. 어쨌든 주말인데도 북적이지 않은 풀밭에 앉아 강가를 마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근처 젊은이들이 모이는 카페만 가도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호텔 진입로에는 ‘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 촬영지’ 라는 플래카드가 마치 구세주를 영접하듯 걸려있다. 달리던 차의 브레이크를 밟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컬러풀한 색이지만 그다지 많은 이들을 불러 모을 것 같지는 않다. 워낙 그의 이름이 여자들 사이에서 각자의 ‘악인전’에 쓰여지는 상징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호텔 내부의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주문했다. 맛이 나쁘지 않다. 놀랄 맛은 아니지만 호텔의 연륜과 함께 조금씩 개선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만한 맛이다. 강이 보이는 뷰 값이 포함된 터라 싸지는 않다. 강의 입장에선 괘씸할 법도 한데 군소리 없이 두물머리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그게 바로 자연의 미덕이겠지만.

강을 거슬러 보트 하나가 강의 주인인양 굉음을 내며 달려가고 환호성을 지르며 수상스키를 타는 모습은 이 적요한 습지에서 어딘가 위악적이기까지 하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아도 강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가득한 자만이 느껴진다.

영화에서처럼 겨울이 오고 언 강에 눈이 쌓이면 풍경은 한층 아름다울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추억이라 이름 붙은 것들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소환할 테고. 여름을 활보하던 이들이 움츠려들면 강가의 겨울은 온통 자연의 것이 되리라. 그때 이곳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이지만 벌써 그 소박한 겨울왕국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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