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희대 Dec 04. 2019

내가 쥐고 있는 고추장

절대 놓을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겠다고
집요하게 매달리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는데 독특한 아주머니 한 분이 출연했다. 수십 년째 골목에서 분식 장사를 한 사장님이다. 본인이 직접 만든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만들었고 촬영 스태프들이 찾아갈 당시만 해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장사는 영 신통치 않았다. 하루 종일 있어도 떡볶이 한판을 팔지 못했다. 제작진도 의아해했는데 문제는 고추장에 있었다. 백종원이 지금까지 먹어본 떡볶이 중에 가장 맛이 없다고 극언을 할 정도였다. 어찌 된 일일까. 그 고추장으로 2십 년이 넘게 장사를 해왔다고 하는데. 사장님이 이것저것 섞어 ‘개발한’ 고추장은 그녀의 자부심이었지만 분식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맛없는 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백종원의 솔루션은 간단했다. 마트에서 파는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다시 만든 것이다. 그러자 손님들은 연신 맛있다며 재주문을 한다. 이 모습을 본 사장님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본인이 고집한 이십 년의 세월이 고작 누구나 살 수 있는 ‘마트 고추장’ 하나로 통째로 부정당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 무슨 모파상 소설 같은 이야기인가.

하지만 이런 일이 어디 그 사장님에게만 있는 일일까. 타인과 교류 없이 자기 세계에만 사로잡혀 사는 이들에게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의 일화다. 홀로 오랫동안 기타를 연습해온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마치 산속에서 무술을 연마하듯 그의 연습은 혹독했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기타를 잘 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어느 날 커다란 포부를 품고 나갔던 첫 콘테스트에서 그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새로운 트렌드에 압도되었고 그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예술활동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겠다고 집요하게 매달리지만 마트 고추장조차 뛰어넘지 못하고 그보다 못한 것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나도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단순 취미라는 방어막을 내세워 어떤 권위에도 인정받은 적은 없다. 그 흔한 공모전 출품조차 해보지 않았다. 작년 브런치 공모전에 딱 한번 도전해봤다. 오백만 원이나 준다는 말에 되지도 않은 꿈을 꾼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물을 먹고 말았다. 트렌드란 면으로 볼 때 나의 글은 매우 올드한 것 같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라던가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같은 콘셉트의 책은 죽었다 깨어나면 모를까 지금의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며 내 글은 쉰내를 더 팍팍 풍기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마트 고추장을 사 와야 할지 모른다. 한데 ‘문학마트’는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하지만 가슴속엔 옹고집 같은 고추장이 여전히 남아있다. 트렌디한 이들과는 다른 무기가 있다고 믿는다. 설령 그것이 맛대가리 없는 나만의 고추장이라 해도. 예를 들어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를 떡볶이와 비교하자면, 사소한 생활의 지혜 때문이다. 터득했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것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과연 다음 생에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길 정도다. 다시 얻지 못하면 너무나 아까울 것이고 이번 생만큼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들이다. 이를 테면 어두운 공간에서 재빠르게 시력을 회복하는 방법이라던가, 경기도 광주 어머니 집에서 강변 우리 집까지 밀리는 시간에도 내비에 의지하지 않고 빨리 오는 방법이라던가, 뱃살을 흐릿한 왕자로라도 보이게 하는 비법이라든지, 토라진 와이프를 최소한의 노력으로 원상회복시킨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유머감각이다(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나를 아는 몇몇은 벌써 피식거리지 않는가. ㅎㅎ). 오랫동안 나만의 노하우로 훈련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나처럼 유머러스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걸 두고 죽으면 벌을 받아 다음 생은 통나무나 쇠붙이 같은 인간으로 환생할 게 뻔해 좀처럼 생을 포기할 수 없다. 이러한 노하우를 놔두고 간다면 마지막 순간에 마치 어마어마한 현금을 두고 죽는 재벌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 현금을 글이라는 걸로 나눠주고 싶은데 좀처럼 받아가는 사람이 없다. 앞으로도 옹고집 표 고추장은 쭉 나만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 이 무슨 사회적 손실이란 말인가.

 

작가의 이전글 달의 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