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다이어리
배우가 존재만으로도 감독의 영화 세계를
구현하고 있달까요
오랜만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봤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의 영화를 보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하나의 장르가 된 것 같네요. 아직 봉준호도 박찬욱도 그들의 영화를 일컬어 감독의 이름을 딴 장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영화적 부피감을 가지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들이 하나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장르로까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박과봉’이 만든 영화 한 편 한 편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는 점에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영화에도 장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전해주는 따스함은 내용을 달리하지만 비슷한 균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다양한 감정의 레이어 중에서 특히 온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전이를 영화라는 채로 걸러 보여줍니다. 어떤 시련과 악함에도 좀처럼 그 온기는 차가워지지 않고 끝까지 생명력을 유지하죠. 물론 그의 영화에서 어마어마한 불운이나 사악함이 인간들을 괴롭히지는 않습니다.
감독의 영화에 아이들이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스즈라는 캐릭터는 불씨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어른들은 그 불씨를 살려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그 노력은 뼈를 깎는 과한 노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의 차가움과 맞서며 옷을 나눠 입는 정도의 노력입니다. 그러한 일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한 온기로 가득하다고 감독은 이야기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단골손님인 배우 릴리 프랭키와 키키 기린은 영화 속에서 바로 그러한 온기를 가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외모와 행동만 봐도 결코 진지함이나 성실함과는 멀어 보이지만 바로 그런 면이 팍팍한 세상의 쉼터 같이 느껴지네요. 존재만으로도 감독이 구현하려는 영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달까요. 그들이 이따금 던지는 한마디가 영화를 잔잔한 감동의 바다로 밀고 갑니다.
제목에서도 짐작 가능하듯이 이 영화 또한 엔딩의 배경으로 바다를 선택합니다. 얼마 전에 본 <세자매>도 마찬가지인데요, 인간의 모든 것을 품어줄 것처럼 살아있는 물이 치유의 장소로서 기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네 자매가 걷는 바다는 얽히고설킨 인연의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다이어리가 앞으로도 화사함만으로 채워지지 않겠지만 바로 옆에 바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 같네요.
감독의 여러 영화가 죽음으로 시작하거나,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죽음은 그가 추구하는 세계의 강한 모티브로 보입니다. <아무도 모른다>나 <어느 가족>에서도 그랬지만 죽음은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흐트러놓는 동시에 결속하게도 합니다. 혹은 감춰졌던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죠. 그렇게 흔들렸다 다시 찾아가는 자리는 이전과 다른 모습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속적으로 그의 장르를 통해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