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자매 이야기
세 자매에게 종교의 힘이란
바닷가에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 못하다.
지난 주말 한강변에 있는 빵집을 찾았다.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빈자리가 더 많다. 강은 햇살을 받아 푸르게 빛난다. 커다란 창가 앞에 자리를 선점한 가족이 있어 그 뒤에 멀찌감치 앉았다. 엄마와 아들, 할아버지 삼대가 나란히 앉아 집안 대소사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그런데 40대로 보이는 엄마 목소리가 걸걸하다. 화를 쌓아두지 못하고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그 집안일을 듣고 싶지 않은데도 세세한 내용까지 강제로 귓속으로 들어온다. 여자의 상처가 깊다. 여자의 표현대로라면 산다기보다는 견디고 있는 중이다. 화창한 봄날은 아랑곳없이 어딘가에선 또 어두운 드라마 한 편이 써지고 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세자매>는 현실에서 다양하게 재연된다.
<세자매>는 가족의 상처로 차려진 밥상 같은 영화다. 찬거리 같은 일상이 올라오던 상은 급기야 엎어지고 만다. 사연 없는 가족이 있기나 할까. 세자매는 악다구니로 남동생은 혐오스러운 행동으로 ‘죄인’ 아버지는 자학으로 가족사 때문에 쌓인 각자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물론 그러한 폭발이 화학적 변화를 낳는 건 아니다. 여전히 존재 자체가 미안한 맏언니, 똑똑한 척 하지만 남편의 바람으로 괴로운 둘째, 이승원 감독의 영화에 꼭 등장하는 ‘또라이’ 캐릭터 셋째는 상처 깊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감정의 폭발은 다만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어루만지게 되는 기회를 연다.
가족의 문제에 타인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 세자매에서 인상깊은 장면이기도 한데 아이들은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워 밖으로 피신한다. 겨울밤 둘째가 셋째를 데리고 동네슈퍼로 들어오지만, 취객 몇 명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 아이들의 절박한 마음은 아랑곳없이 그들에게 남의 가정사는 술안주일 뿐이고 결국 한 가정의 문제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나 도움은 한겨울 아이들에게 주어진 쭈쭈바 같은 것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차가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지옥 같은 풍경을 만난다.
그렇다고 영화의 배경처럼 등장하는 종교가 해답이 될까. 오히려 종교는 그들 상처를 더 깊고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장치 같다. 구원의 장소여야 할 교회가 불륜과 폭력의 장소가 되고, 둘째가 기도로 갈구하는 구원은 공허하다. 큰 교회의 기도회가 언니가 따라간 사이비 종교의 구원쇼와 그리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세 자매에게 종교의 힘이란 바닷가에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 못하다.
냇플렉스에 올라온 이승원 감독의 영화 <해피 뻐스데이>를 보고 다른 작품도 찾아봤다. 그의 첫 작품 <소통과 거짓말>까지 세 편을 보고 느낀 건 영화가 점점 밝아지고 있다는 것. 그의 영화는 상처와 고통으로 암흑이 된 가족사에 치유라는 조명을 조금씩 들이대고 있다. <소통과 거짓말>이 적나라한 절망을 그렸다면, <해피 뻐스데이>는 재의 불씨처럼 남은 의지를, 그리고 <세자매>는 뚜렷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승원 감독의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또라이의 미학’이다. 그의 영화는 실로 다양한 또라이가 등장하는 경연장이자 또라이는 그의 영화를 독특한 지점으로 몰고 가는 힘이다. <세자매>에서 그려지는 세상과 또라이의 타협이 그의 영화를 조금 더 밝은 세계로 밀어 올리고 있지만, 그가 초기에 보여주었던 영화적 힘을 약하게 할까 봐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그의 영화가 다음번에 어떤 또라이를 등장시킬지, 눈뜨고 보기 힘든 주인공의 행동이 과연 희망의 메시지를 또 품고 있을지 궁금하다. 전편에 비해 다소나마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그는 이번 영화로 아주 미묘한 지점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