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라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

견뎌야만 하는 영화라니

by 권희대


최악의 상태가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로
폭발되는 아이러니



어제저녁 <조커>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과 후의 제 감정이 크게 다를 정도로 영화는 굉장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눈 앞에 꺼내놓을 수 있다면 심하게 일그러져 있을 것 같네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게 마음에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는 일이 되어버리다니요.

주연배우인 호아킨의 1인극이라도 할 정도로 스크린의 팔 할은 아서와 조커로 채워지지만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어느 영화 평론가가 무겁고 뜨거운 영화라고 표현했는데 보는 내내 주인공과 함께 그의 어두운 망상이라는 솥 속에 갇혀 그 세계가 더 뜨거워질까 봐 가슴을 졸이곤 했습니다. 예민한 관객의 지나친 과장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조커는 제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이었습니다.

악의 세계가 구현되는 곳에는 언제나라고 할 정도로 버려지는 것에 대한 절망이 빠지지 않네요. 영화의 일반적 수사라 할 지라도 아서 플랙이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트리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이며 관객을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아서는 끊임없이 그 소외와 싸워보지만 늪에 빠진 사람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 최악의 상태가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로 폭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조커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탄생시키고 맙니다.

화면마다 주인공을 옥죄어 오는 듯한 현악기의 어두운 음색도 일품이네요. 스크린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하나의 악인을 잉태시켰다면 음악은 그 산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조커로 인해 이제 고담시는 코믹북 속의 환상도시가 아니라 지구 상 어딘가의 도시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디씨의 히어로들이 전부 만화책을 찢고 나오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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