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영화가 벌써 보고 싶어.
봉 감독의 재능은 작위를 무작위에 가깝게 만들어내는 것
어제 <기생충>을 보았습니다(스포 없음). 너무 기대를 했던 터라 중간에 흐름이 바뀌기 전까지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네요. 아마도 예고편을 무한 반복했던 탓도 있을 겁니다. 칸느라는 이름을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 영화를 보려고 했습니다만 케이크를 잘라내듯 쉽게 분리가 되지는 않네요. 황금종려라는 어마무시한 후광이 자꾸 번쩍여서 어느새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 하나하나에서도 과도한 의미를 찾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부끄럽게도.
네이버에 평론가들조차 9점 행진에 가세하고 있는터라 영화를 깍아내렸다가는 주제도 모르고 거대한 흐름을 역행하려는 못난이가 돼버릴 것 같아 글 쓰는데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하네요 ㅎㅎ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생충은 역시 띵작입니다. 대중적인 재미와 사회적 의미라는 두 마리 짐승(토끼라고 하기엔 영화와 어울리진 않아서요)을 잡아냈습니다. 아니 합체된 한 마리라고 봐도 될 것처럼 분리의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있던 두 마리를 잡은 게 아니라 새로운 한 마리를 만들어 낸 셈이죠. 물론 봉준호 자체가 장르, 라는 칭송은 개인적으로 유보하겠습니다. 그의 다음 영화를 만날 때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불현듯 인간의 생각에도 많은 ‘ 기생충’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물론 영화는 이런 관념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머릿속에 자리 잡고 성숙하지 못한 가치관을 숙주로 생존하는 그런 사고의 단초들 말입니다. ‘고장관념’일 수도 있겠고 편견일 수도 있는 그런 편린들은 체내의 기생충보다 훨씬 위험하고 파괴적이기까지 할 겁니다. 때때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프리즘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주 활동성이 강한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아니라고 하는 이들을 부지기수로 만난 지 않았습니까.
오해하지 마시길. 정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솔직히 종려나무 몇 잎에 눈부셔하는 제 인식의 허약함을 질타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
영화로 돌아가서 봉 감독의 재능은 작위를 무작위에 가깝게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두운 지하와 눈부신 지상. 부자와 빈자. 성공과 실패 등등 자칫하면 어거지 클리셰처럼 보일 듯한 상반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영화라는 매체 속에 녹여냅니다. 스토리속의 두 구조물은 삐걱이는 로봇들이 아니라 생물 같은 느낌입니다. 그 두 이미지의 대립은 주인공들의 대사를 통해, 소품과 배경을 통해, 여타의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강하지만 거부감 없이 관객에게 스며듭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여운을 남기고 마네요.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무수한 예술가들이 도전하지만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뒤집어쓰고 쓸쓸히 퇴장하는 행로를 역행하는 힘은 역시 봉준호의 재능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재능이 어디까지 갈지 벌써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 1인입니다.
어느 유명한 평론가가 기생충을 기이한 영화라고까지 했는데, 고어물에도 큰 거부감이 없는 제 성향상 대변검사 용지에 쓰여있던 ‘요코하마존충’ 이라는 이름만큼 기이하게 다가오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