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근원을 모르는 것에서 오는 공포

영화 <어스>를 보다

by 권희대



피부색조차 강렬한 미장센으로
다가오는 느낌



금요일 야심한 밤에 영화 <어스>를 보았습니다. 와이프와 인터넷으로 상영관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작품입니다. 최근에 이처럼 심장이 쫄깃해지는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라고 자문해 보았지만 잘 생각이 나지는 않네요. 물론 시원찮은 기억력이 한몫하겠지만요.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컨저링류의 무시무시한 심령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관절 귀신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도 보는 이를 자꾸만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 가히 일품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엔 반전까지 선보이네요. 보는 내내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마지막에 그 반전으로 깔끔하게 해소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라는 매체에서 반전의 힘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던 유주얼 서스펙트의 임팩트를 기대하진 말기 바랍니다. 영민한 관람객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반전이니까요.

감독의 전작 <겟아웃>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흑인 배우들의 표정만으로도 앞으로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라는 예감이 가득해집니다. 주인공의 눈썹이 그려내는 모양과 불안하게 확장된 동공 등 하나하나는 어떤 징조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처럼 보입니다. 피부색조차 강렬한 미장센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라니요.

감독은 확실히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화적 판타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 사회가 그동안 쌓아왔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보이지 않는 억압이 무엇보다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겟아웃에서도 느낀 거지만 감독은 주인공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서스펜스를 만들어 냅니다. 그에 비해 조연으로 등장하는 백인들은 종잇장처럼 평면적입니다. 그저 조연이라 그런 건 아니고 모종의 대비 효과를 노린 게 아닐까요. 강렬한 복수심에 맥없이 바스러지는 존재들인 셈이죠.

영화는 관객의 반응이 크게 갈리고 있습니다. 영화가 흘러가는 개연성이 흐릿하고 종국에는 산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많네요. 아마도 귀신처럼 존재의 근원과 방향성이 삭제된 복제인간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왜 그들을 도플갱어처럼 만들었고 그들이 가위를 들고 잔혹하게 인간들을 살해할 정도로 그토록 원하는 게 무엇인지, 또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 영화는 끝내 시원하게 밝혀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마치 사후세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감독은 유추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가능한 가늘게 만들고 보는 이가 상상하도록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존재의 배경을 미궁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조차 이 영화에서는 공포를 자극하는 장치가 아닐는지요.

아무튼 어스는 오랜만에 가슴을 졸이며 본 영화입니다. 물론 다른 분도 그러리라 장담할 수는 없네요. 영화가 상영되면 감독과 관객은 기싸움에 돌입합니다. 그 살벌한 싸움을 저는 조던 필 감독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며 중개하고 있으니까요. 마치 내야수의 에러도 전략으로 포장하고 마는 편파중계 중인 야구 해설가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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